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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아직도 인터넷 자유를 믿는가

[시민운동 2.0]

 

나는 2년 반 만에 활동에 복귀했다. 안식년과 육아휴직을 마친 후였다.

복귀하고 나서 처음 맡은 일이 통신비밀보호법에 대한 것이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이라는 개정안을 처음 접하고 경악했다. 수사기관이 휴대전화 감청하는 것도 그렇고 인터넷 이용 기록을 통신사업자가 보관했다가 수사기관에 제공하도록 한 것도 그렇고. 심상치가 않았다.

심상치 않은 일은 그뿐 만이 아니었다.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되어 있었다. 처음엔 선거시기에만 실시되다가 7월 말부터 큰 사이트들에 의무적으로 실명제가 적용된다. 개별 기업이 필요에 따라 실시하는 실명제와 국가가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실명제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대체 지구상의 어떤 국가가 “너는 이상한 글을 쓸지도 모르니 민증 까고 써”라고 국민에게 강요할 수 있는가?

나는 예전처럼 활동을 시작했다. 인권사회단체들에 알리고 전문가 의견을 듣고, 글도 쓰고 사람들도 만나고…. 석 달 간 정말 열심히 뛰었다. 그런데 활동하는 내내 답답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대개의 사람들이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인터넷에서 만날 수 있는 반응들은 기대와 정반대의 것들이었다.

“제발 실명제 해줘. 찌질이들 좀 안보이게”, “저런 놈은 머리통에 CCTV를 달아서 일 년 내내 추적해야 해.”

사람들은 댓글 다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인권침해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자기 눈앞에서 거치적거리는 댓글 때문에 화를 냈다. 그리고 마침내 국가 개입을 요청한다. 짜증 때문에. 이들은 벌써 잊어버린 것인가?

1990년대 초반. 나는 아직도 처음 접속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처음 글을 올리던 날은 더 떨렸다. 그전까지 내가 만든 창작물은 모두 ‘과제’를 위한 것들이었다. 독후감, 그림일기, 백일장…. 일기나 편지 같은 자발적 창작물은 아주 은밀한 것이었다. 그런데 난생처음으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글을 발표하다니!

그게 나만 맛본 감격은 아니었다. 말뿐이던 ‘표현의 자유’가 날개를 단 것이다. 언론과 출판 권력만 누리던 표현의 자유가 일반 민중에게 개방되었다. 이제 누구나 자기표현 매체를 가진 시대가 온 것이다.

인터넷이 기술적인 자유를 주었다면 정치 체제의 변화는 우리에게 그 기술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거센 열망이 파도처럼 몰아치자 극단적인 감시 권력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고 비로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떳떳하게 정치 토론을 할 수 있었다. PC통신과 인터넷은 해방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모두가 열정적인 시대였고 자생적인 모임이 많이 만들어졌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정부가 사이버 공간을 검열할 때 많은 네티즌들이 분개했고 저항했다. 모두의 노력으로 ‘불온한 통신을 단속한다’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가 위헌 결정을 받은 것이 2002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정부가 통제해줄 것을 요청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87년 투쟁으로 소위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대되었지만 그만큼 거리의 정치는 점차 사라져 갔다. 투사들은 기성 정치권에 투항했다. 법치주의적 합리성이 증대되면서 운동은 법리 싸움이 되어 갔다. 양심적 병역거부, 이라크 파병, 새만금 문제에 대한 판단을 사법기구에 맡기면서 민주주의가 크게 위축되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997년 IMF 사태로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았다.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개편은 우리에게 정말 급격한 변화를 가져 왔다. 이제 사람들에게는 광장은 중요하지 않다.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일자리로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만 해도 힘에 부친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장만이 남았다.

이제 대중은 자기 정치를 생산하기보다 소비하는 데 만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포털이 만들어 놓은 매끈한 판매대에서 저항의 메시지는 쉽게 만날 수가 없다. 네티즌의 힘은 'OO녀'를 중심으로 한 유희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가난한 사람은 빵집 아가씨의 미담 사례에 등장하는 소재일 뿐이다. 우리의 손가락은 너무도 가볍게 키보드를 누빈다.

우리가 생산하는 정치는 어디 있을까. 우리가 직접 만들고 표현할 수 있는 매체, 인터넷이 여전히 정치 실현의 장이 될 수 있다면 그 장을 지키기 위한 우리 투쟁도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전자 광장은 쭈그러들고만 있다.

“자유의 기술들이 지배의 기계들로 전화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제13호 15면 2007년 7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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