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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시민사회

“공익변호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Fusion&Vision [공익변호사]

‘fusion & vision’은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론의 장으로 마련된 면입니다. <시민사회신문>은 창간 특집 기획으로 기업사회공헌 담당자, 정부 부처 시민사회 담당 공무원, NGO관련 학계 인사, 시민단체 출신 의원 보좌관 등 다양한 분야 시민사회 관련 전문가 관계자들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사회, 그리고 시민사회를 조망해 봅니다. 격주 1회 ‘편안한 자리’에서 갖는 좌담 형식의 이번 기획 첫 손님은 시민운동 관련 공익변호사들입니다. /편집자

운동 및 단체와의 결속력 항상 고민
시국.인권은 과거, 전문분야 지원
경제적 보상 넘는 업무만족도 ‘공감’

‘프로 보노’, 라틴어 ‘pro bono publico’(공익을 위하여)의 약자다.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무보수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무료봉사를 의미한다. ‘여유가 없는’ 한국의 프로 보노 수혜군 중에는 시민사회단체가 포함된다.

법조인으로서 사회 책임을 다하는 일 일지라도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시간을 쪼개 공익변호활동을 하는 것은, 게다가 중소기업 수준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 전업으로 시민사회단체 공익변호사로 활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19일 저녁 서울 안국동의 한식당 ‘미재연’에서는 통 털어 달걀 한판 수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우리나라의 전업 공익변호사들 중 출석률 10%를 상회하는 3명의 단체 상근 전업 공익변호사와 앞으로 그 길을 걷고 싶은 ‘민간’ 변호사 1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제 시간에 맞춰 참석하진 못했지만 하나 둘씩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좌담회 분위기로 들어갔다. 늦게 온 변호사는 늦게 온 대로 분위기에 맞춰 이야기를 이어간다. 결국 스스로들 직업은 속일 수 없다는 이야기가 오고갔다.

공익변호, ‘시국’서 전문영역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도 시작하기 전에 나온 ‘법조계 운동판’이란 말이 재밌습니다. 법조인으로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이전 세대와 지금 다른 점이 있습니까.

최재홍 변호사

“예전에는 인권변호사를 양산하게 만든 시국사건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권변호사의 시국변론은 보기 힘든 시대죠. 싸워야 할 대상이 분명했던 이전과 지금의 다른 점입니다.”(최재홍)

“90년대 초까지 변호사가 운동의 정점에서 활동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시대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기존에는 정치적 표현과 같은 자유권을 말했다면 지금은 소수자 사회적 약자 대변과 같은 사회권 영역으로 공익변호의 양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전문 영역의 공익변호 활동으로 운동의 시너지 효과를 만드는데 더 주력하고 있죠”(소라미)

“소위 1, 2세대 인권변호사들이 공익변호의 영역을 넓혔다면 지금 세대는 깊이를 만들어 간다고 할까요.”(박숙란)

“개인적으로 법학은 사회과학의 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화도 결국 법제도로 마무리되는 것이니까요. 문제는 법은 운동적 한계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새만금이 소송으로까지 진행됐지만 판결 이후 더 이상 진행시키지 못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법학의 사회운동 참여 방법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최재홍)

-전업 공익변호사와 프로 보노 활동의 차이점과 장단점이 있다면.

염형국 변호사

“민주노총, 금속연맹, 다시함께센터, 환경법률센터 등에 상근 변호사가 있고, 다른 몇 곳은 있었다가 지금은 없네요. 공감의 경우는 전업 공익변호사 그룹이죠. 아직까지 공익활동 전담 변호사들이 많지 않습니다. 비상근 체제로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참여하는 경우는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모든 변호사가 공익 변호를 해야 한다는 식도 곤란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익변호에 대한 문화랄까, 토양이랄까. 최근 미국의 공익변호활동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영역별 공익변호활동이 활성화 돼 있고, 로펌의 공익활동이 사회적 평가의 지표가 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현실과 비교할 때 부러운 점이었죠.

물론 우리도 의무적으로 공익변호활동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형식화되고, 변호사 수가 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변호사들이 공익활동에 크게 신경을 못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공익변호가 활동 그 자체가 아니라 부수적인 수임을 바라보고 하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죠.”(염형국)

-단체 상근변호사들의 경우 활동가들과의 결속력이 중요한 부분일 텐데요.

