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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노동&인권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노동의 종말'없다"

민세원 서울KTX열차승무지부장-홍윤경 이랜드일반노조 사무국장

 

이랜드 “가족도 인정…정규직 참여 확산”
KTX  “남성중심 노동관 비정규직 문제 암초”

지난 1998년 7월 현대차 파업 중에 구내식당 아줌마들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밥.꽃.양’이 2002년 제작됐다. 아줌마들은 따뜻한 ‘밥’으로 파업대오를 지탱해 ‘꽃’이 됐지만 결국 남성노동자들을 대신해 정리해고 1순위 희생‘양’이 됐다. 그녀들은 노조 하청 식당에서 다시 일했다. 당시엔 95년 노동법 개정과 97년 IMF환란의 여파로 정리해고가 사회이슈였지만 외주화, 비정규직은 낯선 단어였다. 아줌마들은 주목받지 못했다.

현대차에서 ‘밥.꽃.양’아줌마들이 싸운 지 10년이 지났다. 98년 현대차 파업 당시 인권변호사 출신이란 이유로 울산에 급파된 정부특사 노무현 씨는 이제 대통령이, 노동변호사 이상수 씨는 노동부 장관으로 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노동현안 가운데 최우선 과제로 여성비정규직을 꼽을 정도로 문제는 확대되고 심각해졌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남성 중심이었다면 20년이 지난 오늘 여성이 그 자리에 있고 정규직의 투쟁은 비정규직의 저항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부각된 이랜드-뉴코아 투쟁과  KTX여성승무원들의 500여일 장기농성은 우리사회에서 여성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풀리기 힘든가를 보여준다. 홍윤경 이랜드일반노조 사무국장과 민세원 서울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을 지난 7일 저녁 민주노총 2층 회의실에서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여성과 비정규직에 대해 들었다.

 

김상택 기자

민세원 서울KTX열차승무지부장(좌)-홍윤경 이랜드일반노조 사무국장(우)


-이랜드-뉴코아노조와 KTX승무지부 구성원 대부분이 여성이다. 여자이자 어머니로써 느끼는 어려움은.


△홍윤경 사무국장=주부로써 집에서 들어가지 않고 농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엄마는 왜 반찬도 않해 놨냐, 빨래가 안돼 있다’는 등 자식들의 투정부터 남편과 시댁 원망까지 그냥 물리치기가 쉽지 않다. 나도 10, 6살의 두 딸이 있다. 아이들이 엄마를 제대로 보지 못해 안쓰럽다. 하지만 처음에는 반대하던 시댁과 남편도 파업이 이슈화되면서 현실을 인정한다. 이랜드 일반노조는 80~90%가 주부다.


△민세원 지부장=현재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조합원은 KTX 71명, 새마을 10명해서 모두 81명이다. 공동숙소에서 지내면서 육체적으로 힘든 점도 있지만 더 힘든 부분은 이전처럼 생활하지 못하는 것이다. 투쟁을 하면서 가족과 보는 기회도 현저하게 줄었고, 사귀던 사람들과 헤어진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런 환경을 극복하고 결혼한 조합원도 5명이다. 이 가운데 3명은 출산했고 아기를 농성장에 데리고 온다.  

-일터에서 차별 정도는.


△홍윤경 사무국장=과거 백화점 때부터 전통적으로 관리자가 나이 많은 여성노동자에게 권위적으로 군림해 왔다. 점장&매니저라고 부르는 20, 30대 남성들이 40, 50대의 주부들을 완전히 아랫사람 취급하면서 함부로 대한다. 현장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는 남성들의 경우에도 승진, 승급이 빠르다. 이런 구조에서 사측은 계산원, 판매사원 등 여성이 집중된 분야를 우선적으로 외주화하려고 한다.


△민세원 지부장=남성 정규직 승무원의 얘기를 들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야 너네 정규직 시켜 달라고 하는거냐? 아줌마 될 때까지 다니는 건 문제있다”는 내용이었다. 노동자 중에서도 이런 성차별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현실인데 경영진은 오죽하겠냐.


철도공사 경영진도 ‘여자는 생리.출산휴가를 줘야 하고, 나이 들어 아줌마돼면 주요 업무를 하면  보기 흉하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젊을 때 반짝 쓰고 버리는 노동력, 젊어야만 가치있는 노동력으로 보는 것이 관리자들의 인식이다. 이런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여성노동력이 폄하되고 비정규직 가운데 70%가 여성이라는 수치로 현실화된다.

