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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지구촌

억압 저항 '자이니치' 삶

재일조선인3세 신숙옥 (주)고가샤 대표

신숙옥 (주)고가샤 대표

“아직 영화 ‘우리학교’를 보진 않았지만 감동적이고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사람들 얘기를 듣고선 웃기지 말라고 생각했어요. 치마저고리를 입는다는 게 일본 사회에서 얼마나 위험한지 아세요? 조선학교는 남학생에겐 정장차림의 교복을 입히지만 여학생에겐 근대화를 허용하지 않아요. 치마저고리로 조선학교의 여학생들을 화석화시킨 책임은 한국 정부에게도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고 자신들은 잊었지만 그들이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민족성이 도대체 뭔가요?”

1959년 일본 도쿄에서 재일조선인 3세로 태어나 평생을 자이니치(재일조선인)로, 여성으로 차별받고 그에 맞서 싸워 온 신숙옥 (주)고가샤 대표의 말이다. 개인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시아역사연대와 평화네트워크 측에서 강연을 부탁했다.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인 지난 29일 숙소로 찾아가 그를 만났다.

자이니치 문제 한국정부 모르쇠

그는 지난 2003년 한국을 방문해 자이니치가 처한 상황을 한국 정부에게 알리고 행동을 촉구해달라는 서한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 이후의 상황을 묻자 “자이니치 문제에 관련해 한국 정부는 한 마디의 발언도 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과 같은 유치원에 다닐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그의 삶은 다른 자이니치들의 삶처럼 거절과 폭력과 탄압의 연속이었다. 일본학교에서는 자이니치란 이유로, 조선학교에서는 일본학교에 다녔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면서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말라고 강요받았다. 사상과 민족성을 강요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조선학교 교사들의 구타에 그는 디스크를 앓았고 그의 남동생은 과다출혈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이 폭력은 학교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얌전하고 예의바르다는 평가를 듣는 일본인들은 속에 쌓인 스트레스와 분노를 자이니치에게 폭력적으로 분출했다. 자이니치에 대한 일본인들의 납치와 폭력 사건은 여전히 뉴스를 통해 보도되고 있다. 조선학교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죽이겠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온다. 등교하던 여중학생들은 돌 세례를 맞기도 하고 납치돼 차 트렁크 속에 갇혀 테이프에 손발이 묶인 채 끌려 다니다가 길 가에 버려진 사례도 있다. 기사는 금방 내려졌다. 조선학교 측에서 동일수법의 납치사건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보도중지 요청을 한 것이다.

“권력과 남성 거짓말에 속지 않아”
    
“일본 시민사회도 자이니치 문제를 건드리지 못해요. 그럼 자기들이 북한 지지자로 낙인 찍힐까봐서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자이니치들 스스로가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게 중요한데 구조적으로 헌법의 보호도 받지 못해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자이니치 중에서도 특권계층이라 생각해요. 발언의 영향력도 있고 다양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능력도 있고. 제가 할 수 있는 몫으로 계속 싸워나갈 생각입니다.”

구조적으로 막혀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싸울 생각이냐고 물었다. “한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구조가 움직이질 않아요. 가능성 있는 걸 다 해보면 10개 중에 하나는 성공합니다. 사실 자이니치 문제는 일본 헌법 대신 일본이 비준한 국제조약으로 싸워야 합니다. 조직 만들어서 언제 해요. 뜻을 갖고 어떤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동의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 됩니다.”

일본에서 성공한 사업가이면서 매스컴과 각종 기업체의 인기 강사인 그는 왜 굳이 싸움의 길로 가려는 걸까. “분노가 멈추질 않아요.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울고 있는 걸 보면 분노가 솟구쳐서 견딜 수가 없어요. 또 계속 싸워왔으니까 더 강해지고 더 강해지니까 또 싸우는 거죠.”

“일본에선 평화헌법개정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평화헌법을 개정한다고 하는데 거짓말입니다. 두 번 다시 패전국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헌법을 고치려는 것입니다. 점점 더 심해지는 일본의 우경화는 결국 일본인들 간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고 그 갈등의 해소는 자이니치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일본인들에게 여전히 자이니치는 ‘적’이거든요.” 자이니치 문제는 정치과제이자 국가문제로 생각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고 신 대표는 강조했다.

자이니치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많은 수난을 당했지만 그래도 자이니치 여성이기 때문에 좋은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신 대표는 “거짓말을 잘 꿰뚫어볼 수 있다”며 “이젠 권력이나 남성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질 않는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출간한 그의 저서 ‘자이니치, 당신은 어느 쪽이냐는 물음에 대하여’ 제목 그대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한국인도,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닙니다. 나는 자이니치입니다”란 제목 그대로의 답이 돌아왔다.

전상희 기자

 

제6호 16면 2007년 6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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