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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지구촌

미디어,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파동

아시아미디어회의 열린 콸라룸푸르에 가다[1]

 

공공서비스방송, 민주주의의 신경계
시민기자제, 공론장 미디어의 가능성


지난 5월 29일에서 31일까지 사흘간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아시아미디어회의(Asia Media Summit, AMS)가 열렸다. 아태-유럽미디어회의에 못지않게 중차대한 국제 미디어회의로 여겨지고 있는 이번 회의는 콸라룸푸르에 있는 아태방송개발연구원(AIBD)가 올해로 4 번째 주최 주관했다. AIBD는 아태지역에서 특히 개도국 방송 전문성을 높이고 지역간 교류, 개도국 지원 등 국제적으로 중요 이슈를 공공미디어 확대 등의 의제로 발전시켜려는 목적으로 지난 1977년 아태방송연합(ABU)이 유네스코와 함께 유엔개발계획(UNDP), 국제텔레콤연합(ITU)등의 도움을 받아 설립한 비영리 국제 미디어교육개발기구다. 쿡(Cook) 제도 서부 이란에서 태평양의 서사모아에 이르는 아태지역 국가 26개국 회원국과 52개 회원기구를 두고 있다.

아시아미디어회의 마지막날 <시민사회신문>을 대표해 발제자로 참석, 한국의 언론상황을 소개하는 김레베카 기자의 모습 -AIBD 제공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 중동 지역 전역에 유럽방송연합(EBU) 등 250여개에 이르는 방송, 미디어 관련 단체와 프리드리히에베르트스티프퉁(FES), 도이치벨레(DW), 말레이시아국제전략연구소(ISIS) 등의 지원협력 파트너를 두고 있다.

역내 민주주의와 인권의 공고화를 위해서는 특히 개도국 방송인들의 능력 향상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설립 취지에 따라, 지난 30년간 AIBD가 주로 담당해온 업무도 역내 방송 엔지니어들, 교사, 전문가 그룹들의 훈련 교육이고, 주된 영역은 신기술개발, 라디오와 TV프로덕션, 방송매니지먼트, 공동체문제의 방송의제화(공공미디어의 질적개발) 등이다. 이외에도 이를 역내 회원기구와 파트너들과 발 빠르게 공유, 진일보시키는 각종 회의와 세미나 등을 주관해왔는데, 여기에는 공공서비스방송(Public Service Broadcasting, PSB)의 개발, 이를 통한 국제 개발의제의 확산과 주류화가 포함된다. AIBD가 파트너 기구들과 손잡고 이제껏 추구해온 의제로는 빈곤퇴치, HIV-AIDS예방, 여성권과 아동권 확대, 간문화성 이해를 높이기 위한 지역간 미디어 교류 확대 등이 있다.

이번 회의는 이들 의제 가운데서도 특히 공공서비스방송에 초점을 맞췄다. 중요 파트너 중 하나인 ABU는 그동안 HIV-AIDS예방 방송 캠페인을 활발히 벌여왔고, 그 과정과 결과물은 사전 워크숍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공개되었다. 이제 저간의 노력을 모아 쓰나미나 조류독감 등 사전 경고와 예방이 얼마든지 가능한 재난 등을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역내 ‘조기경보 방송네트워크(Early Warning Broadcasting Network)’이 추진되고, 오는 8월 델리에서의 회의를 기점으로 공식화할 예정이라고 지난 6년간 ABU 개발프로젝트 부서에서 관련업무를 맡아온 한국방송(KBS)의 배기형씨는 말했다.

사전 워크샵 중 하나가 이 PSB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 아태 각지역에서 온 참가자들은 특히 PSB 확산을 위한 재정지원대책안마련, 빈곤 대도시나 전기가 아예 없는 농촌지역에 PSB를 기술적으로 확산시킬 방안 등을 심도 깊게 논의했다. 스리랑카에서는 방송 광고료 수입의 2%를 국가가 따로 떼어뒀다가 나중에 PSB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신용기금으로 전환한다는 등의 사례가 하나씩 발표되었고, 빈곤지역 미디어권 확대와 관련해서는 특히 ‘공동체 라디오방송서비스’가 중요 의제로 부각되었다.