-점거현장에서 만난 이랜드 간부직원은 지금까지 투자도 많이 하고 노력한 정규직이 아닌 이상 고용불안정 같은 현실은 감수해야 되는데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홍윤경 사무국장=이랜드가 기독교를 내세워 다른 기업보다 청렴하고 합리적이라는 주장하지만 차별과 배제가 존재한다. 교섭에서도 사측은 심심치 않게 ‘몇 백대 일을 뚫고 들어온 사람을 어떻게 비정규직과 비교하냐. 왜 우리가 고용을 보장해줘야 하느냐’고 얘기한다. 회사 내에 신분이 있다. 우리는 농담으로 성골, 진골이라고 부른다.  


△민세원 지부장=비정규직 차별은 이랜드 같은 민간기업이건 코레일 같은 공기업이건 구분 없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차별과 배제를 하면서 기독교를 앞세우는 것은 올바르게 신앙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홍윤경 사무국장=지난 2000년에도 비정규직 싸움을 했는데 식대, 수당까지 합쳐 50만6천원을 받을 때였다. 파업 첫날 회사 입구에 붙인 플래카드 구호가 “못살겠다 50만원, 먹고 살아보자 70만원”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40%인상을 요구한 것이란 것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때 노조원들이 천막을 쳤는데 관리자들이 이를 걷어가면서 “왜 남의 회사에 와서 장사를 못하게 하느냐”고 말했다. 그때 우리는 정말 분노했고 다른 분회조합원들도 파업에 동참했다. 9개월을 싸워서 1년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정규직은 80만원, 비정규직은 70만원을 받았다.

-그럼 지금 투쟁에는 정규직도 많이 참가하고 있는 것인가.


△홍윤경 사무국장=현재 투쟁 중인 분들 가운데 정규직이 절반이다. 비정규직도 일찍 노조의 가입 신청을 받아서 동질의식이 강하다. 다른 사업장에는 비정규직 때문에 정규직 일자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비정규직 투쟁에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확대는 정규직 외주화의 사전작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김상택 기자

민주노총은 9일 과천 정부종합청사 노동부 앞에서 이랜드-KTX승무원노조와의 연대집중투쟁을 선포했다.

-정부는 여자가 다수인 사업장에 공권력 투입할 경우, 여자경찰을 동원해 불상사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고 강조하는데.


△민세원 지부장=전투경찰을 투입해 길을 열고 연행만 여경이 한다. 여경 2~3명이 한 노동자를 무차별적으로 끌어내는 것이 폭력적이지 않다는 기준이 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홍윤경 사무국장=여성 노동자들의 옷이 벗겨지고 온몸에 멍들어서 개 끌려가 듯 연행된 상황에서 정부의 주장은 기만적이다.    


조합원들이 얘기를 들어보면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있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연행 당시의 공포 신체적&정신적 충격과 울분이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말한다. 첫 번째 끌려갈 때는 대부분 조합원이 울었지만 두 번째 연행에는 울지 않고 오히려 악을 썼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계속 그때 생각이 떠오른다고 한다.

 

또 누가 쫒아오는 악몽을 꾼다. 여성노동자들의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충격을 준 것이다. 공권력 투입은 국가권력이 행하는 폭력이다. 노동자들은 일하는 곳에 않아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정부는 2번이나 공권력을 투입했다.


△민세원 지부장=정부는 평소에는 노사관계에 개입할 수도 없고, 할 필요하다고 얘기하면서 사용자가 요청하면 바로 공권력을 투입한다. 무슨 명분으로 그렇게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부당노동행위를 밥 먹듯이 해도 사용자는 대리인만 가서 조사받고, 노동자들은 시위 한번에도 수백명씩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노동자가 사용자에 대한 고소&고발을 해도 몇 달, 몇 년 후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 법원과 검찰의 태도다. 반면 기업들은 최고의 법무법인과 홍보실 인력의 지원을 받는 것도 모자라 인맥&학맥까지 동원한다.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입장과 현재 진행 중인 투쟁에 대해.


△민세원 지부장=무슨 주의나 사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물론 차이는 인정하지만 차별을 하면 안 된다. 자본주의 시장에 내맡겨 놨을 때 가진 자가 못가진 자를 차별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나서서 노동자의 권리와 보장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제발 정부가 이제는 비정규직 국민, 정규직 국민, 여성&남성으로 나눠 차별하지 말고 균형 있는 정책을 펼쳤으면 한다.


△홍윤경 사무국장=여성노동자들이 힘이 없고, 잘 울고 약할 것 같지만 독하다. 또 순수한 목적에 헌신한다. 그래서 몇 번 연행하고 생계가 어렵게 되면 투쟁을 포기하겠지하고 기업이나 정부가 오판하면 안 된다. 회사에서 조합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돌아와라. 오면 다 없던 것으로 선처하겠다’며 회유하고 있다. 소수가 남았을 때는 투쟁을 고사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사측이 쉽게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는 더욱 강도 높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심재훈 기자

 

제15호 5면 2007년 8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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