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는 단연 시민사회신문이 아주 특별한 화제가 됐다. 문화연대가 “지금, 시민사회신문 창간이 부적절한 이유”라는 장문의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문화연대는 본지 창간이 부적절한 이유를 지난 시기 시민의신문 사태에서 찾았다. 문화연대는 지난 2006년 대표이사의 성추행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사진의 적절치 못한 사건 해결방안과 최대주주의 압력행위, 시민사회 내 무관심으로 시민의신문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시민의신문 사태 해결을 위한 공대위 발족과 성폭력 문제에 대한 소수단체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소통은 물론 공론화를 이루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문화연대는 그래서 시민의신문 사태가 던진 시민사회운동 내 무거운 숙제를 풀지 못하면 시민사회신문 역시 진정한 의미의 시민사회 정론지가 될 수 없다고 충고한다. 나아가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운영, 시민사회 대변지 역할과 관계 등에 대한 토론이 부족했다고 일침 한다. 문화연대는 이와 함께 시민사회단체와 시민사회신문이 시민의신문 사태의 과제를 공론화할 토론의 장을 만들고 책임 있는 매체와 신뢰획득을 위해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과정을 만들어 나가야 하기에 애써 쓴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일언이폐지하고 문화연대 입장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 진정으로 애정 어린 비판에 가슴이 뭉클하다. 이러한 입장은 거세면 거셀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만일 지금의 시민사회신문이 시민의신문 사태와 시민사회 내 성희롱 사건을 최상의 위치에서 공론화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더라도 조금 더 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 있다는, 그래서 가슴을 맞대고 사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시점에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의제여야 한다. 이러한 문제가 해묵은 과제일수도 있고 영원히 풀리지 않은 미완의 숙제일수도 있지만 노력한 만큼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시민사회는 충분히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번 문화연대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시민사회신문은 ‘아래로부터의 소통’, 즉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물어보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시대에 부합하는 시민광장으로서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도 재차 다짐한다. 바로 이러한 원칙이 대안언론으로서의 매체 신뢰를 얻어가는 과정이자 공론화장의 출발선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시민의신문 사태는 갓 태어난 시민사회신문의 반면교사다. 최대주주의 전횡이 그러했다. 그래서 시민사회신문은 이를 철저히 배격할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시민사회운동가와 단체, 그리고 평생회원으로 살림을 꾸려 시민과 시민사회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시민사회신문은 명망가나 구성원의 전유물이 아니다. 온전히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매체인 것이다. 당연히 문화연대 고언처럼 시민의신문의 무거운 짐을 진 채 불편하게 치부를 안고 가야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도 시민사회와 연대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은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의지다.
더불어 기존 시민의신문이 시민운동 쪽 보도에만 전념한 나머지 사회운동과 여성운동 진영에 소홀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향후 시민사회신문은 제호에 걸 맞는 기획보도로 시민사회 정론지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여기에 바로 시민사회단체가 있음을 가슴에 간직하는 것이다. 그것도 문화연대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모두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 어린 비판이 있을 때만 가능할 것이라는 대의에 호흡할 것임을 거듭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