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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풀뿌리

"여기, 새싹 비빔밥 3인분이요"

생기·활력, 풀뿌리 시민운동가를 만나다

싹이 난지 일주일 남짓한 어린 채소에는 몸에 좋은 영향소가 한 가득입니다. 나른한 봄, 찌뿌드드한 몸을 깨우기에 새싹비빔밥이 제격인 이유입니다. 여기 시민사회운동에 활력을 전염시킬 새싹비빔밥 같은 풀뿌리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시민사회신문>의 풀뿌리자치면 첫 기획은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편집자

남북어린이 소통, '문화의 힘'으로

“아이들은 맛있는 거 먹게 해주고 몸으로 부대끼며 노는 게 최고에요.”

박희영 한국문화 복지협회 교육사업팀장

탈북청소년들과 1박 2일의 워크숍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이라 지쳐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무색하게 박희영 한국문화복지협의회 교육사업팀장은 생기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워크숍은 한국문화복지협의회에서 탈북청소년과 정신장애인의 사회적응을 돕기 위해 기획한 시범사업의 첫 번째 프로그램이었다.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셋넷학교’와 함께 진행할 이 시범사업은 그 동안 탈북청소년들이 어떻게 남한 사회와 소통할 수 있을까 서로 고민해온 결과다.

“작년에 탈북청소년들과 남한청소년들이 캠프에서 처음 만나던 순간의 팽팽했던 긴장감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고 무조건 몸 부딪치며 놀게 하면서 그 긴장감을 해제시켰죠. 그날 밤 아이들이 정말 진솔하게 얘기를 하더라구요. 처음에 너 너무 싫었다는 얘기까지.” 몸과 마음이 열린 아이들은 상대방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친구들을, 또 자신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서로 치유가 되는 아이들을 보며 박 팀장은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탈북청소년들이 ‘셋넷학교’에서 배운 탈춤과 마임을 무기삼아 남한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작년 10월 남산에 있는 아동보육시설에서 아이들은 ‘데뷔’ 무대를 가졌다. 이때도 탈북청소년들과 보육시설의 아이들은 처음엔 적대감을 표출했지만 공동체 놀이와 축구를 통해 자연스레 어울렸다.

“저는 문화의 힘을 믿어요. 아이들을 보며 말로 하는 소통이 안 될 경우에는 다르게 풀면 된다는 걸 다시 깨달았죠.” 탈북청소년들은 5월부터 본격적으로 공연내용을 배우고 9월부터는 서울지역의 정신장애시설을 찾아 공연봉사활동을 할 예정이다.

박 팀장은 대학 때 노래패 활동을 했었다. 계속 음악활동이 하고 싶었지만 현실이 여의치 않아 직장생활을 선택했다. “삶이 피폐해 지더군요. 하고 싶은 거 못하고 사니까. 그래서 과감하게 정리하고 시민단체에 들어갔어요.”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며 박 팀장은 특히 지역문화운동에 관심이 생겼고 그러던 차에 안양의 디딤돌문화원에서 일하게 됐다. 그게 스물여덟살 즈음의 일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문화복지&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박 팀장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

하고 싶어 하던 일 하니 힘든 거 없겠다고 철없이 묻자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저 이번에 결혼하는데 돈도 하나도 못 모으고 힘들어 죽겠어요. 정부가 문화복지사업을 시장논리로 진행하니까 단체들은 경쟁하게 되고 활동가들은 지치고, 어떻게 지원해야 사업이 풍부해지고 깊어지고 오래갈 수 있는지를 몰라요.”

이런 문제의식은 박 팀장의 바람으로 이어졌다. “누구나 문화를 누릴 권리가 있어요. 하지만 사회취약계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회복지사나 활동가들은 그 당연한 권리를 누릴 여유가 없죠. 그래서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에 미쳐서 열심히 하지만 삶이 고달프고 피곤한 사람들을 위해서요. 그들이 행복해야 그 다음이 있으니까요” 6월의 신부는 수줍게 웃었다.

사진을 찍자고 하자 “다음 주에 웨딩촬영도 해야 하는데 아직도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어색해서 큰일”이라며 엄살을 늘어놓는다. 역시 엄살이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와선지 아니면 곧 즐거운 일을 앞두고 있어선지 감출 수 없는 상큼한 미소가 돌아왔다. 그 미소가 궁금하신 분들은 오는 6월 3일 시간 비워두시길.

공공미술로 재래시장에 활력을

유창환 '프로젝트 쏠' 대표

블로그 닉네임 ‘흰머리.’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룹인 ‘프로젝트 쏠’의 유창환 대표를 만나자마자 이름이 아닌 닉네임을 먼저 부르는 실례를 한 것은 그처럼 어깨까지 내려온 흰머리가 멋스럽게 어울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였다.

어수선한 첫 인사를 나눈 후 찾아간 마산 부림시장 내 상가건물옥상에 자리한 싱그러운 연두색 스튜디오는 올 해 부림시장 번영회에서 마련해 준 곳이다.

“처음에는 무조건 시작했어요. 시장 상인 분들도 뭐하나 싶으셨겠죠. 예술한다는 사람들이 와서 쓰레기나 치우고 있으니. 그러다가 그분들도 뭔가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셨는지 조금씩 도와주셨어요. 그날 하루 번 3만원 전부를 주고 가시는 분도 계셨고 끼니마다 음식 가져다주신 분들도 있었죠.”

마산 부림시장은 약 8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이다. 하지만 다른 재래시장들처럼 사람들의 기억과 삶에서 잊혀져가며 많은 점포들이 문을 닫고 시장엔 쓰레기만 쌓여가고 있었다.

