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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문화

"어머니 계신 그 나라는..."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 타계

"소박한 삶 실천한 성자"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 수십 년 간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써 온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이 지난 17일 오후 2시경 향년 70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했다. 반세기 동안 끊어졌던 경의선과 동해선 철로가 이어져 철마가 남과 북을 향해 달리던 그 시각이었다. 권정생 선생의 영결식은 지난 20일 안동시 일직면 송리 5층 전탑 앞에서 5백여 명의 추모객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이향미 기자

지난 20일 안동시 일직면 5층 전탑 앞에서 열린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 영결식에서 기찻길 옆 작은 학교 최솔비 양이 권정생 선생에게 올리는 편지글을 낭독하고 있다.


고인에 대한 묵념으로 영결식이 시작됐다. 추모객들이 고개를 숙이자 건너편 교회에서 종소리가 은은하게 올려 퍼진다. 예배당 종지기였던 선생이 이 땅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 울리는 마지막 종소리인 것처럼.

장례위원장인 염무웅 6.15 민족문학인협회장은 “일제 말에 태어나 분단을 온몸으로 겪어 오신 선생은 평화와 통일을 갈구하며 아이들을 위한 글을 써왔기에 민족문학인장으로 모시게 되어 뜻이 깊다”고 말하며 “당신의 일생은 가장 소박하고 고귀한 정신의 완성이다. 이제 모든 짐을 내려놓고 부디 안식에 드소서”라고 조사를 낭독했다.  

"인세 아이들 위해 써달라"

이날 영결식에는 문정현 신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정호경 신부, 박제동 화백, 도종환 시인, 이철수 판화가 등이 참석했고, 안동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전날부터 고인을 추모하는 발길이 쇄도했다.

평택 미군기지 싸움을 줄기차게 벌여온 문정현 신부는 지난해 한 차례 권정생 선생을 만났던 일을 회고하며 자신의 삶을 뒤돌아봤다. “그때 많이 혼났어요. 승용차 타고 다니면서 운동 한다고요. 다섯 평도 안되는 흙집에서 풀 한 포기도 귀하게 여기며 살아온 분이었어요.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분이에요. 돌아와서 ‘우리들의 하느님’이란 책을 단숨에 읽었지요. 종교는 다르지만 마치 사막의 성자였던 사를르 드 후코 신부와도 같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 임종을 지킨 김용락 시인이 고인이 평생 그리던 어머니를 위해 지은 시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을 낭독했다. 김 시인은 80년 광주항쟁 뒤 대학 휴교를 하고 이웃마을에 있던 권정생 선님과 처음 인연을 맺은 후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 안부 전화를 드려온 몇 안되는 지인 중 한 명이다. 그는 고인이 대구 가톨릭병원에서 운명하시던 그날의 모습을 추모객들에게 설명하는 장문의 글을 낭독하며 “부디 ‘어머니 계시는 그 나라에서 전쟁과 폭력, 가난과 소외, 질병의 고통 없는 그 나라에서 편히 쉬십시오”라며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권정생 선생의 생전 모습.

아이들을 대표해서 기찻길 옆 작은학교의 아이들이 편지를 올렸다. “7살에 선생님을 처음 뵜다”는 최솔비(11) 양이 권정생 선생님이 웃으실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다. “할아버지 만나뵈러 갈 때마다 웃는 모습을 많이 못봐서 웃겨드리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코미디는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고 서로 돕고, 사랑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면 웃으실 것 같아요. 나중에 저는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어요. 나라가 아니어도 우리 마을이라도요.”

권정생 선생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인세를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날 ‘권정생 선생과 함께하는 모임’의 최윤환 씨가 유언장을 봉독했다. 유언장은 선생이 생전에 직접 작성하고 지인들에게 공개한 것이다. “인세는 어린이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북녘 어린이들에게 우선 쓰고, 남는 다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전 세계의 굶주린 어린이를 위해 썼으면 좋겠다”는 내용과 “시신을 화장해서 집 뒷산에 뿌려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빌뱅이 언덕에 나빌레라

영결식이 끝나고 빌뱅이 언덕의 권정생 선생의 오두막을 찾아가는 길에 현장미술을 하는 최병수 작가를 만났다. 영결식 무대에 걸린 걸개그림이 최병수 작가의 작품이다. 최 작가는 “‘병수는 광대다”라는 시를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받고서 너무 기뻤어요. 그런데 선생님에 대한 보답이 영정그림이 돼서 안타깝습니다” 전하며 판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남김없이 퍼주고 돌아가신 분이란 뜻에서 선생님 가슴에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을 새겨 넣었어요.” 최병수 작가는 오두막 댓돌 위에 그의 판화를 올려놓았다. 선생이 살아생전 신었던 고무신과 함께.

권정생 선생은 유언대로 화장해서 그의 집 뒷산인 빌뱅이 언덕에 뿌려졌다.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는 민들레꽃이 활짝 핀 따스한 봄날, 그렇게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로’ 훨훨 떠나갔다.  

안동=이향미 기자

 

제5호 12면 2007년 5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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