“사실 내가 변호사인지 활동가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맨 날 다른 변호사들과 싸우니….(웃음) 단체 들어오니 생각도 변하고 새롭게 아는 것도 많아졌죠. 갈수록 활동가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새록새록 늘어납니다. 처음에는 단체 내에서 과연 내 영역이 어디까지인가 고민이 많았습니다. 의논할 상대가 없어 공감처럼 변호사들끼리 있는 곳이 부럽기도 했죠. 나중에 공감 변호사들로부터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첫 길이 더 힘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박숙란 변호사

그런데 단체 생활 3년 만에 스스로 놀랄 만큼 변했어요. 일단 다른 단체 사람들이 상근변호사가 있다는 걸 알고 부러워하면 우리 단체 사람들도 으쓱하고 저도 기분 좋고.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배울게 많습니다. 활동가들은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것 같은데 실제로 뭔가 바뀌더라구요. 처음엔 ‘그거 안됩니다’ 했지만 열정의 한계는 없더군요.”(박숙란)

운동 열정에 배울 점 많아

“박 변호사 말에 200% 공감합니다. 현장에서 변호사의 결합은 독도, 득도 될 수 있습니다. 변호사는 판례 해석 범위 내에서 어떻게 하면 법적으로 문제를 풀 것인가 훈련받은 사람들입니다. 사실 단체에서 소송하자고 하는 것 중 상당수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안 될 것들이죠. 그런데 그게 독이에요. 현장 활동가의 무한한 상상력과 다양한 행동을 제한할 수 있더군요. 실제로 꽤 알려진 인권변호사가 어느 회의에서 실정법 테두리의 제한적 해석을 내놓고 안 된다고 하자 단체 대표들이 꼼짝 못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 발언력, 파괴력을 보고 공익변호를 하려면 내재적 한계를 직시하고 끊임없이 현장 활동가와 함께 해야 할 것이란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사실 공감에서도 단체와 함께 할 때 실정법 안에서 하자, 말자를 놓고 고민을 많이 합니다. 변호사냐, 활동가냐, 어떤 마인드로 접근할 것인가 따지다 반 우스개로 ‘법률 활동가’라고 정리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얼마 전 한국에 온 외국인 변호사는 자신을 'legal activist'로 소개하더군요.”(소라미)

“공익변호활동은 변호사와 활동가의 경계선에 서야 할 일이 많죠. 몇 해 전의 천성산 도롱뇽 소송건만 해도 질 것이 뻔한데 환경적 마인드에서 부딪친 일 아닙니까. 지금 그랬다면 일반 법조계에선 아마 ‘그 변호사야 말로 심층면접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겁니다.”(웃음)(최재홍)

시간이 지나면서 진행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야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사회 이슈에서부터 개인적인 고민, 공익변호활동에 발을 디디기까지.

경제난, 공익변호 확산 제약

소라미 변호사

“사무실 간사나 인턴들이 변호사 같지 않다, 해맑다는 이야길 해줍니다. 일에 대한 만족도가 금전적 보상 이상을 채워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공감에 들어온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죠.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험 쌓고 가도 늦지 않다’는 조언이 많았는데, 아마 그랬다면 다시 못 왔을 겁니다.

어려운 점이 많지 않냐고 주변에서 자주 묻습니다. 사실 조직 자체가 끊임없이 먹고 살 문제에 대해 고민하죠. ‘업계 최저’라고 자랑 반 걱정 반 합니다.”(소라미)

“다시함께센터가 시작이라면 앞으로 여성인권, 나아가 전체 인권에 대한 관심을 높여나갈까 합니다.”(박숙란)

“장애인 관련 공익변호를 많이 해왔습니다. 항상 비장애인이 운동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얼마 전 일본의 한 장애인단체 50대 활동가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갔습니다. 대학 시절 장애인 복지시설의 열악한 환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운동에 뛰어든 그는 ‘가장 약자인 장애인의 권익이 회복되면 사회는 한 단계 개선되는 것이므로 전체 사회를 바꾸려면 장애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염형국)

“염 변호사도 장애인 운동에 뼈를 묻겠군.”(소라미)

“앞으로 어떨진 몰라도 배우는 것이 너무 많아요. 아무래도 영리활동 쪽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죠. 아이들이 3명인 게 약간 걸리지만.”(염형국)


염형국 변호사
사시 43회. 4년 전 시민단체 상근 변호사를 하고 싶다며 당시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찾아온 사법연수생이 그다. 국내 첫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은 그렇게 탄생했다. 얼마 뒤 위도 방폐장 건립 주민투표 현장에서 주민에게 멱살을 잡히며 ‘험난한 길’을 실감한다.

소라미 변호사
사시 43회. 공감 창립 멤버. 공익변호 활동을 하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변호사가 무엇인지, 또 지속가능한 공익변호 모델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 ‘착한’ 동료들을 보고 힘을 낸다. ‘토크’에 강하다.

박숙란 변호사
사시 44회. 성매매 여성의 자활을 지원하는 다시함께센터 상근변호사. 여성권익을 위해 헌신한 선배들의 빛을 갚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만족스런 활동에 스스로 봐도 요즘 밝고 예뻐졌다.

최재홍 변호사
사시 46회. 녹색연합 공익소송위원회 소속 변호사. 좋아하는 산이 깎이고 파헤쳐지는 것을 보고 대학 때부터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졌었다. 사회변화의 최종 단계는 법제도화라는 관점에서 공익변호활동에 관심이 높다.

진행=송성수 본지 기획실장
정리=이재환 이향미 기자

 

제1호 13면 2007년 4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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