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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문화

"고물이 아니라 보~물입니다"

'반쪽이'의 고물 자연사박물

 

친환경 체험하고 생활의 변화까지 경험

다 쓴 소화기, 부서진 마우스와 키보드의 알알이 빠진 자판들, 녹슨 철모와 안 쓰는 옷걸이, 유효기간 지난 카드, 구부러진 숟가락 등은 일반적으로 원래 부여된 제 몫을 다하고 폐기처분을 기다리는 쓰레기 혹은 고물들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는 시구처럼 이 고물들은 한 작가에겐 꽃처럼 아름다운 작품의 재료들이다. 우리에겐 버려야 할 것들이지만 작가에겐 버릴 수 없는 보물들이다.

 

최정현 작가

‘반쪽이’ 만화가로 유명한 최정현 작가가 20년 동안 산업폐기물과 고물 등을 모아 300여점의 정크 아트를 만들었다. 지난해 서울 북촌미술관에서 전시돼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작품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작품들도 선보이는 이번 전시회는 19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반쪽이의 고물 자연사 박물관 II'란 이름으로 열린다.

“영국의 런던자연사막물관을 간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하지만 단지 뼈를 보러 온 거잖아요. 사람들이 유명해서 오긴 하는데 재미없어서 두 번 보러 오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이런 것들을 고물로 만들면 재미있어서 사람들이 두 번 이상 보러 오겠다는 생각으로 전시회를 기획했습니다”라고 최 작가가 이번 전시회를 기획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빨간 소화기로 만들어진 ‘뜨거운 나라에서 온 펭귄 가족’은 지구온난화로 동물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음을 우회적이고 쉬우면서도 가슴이 뜨끔할 정도로 날카롭게 표현해낸다. 개발의 상징인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제 길을 잃은 동물들이 고속도로를 건너다 죽는 경우를 폐타이어를 이용해 납작한 고양이를 만들어 ‘로드 킬’이란 제목으로 희화화하기도 했다.

환경재단

뜨거운 나라에서 온 펭귄 가족


‘네티즌’이란 제목이 붙여진 작품은 작품을 보고 무릎을 ‘탁’ 칠만하다. 키보드로 만들어진 코브라가 사납게 입을 벌리고 있고 마우스로 만들어진 쥐 떼들은 코브라를 공격하고 있다. 익명성 뒤에 숨어 악성 댓글로 무장한 네티즌의 잔인함과 힘을 표현했다. 또한 ‘미국을 먹여 살리는 장수거북’은 미군 철모를 이용해 만들었다. 이 밖에도 사회적 문제가 된 지역인 철원의 독수리나 새만금 게들을 고철로 만들어 작가의 안타까움을 표현해냈다.

환경재단

네티즌


재료를 보면 바로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영감이 바로 떠오른다는 최 작가의 작품에선 예술성과 해학적 풍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에게 거부감 없이 작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해주는 살가움을 느낄 수 있다.

최 작가는 시사만화가이자 생활 만화가로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개인적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왔다. 1995년에는 평등 부부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자녀를 키우면서 고민하는 내용들을 만화책으로 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림보다는 손수 만드는 작업에 흥미를 느껴 목공작업을 거쳐 철공소에 버려진 산업폐기물을 가지고 용접하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환경재단

미국을 먹여살리는 장수 거북


최 작가는 “사람들이 만화를 그만뒀냐고 묻는데 내가 오랫동안 시사만화를 그렸잖아요. 그 때 만화로 하던 얘기를 지금은 용접으로 만들어낸 작품으로 하는 것일 뿐입니다. 만화를 그만둔 게 아니라 만화로 얘기하는 것을 그만둔 게 맞습니다”라고 말했다.

오프닝 행사에는 이윤기 소설가도 참석해 “평소 최 작가의 작업실도 자주 찾아가는 사이라서 작품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가장 가깝게 봐왔다”며 최 작가의 작품이 전시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것을 축하했다.

환경재단

사자


한편 전시관의 맞은 편 공간에서는 전시기간 동안 매일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이 상상 세계를 경험하고 동시에 ‘환경’을 배우고 생활의 변화를 가질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꾸며놓았다. 어린이 체험 워크숍 ‘멸종동물 구출 대작전’ 코너에서는 직접 버려진 나뭇가지를 이용해 멸종 동물을 만들고 편지를 써보도록 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우수 환경애니메이션을 무료로 상영한다.

“망치는 못만 쳐야 하고 칼은 무언가를 자르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넘어서 다르게, 뒤집어 상상하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점을 관객들이 느끼고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자기에게 닥친 상황들을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뒤집어 보면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라는 최 작가의 말처럼 앞으로는 다 마신 음료 캔이나 고장난 TV 등을 버릴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감춰진 상상력을 동원해 새롭게 만드는 법을 연습해보자. 언젠가 만나게 될 문제를 뒤집는 힘이 생기기를 기대하면서.

 

전상희 기자

 

제13호 11면 2007년 7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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