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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시민사회

“잦은 원전고장, 열악한 교육 의료 한 몫”

 

안정성 확보위해 국가 차원의 전면적 지원 '절실' 

사회문화적 여건 개선의 책임은 정부의 몫 

과기부도 지역 사회문화 인프라 취약성 인정

 

『울진원자력본부 발전부서에 근무하고 있는 김모(45, 발전부서) 과장은 요즘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최근에는 도통 잠마저 제대로 오질 않는다고 하소연 한다. 세 자녀 중 올해 중학교 3학년인 맏딸 진학문제 때문이다. 맏딸은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 면소재지에 있는 모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발전부서에 근무하는 까닭에 1일 3교대 근무에 임하는 김과장은 출근길부터 풀이 죽었다. 아침식사 시간 내내 아내로부터 곱지 않은 핀잔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장 올 11월이면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해야 하는데, 울진지역에 소재한 고등학교에는 진학을 못시키겠다는 게 아내의 주장이었다. 결국 딸아이의 진학문제는 자신의 무능으로 직결됐다. ‘언제까지 울진지역에서 살아야 하느냐’고 아내는 다그치며 ‘딸 아이가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내 년부터는 포항이나 경주 등 타 지역으로 진학이 불가능해졌다’고 목소릴 높였다.
2008년부터 포항지역이 고교평준화를 도입하면서 포항 소재 중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학생은 포항지역 고교로의 진학이 원천봉쇄됐다는 것이다. 현관을 나서는 김과장을 향해 아내는 “남들은 모두 울진이 아닌 고리나 월성, 영광원전으로 다 가는데, 당신은 빽도 없냐”고 역정을 냈다.  근무시간 내내 ‘당신은 무능한 가장’이라며 다그치던 아내의 목소리가 귓전에 머물러 있었다.』

울진원자력본부

울진원자력5.6호기 전경


# 울진원전의 잦은 고장, 대책은 없나

원자력발전소 가동에 따른 안정성 문제가 지역사회는 물론 시민사회에 주요 사회적 이슈로 자리잡으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으나 여전히 전국 각 원전의 사고/고장율은 감소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사고/고장율의 증가와 더불어 원전의 각종 사고/고장 요인으로 운전원의 오작동이나 조치 판단 오류 등으로 비롯되는 인적사고율이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원전관리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전면적 재검토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원전의 정부 안전규제기관인 KINS(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자료에 따르면 1998년 이후 2007년 현재까지 국내 4개 지역 원전에서 발생한 각종 고장/사고는 총 194건으로 확인됐다.
이 중 2005년도에 발생한 고장건수는 18건으로 이는 2000년도에 발생한 고장 건수 9건에 비해 2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또 2006년 12월 현재 고장 건수는 19건으로 이 또한 2000년에 비해 2배를 넘는 수치이다.

이처럼 사고/고장 발생률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도 문제의 심각성이 있지만, 발생한 각종 사고/고장 중 기계적 결함 등 물리적 요인에 의한 것보다 인적실수에 의한 사고/고장율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는데서 이의 심각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실제 공식 집계된 전체 사고/고장 건수 중, 인적사고는 25건이며 이는 전체의 19.7%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경우, 인적사고로 확인된 것은 2000년 9월11일 발생한 고리원전1호기의 기록이 유일한 데 반해 2005년의 경우에는 무려 7건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려 7배나 증가한 셈이다.

또 각종 사고/고장이 수명 30년에 육박하고 있는 고리원전과 한국표준형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는 울진 · 영광원전에서 집중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2000년 이후 고리원전에서는 23건, 영광원전이 34건, 울진원전 51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고장건수 127건 중 85%를 차지하는 규모이다.

이처럼 원전의 사고/고장율이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데서 원전 안정성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시급한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특히 원전의 각종 사고/고장 중 원전을 직접 운전하는 운전원의 기기 오작동이나 판단오류 등으로 발생하는 인적사고율이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것은 현 원전관리 운용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전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전문가들과 지역주민들은 인적오류의 주요 원인이 원전이 소재한 지역의 사회문화적 인프라의 빈곤에서 기인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원전이 소재한 지역사회와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는 “정부와 사업자가 원전 관리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함께 열악한 교육.의료 인프라를 적극 조성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잦은 인적사고, 그 원인은?

