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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풀뿌리

공동체라디오가 쏘는 '전파견문록'

관악FM "주파수는 시민의 것" 확산

“잠깐만요, 다시 갈게요. 마이크 확인해주시구요, 갑니다. 하나 둘 (셋).”
“행복한 관악을 만들어갑니다. 에코프로젝트관악, 안녕하세요 이혜림입니다.”

자원봉사자인 이혜림(25) 아나운서가 경쾌한 목소리로 녹음을 시작했다. 공중파 지역방송국에서 활동 중 친구의 소개로 관악FM을 알게 돼 지난해 7월부터 진행자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환경문제에 관심이 생겼어요. 방송에서 소개했던 대안생리대도 직접 사용해봤더니 좋던데요.”

에코프로젝트관악은 관악FM이 10년을 내다보며 지역을 생태도시로 만들고자 진행하는 방송이다. 주민들이 생태도시라는 개념을 생소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문화·에너지·교육 생태 등의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지역의 대안미디어를 지향하는 관악FM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관악FM은 지난 2004년 11월 방송위원회 소출력라디오 시범사업에 선정이 돼 이듬해 7월 첫 전파를 발사하고 시범방송을 거쳐 10월 개국한 ‘공동체 라디오방송국’이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건물의 꼭대기 층에서 관악지역으로 전파를 쏘고 있다.

치열한 생활정치공간

지난해 9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방송법 개정법률안에 따라 기존에 1W로 묶였던 출력이 10W 이하로 확장되면서 이론상으로는 관악구 전체가 가청지역이 되었지만 정보통신부가 구체적인 시행령이나 기술고지 등의 마련을 지연하고 있어서 여전히 1W로 출력하고 있다. 경사가 많은 관악구의 지형적 특성까지 겹쳐져 실제 가청지역은 관악구의 절반 정도다. 비록 미국, 일본, 영국 등과 같이 공동체라디오가 활성화 된 나라와 가청인구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지역의 대안적 미디어이자 시민 참여 열린 공간이라는 점에서 관악FM 또한 다른 나라의 공동체라디오들과 다를 바 없다.

관악FM은 아무리 싫어도 매일 부딪치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지역공동체의 특성상 부정적으로 접근하는 사회운동은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지역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문제를 인정하고 아예 새로운 차원으로 지역분위기를 바꾸고 싶었어요. 그게 더 에너지 낭비도 안하고 좋잖아요.” 관악FM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안병천 국장의 말이다.

안 국장은 원래 민중노래패 천지인의 매니저로 활동하며 문화운동을 했다. 더 효과적인 문화운동을 하기 위해 지역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다짐 할 즈음 한 선배에게 공동체라디오를 소개받고 연구모임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방송위원회의 소출력라디오 사업자 공모 소식을 듣고 관악지역 시민단체들과 컨소시엄을 맺어 지원을 했다가 선정이 되면서 자연스레 뛰어들게 됐다.

“누구나 생산자도 되고 소비자도 될 수 있는 쉬운 매체가 바로 라디오라고 봐요.” 라디오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가장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지역문화운동을 하고 싶었다. 안 국장이 열심히 지역 곳곳에서 무료로 미디어 교육을 하는 이유다.

관악FM 자원봉사자들이 13일 스튜디오에서 '에코프로젝트관악'을 녹음하고 있다.

서울대 환경교육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정원영(25) 씨와 조은정(35) 씨는 에코프로젝트관악의 자원봉사 기자들이다. 각각 한 주 동안의 에코 소식과 어린이 환경교육 교재의 내용을 전해준다. 금요일마다 하는 방송녹음은 즐거운 수다의 장이기도 하다. 자원봉사자들끼리 삶을 나누면서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레 그 날의 대본 내용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방송대본을 위해 자료를 찾으면서 책으로만 접한 생태문제를 지역과 소통을 통해 풀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죠.” 정 씨는 말했다. 녹음은 자원봉사자들의 조사 자료를 가지고 작성된 대본으로 진행한다. 안 국장도 ‘시사로 보는 생태뉴스’라는 코너를 맡아 사회의 현안 중 환경과 관련된 소식을 찾아 전한다. “한미FTA 같은 사회이슈들도 결국엔 지역에 영향을 미쳐요. 사회 주요 현안들이 지역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짚어주려고 해요.”

