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남용 억제와 차별 시정’을 목적으로 한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 중에서도 더욱 열악한 조건에 있는 비정규직들을 실업이나 고용불안정으로 내몰고 있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20여일 이상을 농성장에서 (스스로) 갇혀 보내면서 단지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주장이 전부인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상황은 대체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엄마를 찾아 농성장을 찾은 아이들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통스럽게 한다.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에 들어가고 강제 해산을 맞게 된 경과나 원인은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되어 왔다. 비정규직법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대량 해고와 실직, 고용 불안정과 간접고용관계로 전환되면서 노동조건 악화 등은 그동안 누누이 지적되어 온 사항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이랜드 사태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가 왜 여성들에게 더욱 가혹한 현실로 나타나는가?
첫째, 성별 직무분리가 엄격한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일자리는 직군제에 의한 분리나 외주화로 처리하기에 가장 손쉬운 대상이다. 새 법의 차별 규정은 동일한 생산 공정에서 직접고용 노동자와 간접고용 노동자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을 차별로 보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보아 분리된 직무 중 한 부분을 직군제나 외주화의 대상으로 처리하는 것이 법적 규제를 피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 이런 점에서 성별로 나누어진 업무의 분리는 외주화나 직군제를 통한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구실이 될 수 있다.
둘째, 여성은 생계의 주 책임자가 아니라 생계보조자라는 통념과 그 결과 여성의 임금은 극단적인 저임금에 묶어두어도 된다는 기업의 인식이 있다. 그러나 이번 이랜드 농성에 참여한 여성노동자들을 살펴보면 30~40대 여성들이 많고 이들 중 다수는 소득이 없이는 가족의 생계와 자녀 양육이 어려운 상태에 있다. 정부에서도 2005년도 초반 이를 선언한 바가 있듯이, 사회복지체계가 보편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기본적인 생계는 물론, 주택, 교육, 의료 문제를 해결해 가는 책임은 온전히 개별 가족에게 주어져 있고, 남성의 조기 퇴직과 고용불안정이 만연한 지금 여성의 취업은 가족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 되고 있다.
셋째, 남성중심의 경영진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주변적이고 취약한, 즉 조직화 수준이 낮은 여성들의 업무를 우선적으로 외주화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시도들이 여러 군데서 나타나고 있다. 원래 외주화나 정리해고, 직군제의 실시 사유는 기업이 당면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구체적인 경영합리화 조치와 직접 관련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구조조정은 남성관리자나 경영자의 입장에서 여성중심 직종이나 여성노동자들이 우선적 대상으로 포함되고 있다. 또한 고용불안정의 사회적 효과, 특히 생계가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자집단의 실업, 노동조건의 악화가 가져올 사회경제적 결과와 그로 인한 비용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당초 노동자에게 현저히 불리한 형태로 비정규직법을 만들어 온 것은 물론 공권력 투입에 의한 강제 해산이라는 이 사건은 앞으로 비정규직법이 시행되어갈 사회적 맥락(조건)을 예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통탄스럽다. 노사협상 당시부터 “공권력 투입”을 운운하며 노동측의 입지를 완전히 축소시켜버린 정부의 태도를 보면 과연 이번 사태를 여기까지 몰아온 책임의 소지가 1차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법의 시행이 채 1달이 되지 않았지만, 이미 이 법의 기나긴 제정과정부터 외주화나 직군제, 정리해고 등 법적규제를 피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이 수없이 이루어져 왔고, 지금 현재 우리는 월 100만원이 안 되는 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그 희생양이 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묻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 8시간 가까이 일하면서 100만원이 안되는 임금을 받고 일할 사람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런 일자리마저 빼앗길 것이 두려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농성장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이들이 누구인가? 몸은 농성장에 있지만 끊임없이 아이들과 가족들을 걱정해야 하는 돌봄노동의 몫까지 지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새 법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노동자집단의 노동조건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여성은 한국 사회에서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성차별적 조건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KTX 여승무원의 투쟁이나 오늘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이랜드 여성노동자의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제13호 7면 2007년 7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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