울진원자력본부에 근무하고 있는 관리자를 비롯 직원들은 지난 2006년 한 해를 기억조차 하기 싫은, ‘최악의 해’라고 입을 모은다. 잦은 사고/고장도 그 이유이지만, 발생한 사고/고장의 요인 중 절반 이상이 ‘인적실수’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02년부터 2006년까지의 경우, 울진원전의 인적사고는 10건으로 전체 인적사고율의 43.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동일한 한국표준형원자로인 영광원전의 26%에 비해 거의 2배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이처럼 울진원전이 타 원전에 비해 인적사고율이 해마다 증가추세를 보이자,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그 요인을 원전이 소재한 울진지역의 사회문화적 여건의 열악함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남효선

지난 2006년 울진원전은 최악의 사고/고장율을 기록했다. 특히 인적사고율이 타원전에 비해 2배를 기록해 인적사고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을 촉발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사진은 울진원전민간환경감시위원회의 사고/고장 관련 회의 모습


“지금까지 원전 사고/고장 발생 시 정부와 규제기관은 사고/고장 요인을 물리적(기계적) 관점에서만 찾아왔다. 때문에 사고/고장 발생 후 제시된 대책은 대부분 매뉴얼(원전운전지침서) 보강과 교육강화 차원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매뉴얼을 보강하고 운전자의 교육을 강화해도 인적사고율은 감소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무리 시스템이 자동화되어도 결국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근무자가 처해 있는 사회문화적 조건이 불리하면 상대적으로 근무실적 저하는 물론 지역 기피현상마저 야기되는 게 현실이다. 정부와 규제기관은 종전의 접근법에서 탈피, 원전 소재 지역의 특수한 조건을 반영하는 사회문화적 접근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울진원전민간환경감시위원회 남철원(51, 울진군 읍내리)부위원장의 진단이다.

이어 남부위원장은 “실제 울진원전 직원 중 발전부서 근무자 반 수 이상이 현장 경험이 풍부하지 못한 직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여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직원들 사이에 울진원전은 기피근무지로 자리 잡고 있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녀 교육문제와 의료문제이다. 맘 놓고 달려갈 의료시설이나 자녀들의 진학조차 마음대로 안되는 데 어느 누가 근무하고자 하겠는가?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이같은 문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정부와 사업자가 추진하고 있는 지역공동체 경영은 얼핏 지역경제를 향상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한 사회문화적 인프라의 구축없이는 오히려 부작용만 초래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사회문화적 여건 조성은 지자체나 발전사업자의 몫이 아니라 정부의 몫이다. 원전안정성 확보를 통한 원자력정책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 대한 정부의 강력하고 실질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국내 4개소의 원전소재지 중 인근에 인구밀집형 도시와 연접하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 울진이다.

때문에 도시지역에 연접해 있는 타 원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이 울진지역에서의 근무의욕을 상실케 하는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은 매우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지역사회의 교육 · 의료 인프라의 빈약함이 원전운영과 운전 경험이 풍부한 요원들을 대거 타 원전지역으로 이탈케 하는 요인 중의 하나라고 지역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로 원전직원 사이에서는 이같은 울진지역의 열악한 사회문화적 여건 때문에 울진지역 근무 기피현상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진군 공보계

김용수 울진군수가 군청 간부들과 함께 울진원전 원자로 내부를 방문, 울진원전본부장으로부터 원전의 안전운영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울진원전민간환경감시위원회(위원장 김용수 울진군수, 이하 감시위)는 지난 해 말부터 ‘원전안정성 확보를 위한 사회문화적 여건 개선 구축’을 주요 의제로 설정하고 정부측인 산자부와 과기부, 규제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측에 이의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요구가 잇따르자 과기부는 지난 해 11월 ‘울진원전 종합안전점검 결과’를 통해 ‘교육.의료.문화 시설 등이 열악한 지역특성을 감안, 우수 경력직원 배치 등 타 원전에 비해 취약한 인적구성의 보강’을 향후 조치사항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기부의 이같은 대응은 결국 사업자의 몫으로 돌렸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지역주민과 한수원의 시각이다. 이른바 기피시설로 인식되어 온 원전시설을 지역에서 다수 유치한만큼 이에따른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잦은 인적사고와 관련 한수원 노동조합도 고심하고 있다.

윤창기 한수원노조수석부위원장은  “원전운전의 질적 향상을 위해 회사와 노조차원에서 근무조건이나 처우향상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에는 한계가 있다”며 “특히 원전 안전운영의 질을 높이는 일은 곧 지속가능한 원전정책을 정착시키고 특정 지역사회의 삶의 기반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이는 사업자만의 영역이 아니라 사업자, 지자체, 주민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공동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윤 부위원장은 또 “한수원 내에 순환보직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사실상 울진은 제외되고 있다”고 밝히고 “ 90년대 사회민주화 확산 이후 조직문화도 상당부문 변화했다. 구성원이 특정지역을 원하지 않으면 사실상 인사를 강제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추세이다. 특정 지역 기피현상 해소책으로 충실한 사회문화적 여건을 조성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이다. 그리고 이는 정부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이처럼 울진원전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방안으로 지역공동체 차원의 ‘사회문화적 여건 개선론’이 선결 과제로 확산되고 있다.