방송 초기에는 전국녹색가게운동협의회 관악지점 활동가분들의 도움으로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재활용 아이템을 소개했었다. ‘생태’라는 단어가 주는 생소함을 생활 속에서 발견하고 실천해가며 나의 것,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가자는 취지가 분명히 드러나는 기획이었는데, 지금은 잠시 중단한 상태다. 하지만 곧 개편과 함께 녹색가게 관계자들과 협의해 새로운 아이템으로 찾아올 예정이다.

일주일에 5회 방송되는 신나는 관악세상에는 ‘주민의 소리’라는 코너가 있다. 주민들이 궁금해 하는 지역문제들을 찾아 관악FM이 직접 묻고 답을 듣는 코너다. 초반보다는 주민들의 참여도가 떨어졌지만 여전히 지역의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문제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관악FM PD들은 바쁘게 뛰어다닌다.

7~11세 아이들을 둔 엄마들을 대상으로 견학정보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인 ‘함께 타는 즐거움 시소아이’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지역주민들이 정보를 나누고, 아이들이 직접 스튜디오를 찾아 방송체험을 하는 견학프로그램이다. 찾아오는 아이들에게는 미디어 교육도 실시한다. 미디어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접하는 미디어가 뭔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소중한 경험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달 24일에는 관악지역 영화모임과 함께 영화배우 문성근 씨를 초대해 영화콘서트 행사를 열었다. ‘영화·쌀 나눔이 이웃사랑을 실천합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기획된 이번 행사의 입장료는 쌀이었다.

“동사무소 마다 있는 사랑의 쌀독을 지역주민들이 잘 모릅니다. 그래서 사랑의 쌀독 홍보도 하고 모은 쌀로 어려운 지역주민들 도우려 해요.” 지역주민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공동체라디오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는 생활정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관악FM의 마음이 잘 나타난 행사다.

지역서 가장 낮은 놀이공간

“선생님, 나는 잔잔한 멘트로 진행하다가 중간에는 개그로 방송을 살리려구” “선생님, 이 대본은 이런 느낌으로 읽으면 되나?” 매주 월요일 오후 1시, 시립관악노인종합복지관의 컴퓨터실은 방송아카데미가 된다. 아나운서나 방송 리포터를 꿈꾸는 학생들이 다니는 전문 방송아카데미와 다른 점은 강의실의 평균나이 뿐이다. 곧 방송진행자가 될 어르신들의 열정과 의욕이 강의실에 가득하다.

관악FM은 시립관악노인종합복지관과 컨소시엄을 맺어 노인방송 프로젝트를 4월부터 진행 중이다. 안 국장이 직접 복지관을 찾아 어르신들을 방송인으로 교육시킨다. 어려워 보이는 녹음프로그램을 직접 실행해보며 어르신들은 라디오 진행자로서 실력과 자질을 쌓고 있었다.

“나는 ‘끼’가 있거든요. 그 끼를 살린 방송을 할 거에요.” 딸의 세례명으로 진작부터 황안나라는 방송예명을 만드신 황종후(76) 씨는 지난 해 폐암수술을 받은 후 체력이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곧 전파를 타고 방송된다는 생각만으로 신이 나 빨리 녹음하고 싶다고 말한다.

대본연습 중 젊어서 그런지 잘한다고 주위 어르신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동시에 산 박희경(60) 씨는 이미 복지관에서 아침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매일 아침 1시간씩 신문을 읽으며 노인문제와 관련된 시사상식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고 살짝 귀띔한다. “요샌 TV를 볼 때 아나운서 말을 유심히 듣다가 좋은 게 있으면 적어서 연습도 하고 그래.” 이미 최영자(69) 씨는 전문방송인의 자세를 갖추고 있다.

