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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노동&인권

“종교폐쇄성은 문화다양성 짓밟는 것”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침겨운 투쟁

 

다음달 결심공판, 초미 관심사

“지금까지 밋밋한 인생이었는데 이번 일이 역동적인 삶을 살라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며 감사한다. 전엔 길가다 서명을 받고 있으면 무심했는데 이젠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다. 무슨 일로 서명을 받는 것인가 알아보게 된다. 주변에 대한 관심의 폭이 넓어졌다”  
  
의외였다. 강남대와 1년 4개월 동안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이찬수 교수는 현실을 ‘고난’으로 대하기보다 풍성한 삶을 사는 ‘은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난해 1월 목사이자 비교종교학자인 이찬수 교수는 강남대로부터 재임용탈락 통지를 받았다.  2003년 ‘불상에 예를 표’한 것과 수업 중에 다른 종교를 언급한 부분이 건학이념과 배치된다는 이유였다.

비교종교학자로써 기독교를 상대화시켜 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교육부도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이 교수 재임용거부가 부당하고 결정했다. 하지만 강남대는 교육부 결정에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다음달 22일 결심 공판이 있다.

올해 초부터 학교쪽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도 했다. 하지만 정작 강남대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렇게 대화도 응하지 않는 학교랑 힘든 싸움을 하기보다 그냥 정리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작더라고 사회문제가 됐고 많은 사람들이 옆에서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문제가 재발하기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 양식과 결정에 따라 움직일 생각”이라고 말한다.

사회에 대한 지평을 넓혀준 던져준 시간이었지만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재임용 탈락 직후 학교에 재심요청을 했고 재심위원회가 열렸다. 처음부터 나를 종교다원주의라고 질책했던 교목실 사람들이 회의에 참가했다.” 결국 지난해 1월 28일 최종해고통지를 받았다.

방학 중이었지만 500여명의 학생들이 재임용탈락반대 서명을 참여했다. 그런 반응 때문인지 지난해 3월 일부 일간지에서 관련 보도가 나왔고 이에 발끈한 학교가 바로 다음날 사무실을 폐쇄했다. 지금도 인사관 4층 그의 연구실에는 장서 1천5백권과 컴퓨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교수는 6년 반 동안 강남대 교단에 섰다. 학생들에게 이 교수는 박한 평가를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인터뷰 중에도 강남대 제자와 동국대 학생 한명이 스승의 날 감사 전화를 해왔다.) 하지만 그를 대하는 학교의 태도는 달랐다. 2003년 10월에 불상에 예를 갖춘 일로 강의를 내사했고 결국 학교는 그를 교단에서 끌어내렸다.

원래부터 강남대가 닫힌 학교는 아니었다. 강남대의 전신은 중앙신학대다. 중앙신학대는  작지만 포용적이고 토속적인 학문을 펼치는 앞선 신학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2004년 전임이사장이 사망하고 부인인 방 모 씨가 이사장이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부인의 측근인 윤 모 씨가 담임목사가 되고 교목실장까지 맡으면서 학교분위기가 급격하게 경색된 것이다. 이교수를 ‘마녀재판’에 회부한 것도 교목실장이다. 한편 방 이사장의 아들인 윤신일 총장은 99년 취임해 지금까지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너무 사회유화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렇다고 학교 교수님 전체가 다 보수적인 것은 아니다. 재단에 가까운 사람과 그늘에 있는 사람이 차이가 있다.”

강남대는 교직원들에게 대학교회에 나가길 강요하고 그곳의 출석만을 인정해 승진에 반영한다. “이념 운운은 구실이고 지금 상황은 재단이 사적 소유물이라는 것을 광고하는 것 밖에 안된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학교 밖으로 내몰린 이후 인권단체와의 만남은 상아탑에 머물렀던 그의 시각을 넓혀지는 계기가 됐다. 이 교수의 형수가 인권연대를 소개했다. “2000년대초 경기여상 부당해고 사태 당시 형수가 그 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그때 복직을 위해 인권연대가 힘썼는데 그런 인연을 통해 이번 일에 도움을 받고 있다.”  

인권단체들과 복직투쟁을 하면서 사회적 활동폭도 넓히게 된다. 학회활동 등 학문 활동에만 전념하던 학자에서 학문과 사회의 연결고리를 고민하는 지식인이 됐다.

그는 올해초 폐쇄성을 극복하고 종교 간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 만들어 졌지만 1995년 문을 닫았던 종교문화연구원의 재개원 작업을 진행했다. “전에 비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지만 사회단체 사람들을 알아가면서 사회를 좀 더 풍부한 시각으로 보게 됐다. 특정 문화나 종교의 폐쇄성 문제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인식했지만 그 폐해를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심각성을 절감했다”  

이 교수가 지금 학교와 싸우는 것은 직업에 대한 미련이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열린 종교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종교적 다양성을 인정 않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을 짓밟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특정한 세력이 종교&정치 등을 이용해 다양성을 억압하는 것은 힘있는 자들의 논리다.

“기독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양성 얘기를 하면 반기독교로 몰아붙이는 사람이 있다.” 일부 기득권층의 논리에 의해 종교가 갈수록 경직되어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목사 중에는 탈사회적 경향을 보이시는 분들이 있다. 종교는 사회적 흐름과 같이 소통해야 한다.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결국 예수의 정신은 사랑의 실천이다. 그분은 2000년 전을 사셨지만 굉장히 포용적인 분이었고 종교도 그 연장선이라고 믿는다”

한국에 기독교도는 8백만명에 이른다. 종교적 울타리가 높아지면서 나머지 국민들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이 교수의 재임용탈락도 결국은 안으로만 움츠려드는 한국 기독교의 단면이자 상징이다,

 

심재훈 기자

 

제4호 17면 2007년 5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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