남효선

울진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 요원들이 원전 고장과 관련 현지확인을 갖는 모습


# 인적사고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올 초 신임 본부장으로 부임한 박현택 울진원전본부장은 2007년 한 해를 ‘사고/고장 없는 원년의 해’로 정했다. 박본부장은 매일 7시면 출근하여 사무실에 들르기에 앞서 각 발전소 현장부터 들른다.

6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발전소의 이상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현장점검을 마친 후 박 본부장은 각 발전소장을 비롯한 간부진들과 함께 원전안전가동을 위한 마라톤회의를 진행한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울진원전은 올 상반기가 마무리되는 6월 현재 단 1건의 사고/고장을 기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도 원전내부의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전력이 관리하는 신태백-신가평 송전선로의 차단에 의한, 외부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효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지난 달 30일 원자력안전학교 강당에서 학계, 규제기관, 사업자, 지역주민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적오류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원자력 안전포럼을 갖고 정부측과 사업자측이 마련한 인적오류 저감단기대책을 제시했다.


특히 지난 해 울진감시위의 ‘정부에 의한 사회문화적 인프라 개선론’요구가 원전안정성 확보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으로 이슈화된 뒤, 과기부가 ‘울진원전 종합안전대책 결과’를 통해 이를 공식적으로 수용하면서 울진원전측은 한층 고무되어 있는 분위기이다.

한수원은 최근 ‘인적오류에 의한 사고 제로화 전략’으로 ▼관리자의 소명의식 ▼인간공학 적용 10단계 도입 ▼인적오류 유발인자 상세 분석 ▼절차서 결함 보강 및 해외 인적오류 개선 사례 반영 ▼의사소통 잠재결함 해소 위한 지도력 및 팀원 보강 ▼ 원전 협력업체의 잠재 위험 해소책 마련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원자력산업을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원자력의 국가 규제기관인 KINS도 지난 2005년에 도입한 ‘원전안정성의 사회적 수용성’ 과제 추진 이후 인적사고를 줄이기 위한 다각적인 행보에 나섰다. 특히 올 1월 부총리이자 과기부장관의 ‘인적오류 저감방안 수립’ 특별지시가 나온 뒤로 KINS는 학계, 전문과학계, 규제기관, 사업자 등으로 T/F팀을 구성하고 중 · 단기 저감대책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먼저 정부와 KINS는 단기대책으로 ▼운전원 신체상태 관리개선 ▼ 협력업체 정비종사자 자격관리 ▼ 종사자 교육훈련 개선 ▼ 훈련용 시뮬레이터 운영개선 ▼현장 작업환경 · 방식 · 도구 개선 ▼ 정기검사 시 인적요소 점검 강화 ▼ 인적오류 사고 조사절차 체계화 ▼인적오류 사고 사례 재분석 등 9개항을 제시하고 이를 올 년말까지 현장에 도입할 예정이다. 또  2년 내에 원전 소재지역의 사회문화적 인프라 조성책을 포함한 중장기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관련 변승남(경희대 산업공학, 원전인적오류저감T/F 팀장) 교수는 “올 초 부총리의 특별지시로 원전 인적오류 저감 특별대책팀이 구성됐다”고 밝히고 “올 년 말까지 실현 가능한 단기대책을 수립, 현장에 도입하게 되며 단기대책 도입 이후 2년 내에 원전 소재 지역의 사회적 여건 조성을 포함한 중장기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KINS는 지난 달 31일 원자력안전기술원 내 원자력안전학교에서 ‘인적오류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2007년 제1회 원자력 안전포럼’을 갖고 정부와 규제기관, 사업자의 대응책과 함께 산업공학 등 학계, 항공산업계의 개선사례 등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는 울진감시위원회 위원 등 국내 원전 소재 감시위원회 관계자 다수가 참석, 제시된 대책에 대한 열띤 공방을 벌였다. 특히 이 자리에서 울진감시위 관계자들은 “울진지역의 열악한 사회문화적 여건이 잦은 인적사고를 부르는 요인”이라며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원전 소재 지역, 특히 울진지역의 빈곤한 사회문화적 기반조성 문제가 원전안정성 논의의 중심에 자리잡으면서 공식화된 셈이다.

남효선 기자

 

제7호 7면 2007년 6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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