안 국장은 공동체라디오가 지역주민들, 특히 미디어소외계층에게 방송접근의 기회를 주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올 해 노인종합복지관과 장애인자립재활센터와 각각 컨소시엄을 구성해 노인방송과 장애인방송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노인계층은 여성과 장애인도 많고 다수인데도 미디어에서 완전히 소외돼있어요. 라디오는 어르신들과 장애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교육부터 시작했죠.” 현재 노인종합복지관은 다행히 공간과 재원을 확보한 상태다. 빠르면 5월부터 녹음이 가능할 것으로 안 국장은 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교육을 하기엔 시설이 부족해서 어려움이 많다.

장애인방송은 더 갈 길이 멀다. 공간과 재원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장애인재활센터 측과 정기적으로 만나 상황을 점검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꼭 추진해야 하는 목적을 되새기는 수준이다. 기획된 내용들을 5월부터 구체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또 관악FM은 장애인과 노인 외에도 미디어소외계층을 위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이번 개편으로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즐겁게 참여할 코너를 마련했고 재정이나 출력 등의 여건이 된다면 신림동 고시촌의 고시생들과 빈곤계층 여성들과도 함께 방송을 만들 생각이다.

“'장’을 열어드리는 거죠. 공동체라디오가 대안언론으로서 해야 할 역할들이 분명 있지만 지역시민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장이 되는 역할도 잊어선 안돼요." 지역시민들이 방송을 듣고 직접 방송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재밌는 놀이터가 되기를 안 국장은 바란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

1년 여 간 지루하고 힘든 조직정비를 무사히 마치고 4월부터 단계적으로 진행된 봄 개편은 실질적으로 관악FM이 공동체라디오로써 앞으로 왕성하게 펼칠 활동의 신호탄이 될 듯하다.

“내공은 쌓였어요. 이제 지역으로 들어가야죠. 우리가 가진 노하우와 모든 것을 무상으로 전수해서 지역 곳곳에 작은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그 공동체들을 우리가 다시 네트워킹해 지역 구석구석까지 감시도 할 거에요.”

이번 개편은 ‘change’가 아니라 ‘upgrade’다. 그 동안 고민해온 방송국의 지향점을 재확인하고 좀 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봉천동의 저 높은 곳에서 쏘아올린 전파가 관악구 전체 저 낮은 곳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어가 지역주민들의 즐거운 놀이터이자 삶의 현장이 되기 위해 관악FM은 오늘도 바쁘다.

공동체라디오방송이란?

공동체라디오사업자란 ‘공중선전력 10W 이하로 대통령령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공익목적으로 라디오방송을 하기 위해 방송사업 승인을 받은 자‘라고 지난해 9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방송법 개정법률안에 명시돼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마포, 관악, 분당, 공주, 영주, 대구, 광주, 나주 등 전국 8곳에 공동체라디오사업체가 있다.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열심히 지역운동을 펼치는 곳도 있지만 단순하게 지역의 생활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의 사업체도 있다.

소출력과 재원마련이 문제다. 법령은 10W 이하로 바뀌었지만 시행가능여부는 불투명하다. 높아지는 방송에 대한 지역의 관심도와 방송 요구수준을 맞추기 위해선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불가피한데 1W의 소출력으로 계속 가다보니 있는 광고마저 놓칠 지경이다.

현실은 이런데 방송위원회는 내년부터는 지원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체라디오 관계자들은 지난 1월과 3월 공동체라디오 공적 지원 정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어 이 문제를 다뤘다. 토론에 참가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공동체라디오발전기금 조성 등 공동체라디오의 공공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공적 지원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인식과 ‘주파수는 시민의 것’이라는 공감대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공동체라디오의 안정적인 재정확보는 아직은 먼 이야기다.

안병천 관악FM 국장은 “방송국이 잘 되려면 주민들이 직접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는 다양한 구조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선 먼저 방송국의 조직이 안정적이어야 하고 교육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전상희 기자

 

제1호 11면 2007년 4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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