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여부를 두고 논란을 가중됐던 ‘국기에 대한 맹세’가 현행대로 유지되는 대신 문안내용이 수정된다. 행정자치부는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같이 결정했다고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폐지 요구에 대한 구체적 입장 제시와 합리적인 토론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문구 수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행자부는 ‘국기에 대한 맹세문’ 시행령 제정과정에서 존폐 여부에 대한 논란이 가중됨에 따라 지난달 16일부터 1천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여론조사 결과 맹세가 유지되야 한다는 응답이 75%, 폐지 입장은 15%로 나타났다. 내용 수정 질문에는 현행대로 좋다는 의견이 44%,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43%로 팽팽하게 맞섰다.
행자부는 맹세문 수정에 대해 찬성하는 층이 20~30대가 다수인 점을 감안해 미래지향적인 견지에서 문안을 수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행자부가 지난 5월초부터 폐지 문제가 부각되자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이나 토론회 등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여론조사라는 형식적인 수단을 동원해 논란을 잠재우려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박석진 인권운동사랑방 상근활동가는 “문구수정은 세련된 방식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강요하는 것”이라며 “맹세 자체의 위험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이지 문구를 문제 삼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행자부의 졸속 추진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최철규 인권실천시민연대 간사는 “10명 중에 한명이 반대하더라도 이에 대한 합리적이고 설명이 있어야 한다”며 “양심&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사안을 두고 설문조사라는 계량적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라고 강조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의 기미가요는 군국주의 부활을 상징하는 위험한 것이지만 우리의 국기에 대한 맹세는 애국심의 발로라는 이중기준은 말이 안 되는 논리”라며 “독재 잔재를 청산하는 방향이 아닌 강화 방향으로 가는 시대역행적 논의”라고 말했다.
한편 국기에 대한 맹세는 지난 1972년 8월 당시 문교부에서 학생교육의 일환으로 시작됐으나 1982년 10월부터 국무총리 지시에 따라 국민의례로 확대됐다. 1984년 2월부터는 대통령령으로 규정돼 오늘에 이르렀다. 행자부는 여론 수렴 결과를 반영해 다음달 중 새 문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