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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내 인생의 첫수업

삶의 동력이 된 동지애

내 인생의 첫 수업 [19]

 

1978년 구로공단에서 직장을 다닐 때였다. 열심히 돈 벌어 부모님 도와 드리고 동생들 공부도 시켜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하루 14~15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하고 첫째, 셋째 주만 쉬면서 수요일과 토요일만 기숙사에서 외출이 가능하던 때였다. 면회 역시 외출이 가능한 날만 할 수 있었다.

이 당시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들의 생활은 외출이 가능한 날 나가 친구나 연인을 만나고, 디제이가 있는 음악다방을 찾아 신청곡을 듣거나, 을지로나 영등포로 나가 극장에서 영화 한편 보는 정도가 문화생활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친구들의 소개로 노동야학을 다니게 되었다. 6개월의 수업이 끝나고 후속모임을 하면서 1970년대 초부터 노동운동을 했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전태일 열사가 펜으로 꾹꾹 눌러 쓴 일기장을 보면서 많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평화시장 다락방 작업장에서 허리도 펴지 못하고 점심마저 굶으며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을 위하여 미아리에서 평화시장까지 걸어와 아낀 버스비 2원으로 풀빵을 사다주었던 전태일 열사의 사람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가슴을 벅차게 하였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그도 모자라 폭언과 폭행이 일상화되었던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끊임없는 요구와 투쟁 과정에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열사의 마지막 외침은 나의 심장을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또한 회사 관리자들과 구사대들이 동일방직 노동자들을 똥물을 뒤집어 씌워 탄압하고 이에 대항하여 여성노동자들이 알몸시위를 하면서 당당하게 투쟁하는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분노와 두려움이 함께 교차하였다. 몇 날 몇 밤을 새우고 고민하여 얻은 결론은 내 삶의 주인으로 당당히 현실과 맞서야겠다는 것이었다.

이 당시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 동생들 공부시키고 결혼 준비하여 멋있는 남편감 만나 지겨운 노동현장을 벗어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78년 8월부터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해 여러 개의 소모임을 조직하고 준비하여 많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80년 5월 17일, 3일간의 파업농성 끝에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러나 감격과 환희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노동조합을 결성한지 2시간 만에 전두환 일당에 의해 계엄령이 선포되고 3개월 만에 정화대상자가 되어 노조위원장직을 그만두어야 했고, 7개월 만에 6명의 노동조합 간부와 함께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되어 20일 동안 수사 아닌 고문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철못으로 폐쇄된 노동조합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든 것은, 아니 1천200백명의 조합원들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든 것은, 아픔과 고통을 함께 했던 조합원들의 한없는 동지애였다. 81년 6월 다시 경찰서에 연행되어 구속된 후 겪게 된 1년 6개월간의 감옥생활 동안 나는 또 다른 인생 수업을 받게 된다.

이렇게 1978년부터 시작한 나의 새로운 삶이 30년 동안 흔들림 없이 노동운동과 여성운동, 교육운동, 학교급식운동으로 이어지고, 생활 속의 풀뿌리운동을 꾸준히 계속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사람’이었다.

평화시장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중심에 놓고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온몸으로 항거했던 선배 전태일 열사의 삶을 접한 것은 내 인생의 첫 수업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쉬지 않고 운동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함께 했던 사람들의 동지애였다. 지금도 감옥에 있을 때 하루도 쉬지 않고 보내준 조합원들의 수 백 통의 편지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때 많은 동지들이 보내준 메시지 역시 내 인생의 수업 내용이다.


배옥병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

 

제23호 16면 2007년 10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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