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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노동&인권

'현대판 노예' 벗고 싶다

[현장르포]이랜드 비정규직 투쟁 현장을 가다

 

"복직해 동료들과 열심히 일할 생각 뿐"
분신자 심경 이해… "시민사회 관심을"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싸울 수밖에 없어요. 분신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젠 알겠다니까.”

비가 내려 찬 기운이 올라오는 홈에버 월드컵점 바닥에 박스를 깔고 앉아 구호를 외치던 정복숙 씨(50)는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올해 10월이면 홈에버 목동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 지 4년이 되는데 지난달 10일 매니저를 따라 들어간 방에서 계약만료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원래는 파견사원이었어요. 그러다가 과장님 추천으로 비정규직으로 들어왔지, 열심히 일해서 정규직 되려고. 난 비정규직법 통과됐을 때 이제 나도 드디어 정규직 되는구나 하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비정규직법 시행의 결과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의해 재고의 여지도 없이 추진된 비정규직법이 7월 1일 시행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불거진 이랜드 사태가 난항을 겪고 있다. 이랜드 계열사인 뉴코아에서는 330여명이, 홈에버에서는 350여명이 집단해고 됐다. “4월부터 해고사태가 일어났어요. 그래도 제일 처음 해고된 홈에버 시흥점의 호혜경 씨에 대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고 나도 3년 반 이상이나 근무했으니까 안 잘릴 줄 알았지요.”

김상택 기자

이랜드노조는 서울 홈에버 월드컵점에서 사측이 1일부터 시행된 비정규 보호법을 회피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비정규직 대량 계약해지를 하자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혈압이 높고 심장도 안 좋지만 집안 살림에 보태기 위해 매일 열심히 출근했던 정 씨는 해고통지를 받고 너무 속이 상해 다시는 홈에버 근처에도 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조금 쉬다가 다른 데 알아볼 생각이었어요. 근데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똑같이 일해도 더 적게 받는 거 참으면서 열심히 일했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가족들한테 신경질만 부려서 이대론 안 되겠구나 싶어서 농성 시작하는 날부터 나왔어요.”

이랜드 노조가 홈에버 월드컵점과 뉴코아 강남점에서 농성을 벌인지도 2주가 지났다. 지난 10일 어렵게 마련됐던 노사협상은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는 노동부가 제 역할을 담당하지 못한 가운데 노사간 입장차만 확인하고 결렬된 후 별다른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측은 ‘노조의 점거농성 해제’를, 노측은 ‘부당해고자 복직’을 선조건으로 내걸며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책임은 중재안을 만들고도 이랜드 노조 측에 충분히 알리지 않은 노동부에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책임을 져야 할 노동부는 노사협상 결렬로 이랜드 노조의 농성이 확산되는 것을 불법행위로 규정하며 공권력을 투입해 막겠다는 움직임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자꾸 거짓말을 하잖아요. 단체협약 제16조에 보면 18개월 이상 근무한 조합원은 정당한 사유없이 해고할 수 없다고 나와 있는데 그 조건에 해당하는 나를 보란 듯이 해고해놓고 그런 적 없다고 말하는 것 좀 보라니까요. 그리고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은 우리 이랜드 노조에서 도움을 요청해서 연대해가지고 함께 싸우는 건데 자꾸 테러행위다 뭐다. 온통 거짓말뿐이라니까.”

한편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지지와 동참,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 대부분이 여성들이기에 지난 10일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한 28개의 시민단체가 정부와 이랜드 그룹에 비정규직 대량 해고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지지성명을 냈다. 이런 움직임을 시작으로 지난 13일엔 한국진보연대(준)과 문화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130개 시민단체가 ‘뉴코아이랜드 유통서비스 비정규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이랜드 그룹은 계약해지 철회와 교섭에 성실하게 임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이랜드 계열사 주요 매장에서 1인 시위와 선전전을 벌여 시민들과 함께 이랜드 계열사 제품 불매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상택 기자

2주가 넘게 지속되고 있는 홈에버 월드컵점 농성현장에서 이랜드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농성하고 있다.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 우리보다 열악해서 노조도 없는 곳의 노동자들을 위해, 또 언젠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지도 모르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끝까지 싸워야지요.”

옆에 앉아서 대화를 들으며 같이 고개를 끄덕이던 정규직 노동자 김애수 씨(52)도 할 말은 많다. “나도 까르푸 시절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해서 1년 뒤 정규직이 됐어요. 경영진이 한국사람으로 바뀌면서 회사 상황이 더 나빠졌어요. 정규직들도 지금 전환배치라고 해서 서울 사람을 부산이나 광주로 발령했는데 지금 비정규직 문제로 시끄러우니까 대기 중이지. 근데 그게 뭐겠어요, 그만 두란 얘기지. 이번 문제는 비정규직, 정규직 나눠서 싸울 문제가 아니에요.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싸움 언제 끝날까”

이 싸움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르지만 “빨리 복직돼서 동료들이랑 내가 일하던 곳에서 웃으면서 행복하게, 열심히 일하는 게 지금 가장 큰 소원”이라며 정 씨는 다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자세를 바로 한다. 사진을 찍겠다는 말에 정 씨는 “나 사진 찍히면 우리 아저씨 걱정해서 안 되는데…”라며 정작 건강이 좋지 못한 자신보다 가족을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이 곧 나의 아픔으로 번질 수 있기에 함께 싸운다는 박애의 정신이 굳건할 때 그 사회는 한 걸음 진전할 수 있다.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에 시민사회가 귀 기울여야 할 이유이다.

 

전상희 기자

 

제12호 1면 2007년 7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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