그런 부림시장이 지난 해 9월 새롭게 태어났다. ‘프로젝트 쏠’과 경남대 미대 학생들이 힘을 합쳐 진행한 ‘행복시장 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작가들은 한 달 동안 상인들이 떠난 빈 점포에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설치했다. 시장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현장에서 시민들과 예술가들이 직접 만나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공유할 수 있어서 재미도 있었고 희망도 보았다고 유 대표는 말했다.

올 해에도 할 일이 많다. 어시장에서 부림시장으로 올라오는 길에 있는 약 80~100개의 노점상 파라솔에 한국의 자생 들꽃들을 그릴 예정이고, 아케이드 설치로 생긴 시장의 천정에는 한국 전통 인형들을 모빌처럼 매달 예정이다. 빈 점포에는 미니 갤러리를 꾸며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찾아가는 미술관’도 계획 중이다.

공자는 말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고. “제가 미술을 너무 좋아하니까, 이렇게 사는 게 재밌으니까 하는 거죠 뭐. 그러다가 내가 해야 할 일이 보여서 하는 것뿐이에요.” 도인처럼 보이는 건 외모만이 아니다.

예민하던 청년 시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유 대표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실존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노동자들을 보며 자신 또한 예술가로서 나태해져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예술가들이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작업을 하고 그 작업을 통해 예술가들도, 일반인들도 서로 가져가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게 공공성 아닐까요.” 그에게 공공미술이란 자신이 속한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토대로 지역 특성을 살리는 작업을 의미한다. “몇 십억씩 예산을 들여 서울예술가들에게 의뢰한 작품을 지역에 설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돈 낭비지. 지역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면서 느끼는 현실과 예술성이 조화를 이룰 때 공공미술로써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유 대표는 힘주어 말했다.

“결국 미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딴 짓 안하고 그림만 그려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현장으로 뛰어들 수 있겠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작업하고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공간, 이런 게 공공미술에서 필요한 부분인데 그런 형태의 센터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길게 보고 천천히 가고 있지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유 대표와 그의 젊은 동료 작가들이 지치지 않고 즐겁게 ‘행복시장 프로젝트’를, 나아가 ‘행복세상 프로젝트’를 위해 힘써주기를 기대한다. 그러자면 유 대표의 흰머리가 더 늘어날 텐데, 미안하지만 그 모습 또한 즐겁게 기다릴 것이다.

대안학교가 '섬이 되선 안되죠

전경아 부천열음학교 교사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을 따라 가다보니 조용한 동네가 나타났다. 나무들과 아파트들에 둘러싸여 은근하게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 곳에 열음학교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들에게 ‘해바라기’라고 불리는 전경아 교사가 정말 해바라기처럼 해맑게 웃으며 서있었다.

“비가 와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이들은 무척 좋아하더라구요.” 봄비가 촉촉이 내린 지난 달 24일 열음학교 제3기 생태교실이 열렸다. 2005년부터 시작된 열음학교 생태교실은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이 가까운 교외로 나가 자연의 생명력을 직접 체험해보는 현장학습프로그램이다. 2005년 9월 개교한 초등대안학교인 열음학교가 지역아이들에게도 문턱이 낮고 가까운 대안학교가 되자는 취지로 매년 진행하고 있다.

“대안학교라고 해서 ‘성’이나 ‘섬’이 돼서는 안 되잖아요. 우리 아이들이 지역의 아이들과 너무 달라지지 않기를 바랐죠. 개성은 살리되 아이들이 자신이 속한 세상과도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지역 아이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생태교실을 계획했어요.” 처음에는 대안학교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가 많은 동네의 특성상 혼자 노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점차 눈에 띄었고 그 아이들도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 해에는 열음학교가 아닌 부천 송내동 공부방 아이들을 중심으로 생태교실을 운영할 예정이다. 부모의 돌봄에서 방치된 아이들이 자연과 호흡하며 안정되고 건강한 마음을 갖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 교사는 기대한다.

“겨우내 죽은 줄 알았던 나무가 봄이 되자 새로 싹이 돋고 꽃이 피는걸 보면 제가 괜히 감사해서 눈물이 나요. 작년에는 텃밭에 심은 한 아이의 고추 옆에 별꽃이 피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별꽃이 고추에게 갈 양분을 뺏을 거라고 뽑자고 했어요. 그 아이는 더 지켜보기로 결정을 하더라구요. 근데 놀랍게도 그 별꽃이 피었던 고추가 가장 건강하게 자란 거 있죠. 모두에게 큰 감동이자 희망이 된 경험이었어요.”

생태교실을 통해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들을 배워가고 있다. 아이들이 달라지는 게 눈에 보이니까, 또 그 아이들 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성장하는 걸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전교사는 덧붙인다.

“아이들도 저도 지금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첫 아이를 낳고 고민을 하다가 공동육아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대안교육의 길로 들어오게 됐죠.” 한국 땅에서 아이들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입시 불안감 때문에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고 싶어도 맘대로 못하는 부모들이 많은 현실 속에서 용기를 내 대안교육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돌아온 답은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어렵고, 어려우면서도 쉬웠다.

마지막으로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내 건강이요.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아이에게 좋은 부모, 교사가 될 수 있거든요.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아이들의 상황을 제 상황으로 왜곡해버려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게 돼요.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려면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해요.”

해바라기. 국화과의 한해살이풀로 오로지 해만 바라보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해바라기로 불리는 전 교사. 초등대안학교인 열음학교의 대표교사로 자신과 아이들의 행복이라는 꿈을 화사하고 당당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역시 아이들이다.

전상희 기자

 

제1호 19면 2007년 4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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