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사법역사에서 변호사의 기본 사명인 사회정의 실현은 한 때 ‘치장구’에 그친 오랜 기간이 있었다. 길었던 군사독재 시절 변호사가 공익을 위해 변호를 한다는 것은 실천에 옮기기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일제시대부터 유신정권과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 가시밭길을 자청해 인권·공익변호 활동을 한 이들이 있었다. 불굴의 변호사 정신을 이어온 맥락은 민주화의 진척에 따라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 활동의 확산으로 전개되고 있다.
인권·공익변호사의 역사는 일제시대 김병로·이인·허헌으로 대표되는 3인의 변호가가 독립운동가 등에 대한 변론활동을 벌이는 것을 시초로 한다. 이들 중 해방 이후 남쪽에 남은 김병로 변호사는 초대 대법원장, 이인 변호사는 법무장관, 허헌 변호사는 북으로 가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을 지낸다.
이후 이승만 정권, 장기 군사독재시대를 거치며 인권·공익변호 활동은 극히 미비한 움직임을 보이며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그러다 유신에 반대하는 이병린 변호사에 의해 다시 꽃을 피우게 된다. 이후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 한승헌, 황인철 변호사 등이 유신시대에 인권변호 활동을 벌인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정법회, 노태우 정권에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탄생했다. 고영구, 최영도, 이돈희, 조영래, 안영도, 박성민, 박원순 변호사 등이 이 시기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제한적 조건에서 이뤄지던 이들의 인권변호 활동은 민주화의 바람을 탄 90년대 이후 시민사회단체 활동과 연계한 공익소송 등으로 이어지며 본격적인 공익변호사 시대로 확대, 발전해 나간다. 하승수, 김남근, 장유식 변호사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시민운동가형 변호사가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사회적 변화와 변조인 인력의 확산에 따라 민주노총, 환경재단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상근으로 공익변호활동을 벌이는 변호사들도 속속 등장했다. 여기에 본격적인 전업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이 아름다운재단 산하에 자리잡은 것도 주목할 만 하다. 로펌형 공익변호사 조직이라고도 불리는 공감은 공익변호 활동에 ‘법조활동가’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됐다.
시민운동가형 법조인의 시발이라고도 불리는 박원순 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지난 2003년 자신이 펴낸 한국인권변론사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다’를 통해 “과거 본 업에거 남은 시간을 이용한 자원봉사 차원의 공익변호 활동을 넘어 전업 공익변호사 시대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권의식을 버리고 활동가로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시대의 대세이자 변화의 위상을 다시 그리는 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공익변호 활동은 향후 집단소송제 도입 등에 따른 승소 배상청구 도입 등과 같은 제도가 도입된다면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시민사회단체 상근 공익변호사의 활동무대도 더 커질 것이라고 관련 전문가들을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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