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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우리는 취재현장에 돌아가고 싶다”

[시사저널 사태 긴급기고]

장마를 예고하는 비가 제법 사납게 뿌리던 지난 21일 서울 북아현동 한 주택 앞에 푸릇푸릇한 젊은이 10여 명이 모였다. 생명·평화·나눔의 기치를 내건 사회단체 ‘나눔문화’(www.nanum.com) 소속의 대학생들이었다. 기자들 가운데 그들을 이 곳에 오게끔 요청한 이도 제대로 아는 이도 없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순도 100%의 자발성으로 시사저널 노동조합의 단식투쟁 장을 찾았다.

‘젖은 눈으로 도전하자’라는 문구가 씌어진 짙은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대학생들은 ‘바위처럼’을 불러 우리 눈을 젖게 만들었다. 이어지던 다른 노래의 후렴구던가. ‘아빠, 엄마 힘내세요’란 가사 대신 ‘기자님들 힘내세요’라고, 그들은 최대한 아이답게 앙징맞게 부르려 애썼다. 나는 이 대목에서 더 이상 그들을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눈을 탈출하려던 내 눈물은 돌연한 차단에 안에서 머뭇거렸다.

사실 대학생들이 오기 전부터 우리는 흥건히 젖어 있었다. 일곱 명의 노인 때문이었다. 가파른 언덕 비탈길을 오르는 민주화운동실천가족협의회 어머니들은 곡기를 끊은 이들보다 더 위태로워 보였다. 몇몇 분들은 부축을 받아야할 정도였다. 한 어머니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분초를 다투며 취재 현장을 뛰어다녀야 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이토록 오래 싸우고 있으니 어째요. 이제는 굶기까지 하고 있으니….”

나눔문화 대학생들과 민가협 어머니들은 봉투를 내밀고 돌아갔다. 경제활동에서 한참 비켜있는 그들이 업을 파한 이들에게, 없는 자가 없는 자에게 건네는 그 천금보다 귀한 것을 보며 우리는 또 울컥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토록 시사저널 기자들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건 만, 아니 상식의 잣대로 보면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는 시사저널 사태는 1년을 넘겨서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6월 삼성 이학수 부회장 관련 기사를 사장이 무단 삭제한 후 발발한 사태는 대화를 통한 숱한 협상 시도에도 불구하고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경영진은 뒷구멍 기사 삭제에 이어 최근에는 뒷구멍 매각 시도까지 벌였다. 심지어 법과 원칙을 중시한다는 사측은 자기들이 명예훼손으로 피소한 고경태 전 한겨레 21 편집장에 대한 법적 판단이 무죄로 내려졌음에도 아랑곳이 없는 듯하다.

급기야 끝을 보려고 노조 위원장과 사무국장은 단식을 결행했다. 그들이 처음 단식을 입에 올렸을 때 우리는 거세게 그들을 몰아세웠다.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냐. 제발 자학투쟁은 하지 말자. 1년 동안 우리는 할 만큼 다했고, 아름답게 잘 싸웠다고 자부한다.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하지만 노조 집행부는 완강했다.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슬프고 고통스러워서 단식을 만류했던 나는 이제 그들을 이해하고 지지한다. 사람이 곡기를 끊는 것만큼 결기를 보여주는 일이 더 어디 있으랴.

각오는 했지만 단식 현장은 우리의 예상을 웃돌았다. 사측은 구청 사람을 동원해 우리가 땡볕에서 굶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쳤던 그늘 막을 끌어내렸다. 단식하는 자들을 햇빛에도 말려버릴 심산인 모양이다. 땡볕보다 그들의 비인간적인 행태에 우리는 지글지글 끓는다. 만취한 직원을 보내 농성장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 아무리 처지와 생각이 다르다 해도 이것이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이 할 짓인가? 부끄럽고 무참해진다.

우리는 지금 사주 집 앞에서 그의 마지막 결단을 촉구하는 최후의 시도를 하고 있다. 어리석은 미련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사저널 기자로서 살아왔던 지난 역사를 정리하고 이별하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듯하다. 그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새로운 희망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오래 있지는 않을 것이다.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굶는 동료와 후배 앞에서 어느 후배의 표현처럼 아귀처럼 먹고 있다. 걸신들린 듯 먹어도 허기를 느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힘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새로운 희망을 현실로 만들 것이다. ‘바위처럼’이 귓가에 맴돈다.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 시사저널 사태 1주기 기자회견장에서 한 후배가 들고 있었던 피킷 문구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시사저널 기자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취재현장에 돌아가고 싶다.”


장영희 시사저널 기자

 

제9호 18면 2007년 6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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