김레베카

회의 중 논의를 이어가는 아시아미디어 회의 참석자들


본회의 에서는 이밖에 라디오네팔, 중국 CCTV, 인도방송공사, 영국 BBC, 남아프리카방송공사, 한국방송 등 50여개가 넘는 방송 미디어 기관 종사자들과 ‘미국인들이 알고만 있다면(If Americans Knew)’, ‘젠더 링크(Gender Link)’, ‘정의로운세계를위한국제운동(JUST)’ 등 엔지오 관계자, 기타 유엔기구, 국제연구소 소속 참가자들이 총 8개 주제를 놓고 사흘간 열띤 토론을 벌였다. 빈곤 완화와 관련해서 BBC월드서비스트러스트 국장인 스테판 킹(Stephen King)은 BBC가 캄보디아 지역(local) 방송파트너와 손잡고 벌였던 공공위생 관련 방송캠페인 하나를 소개하면서, BBC같이 국제적인 신용도 자원도 다 갖고 있는 방송이 특히 심각한 빈곤문제를 안고 있는 지역의 방송 파트너들과 굳게 손잡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한편 ‘스트레이츠타임스'(The Straits Times), ‘토론토스타’(Toronto Star) 같은 프린트미디어 관계자들과 알자지라(Al Jazeera) 등 분쟁지역 미디어 종사자들은 전문기자와 시민기자 간의 경계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결국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감시하고 책임하는 일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시민과 기자는 동일한 신분임을 강조했다.

기자는 <시민사회신문>을 대표해 마지막 ‘공공생활에서의 성실성과 충직성: 미디어의 역할’ 발제자로 참여했다. 한국에서 공공 미디어의 숨통을 끊어놓으려 덤비는 것은 예전 같은 국가공안기구라기보다는 오히려 대기업언론과 대기업임을 역설하면서, 개정과 위헌판결 등을 통해 악화일로를 걷고있는 신문법과 최근 따로 편집실을 꾸려 장기투쟁에 들어간 시사저널 사태를 주요사례로 소개했다.

이슬람이 나아가야할 길
콸라룸푸르의 살아 숨쉬는 시민사회

콸라룸푸르는 인종과 문화, 군주제와 민주주의, 인권과 이슬람이 묘하게 뒤섞여 있는 곳이었다. 기자는 회의가 끝난 뒤에도 나흘간 더 머물면서 말레이시아 진보 시민사회를 견인해가는 몇 개 중요 엔지오단체들과 지식인들을 취재할 기회를 얻었다. 그 취재원들을 전부 모아놓고 한발 물러나 지켜보니 그림이 자못 흥미로웠다.

가령 지난 1989년 생겨난 말레이시아민중의목소리(SUARAM)은 말레이시아 인권문제 전반을, 신생 민주주의반부패운동(GERAK)은 반부패운동이 말레이시아 내에 시민사회 공간을 확장하고 이슬람을 쇄신하는 데 아마 가장 중요하리란 점을 알게 해준 곳이었다. 이들은 그러나 이슬람 자체의 ‘보편성’을 다른 인권적 가치들과 똑같이 놓고 보면서 마찬가지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는 정의로운세계를위한국제운동(JUST)과는 또 묘하게 어긋나는 데가 있었다.

앞 두 단체는 말레이시아내에서 국내치안법(ISA) 반대운동의 도화선이 된 지난 1987년 오페라시 랄랑(Operasi Lalang, 반대파와 좌익 활동가 106명을 잡아들인 ‘제거작전’) 때 잡혀들어갔던 젊은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조직들이었고, JUST는 다인종사회 민주주의 문제를 연구하는 국민의식운동(ALIRAN)을 만든 정치학자 찬드라 무자파(Chandra Muzaffar)가 이끌고 있는, 시민의 민주적 인식을 오히려 확장하는 수단으로서 ‘새로운’ 이슬람을 강조하는 그룹이었다.

다인종 다문화를 내세우면서도 전 지구적 정치역학을 또한 강조하는 한편 반세계화운동을 일종의 반식민주의운동으로 전화시켜내는 오묘한 기술이 무자파 선생에게 있다면, GERAK 회장 이잠(Ezam)이나 사회당 당수 나쉬르 하심(Nasir Hashim)과 마찬가지로 1987년 수감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 당수 사리 숭입(Saari Sungib)은 이슬람이 이슬람(전통, 문화, 삶의 양식)으로 존중받을 인간본연의 권리를 강조한다. 당연히 이슬람을 앞에 내세우지 않는 그룹에는 가령 SUARAM같이 중국인의 비율이 월등 높았다.

요즘 판금서적이 되는 바람에 더 입소문이 난 ‘5월 13일’(올해 SUARAM이 펴낸 쿠아키아송(Kua Kia Soong)의 보고서. 유명한 1969년 5월 인종폭동에 대한 주류 말레이적 시각을 철저히 해체했다) 등 사례가 보여주듯 주류, 비주류 인종집단 간 긴장과 불협화음은 예상보다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었다.

SUARAM의 사무국장 얍쉬이성(Yap Swee Seng)을 비롯해서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비무슬림에 대한 법적 보호 불평등과 불충분성(종교법 샤리아와 종교법정의 존재 등)은 찬드라 무자파가 얘기하는 이슬람의 보편적 차원(“이슬람의 보편적 차원은 말레이시아인들이 자신들의 인종적 배타성에서 해방되도록 만드는 수준까지 철저히 현실화되어야 한다”, 2007년 4월 ‘투데이 뉴스페이퍼’와의 인터뷰 중에서)만 갖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아시아미디어회의가 시작하던 날 마찬가지로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제3차 세계이슬람경제포럼의 ‘허상성’을 몇몇 미디어 기사가 지적하듯 말이다. 이들 기사는 이슬람개발은행 회원국 56개국의 수출량이 서방 선진국에 대해서는 51.5%인 반면 ‘무슬림권’국가들에 대해서는 13.5%에 그치고 있는 현실을 들어 소위 ‘무슬림권’은 허상이라고 일갈했다.

말레이시아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인종, 종교, 문화적 경계선들은 가령 5백만 명을 상회하며 현 말레이시아 노동력의 50%에 달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네팔,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15개 인근 아시아국가에서 쏟아져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다. 이는 다시 험악한 노동에 일일노예처럼 종속돼 살아가는 다수 하층민들의 최소한의 생계문제, 시민권과 노동인권 문제와 연결되는 문제였다.

지난 1월 ‘말레이시아의 이주노동자’ 워크숍에서 노조운동가 스예드 샤히르(Syed Shahhir, 가장 큰 노조 MTUC 회장)는 바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말레이시아인’이란 부끄러운 명예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그때의 그 ‘명예’는 바로 주류 이슬람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정치에 새 박동을”
‘수감자’ 안와르 이브라힘

김레베카

정치수감자로 안와르를 묘사한 포스터

마침 전당대회를 끝내고 최고위원들을 선출한 후 처음으로 말레이시아 시민사회와 상견례 중이던 인민정의당(PKR) 간판스타이자 전 부총리 안와르 이브라힘을 만났다. 그는 지난 정치적 이유로 인한 법정판결에 의해 내년 4월까지 공직에 나서지 못한다, 당원들은 그래서 그의 아내를 당수로 선출했다.

그는 한때 집권당 말레이국민연합(UMNO)의 촉망받는 차세대주자이기도 했다. 총명했고, 주류 이슬람 세력 안에서 곱게 컸다기보다는 말레이시아 사회 여기저기를 지나와본 탓으로 말레이시아인들의 사랑을 받았다.(사회당 당수 하심 등 과격파는 똑같은 점 때문에 그를 비판하지만)

이 때문에 순식간에 마하티르의 적으로 몰려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던 그는 이제 당의 재정비와 함께 재기를 노리고 있었다. 신생 국제 민주주의지원재단인 ‘미래를 위한 재단’(Foundation for the Future)의 회장이기도 한 그는 최근 ‘말레이시아 경제 어젠다’ 등 마하티르식 폐쇄, 불균등 경제정책(신경제정책)을 정면에서 뒤집는 경제 개혁의제를 속속 내놓는 한편 말레이시아 ‘노동헌장’을 제정하자고 주장하는 등 마하티르 장기집권으로 억압당해온 인권개혁 등 시민사회활성화에도 적극 개입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레베카 객원기자 민주주의와사회운동연구소 연구원

 

제8호 11면 2007년 6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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