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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지구촌

정치적 살해 그만두라, 아로요

민중진보세력 '의문의 죽음'

오는 14일 필리핀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비사법적 살해로 8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2001년 두 번째 피플파워로 정권을 잡은 아로요 대통령이 재집권을 위해 2004년 부정선거를 저지르며 필리핀은 다시 민주주의의 사각지대가 됐다. 반 아로요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자행되고 있는 정치적, 비사법적 살해를 알리고 국제연대를 요청하기 위해 필리핀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 중인 마크 씨가 글을 보냈다. /편집자

 

최근 필리핀은 비무장한 민간인들에게 총을 쏘는 괴한들과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복면을 하고 오토바이를 탄 채 환한 대낮에도 사람들을 향해 총을 겨눈다. 그러나 재판정에 서거나 유죄를 선고받은 적은 없다. 사실 발견되거나 체포된 적조차 없다. 군과 경찰이 연루됐다는 증거다. 이들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희생자들은 필리핀의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노동조합원, 농부, 선생, 성직자, 학생 뿐 아니라 민간인들도 있다. 필리핀 네슬레의 노조 지도자였던 디오스다도 카포르트 포르투나토는 부인과 6명의 자녀를 남겨두고 2005년 총격에 의해 사망했다. 필리핀 독립 교회의 최고 임원이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성직자로 알려진 비숍 알베르토 라멘토는 교회에서 잠을 자던 중 칼에 찔려 숨을 거두었고 호세 마 쿠이 교수는 시험 감독 중 학생들 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약 2주 전 군에 의해 유괴된 것으로 보이는 마 루이사 포사-도미나도와 닐로 아라도는 아직까지 행방불명 상태다. 9살 난 소녀 그라실라 부야는 집 주변 개울에서 총에 맞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군 당국은 그라실라의 사체가 발견될 당시 16mm 크기의 라이플 총이 함께 놓여있었다며 어린이 게릴라였다고 발표했다.

필리핀 인권단체인 카라파탄(Karapatan)의 기록에 의하면 글로리아 아로요가 정권을 잡은 2001년 이후 840명 이상이 정치적 살해를 당했다. 840명의 희생자 중 약 300명이 활동가나 인권운동가로서 이들을 노린 정치적이고 비사법적 살해였음이 분명해졌다. 나머지 희생자들은 정치적 연관 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무차별 발포와 대량 학살 등으로 죽임을 당했다.

정치적 살해로 죽음을 맞은 이들은 800여명, 실종된 이들은 2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필리핀에서 이런 상황이 가능한 이유는 아로요 정부가 ‘오플란 반따이 라야(Oplan Bantay Laya)’라고 불리는 국가안보체제를 수립했기 때문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아로요 대통령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만든 체제로서 민간인을 합법적인 군의 표적으로 본다. 이슬람 세력이나 무장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발포가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살해 또는 비사법적 살해는 국가 기관이 자행한 정치적 동기에 의한 살해다.

왜 죽음을 당하는가?

아로요 정권은 민중진보세력과 철저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민중진보세력은 정권과 싸우는 다양한 세력 가운데 가장 잘 조직되고 결의가 굳은 진영이다. 이들을 약화시키는 것은 동시에 광범위한 반아로요 연합전선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비사법적 살해는 진보 정당의 지도자들과 민중 단체를 향한 다른 형태의 정치적 탄압을 보완한다. 아로요 정권은 활동가들과 지도자들을 죽이고 괴롭힘으로써 필리핀 민중을 위협하고 그 밖의 대중 폭동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부정선거로 아로요 대통령의 재선이 가능하게 했던 2004년 선거 이후에 이 현상이 더 심해졌다. 부정선거를 계기로 아로요 정권에 대한 반대세력들이 체계적으로 대항 전선을 구축해나가자 활동가 살해의 정도가 더 심해진 것이다. 아로요 대통령은 에스트라다를 물러나게 하고 그녀를 권좌에 앉힌 때처럼 민중들이 자신도 내쫓을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부정선거로 아로요 대통령의 재선이 가능하게 했던 2004년 선거 이후에 필리핀 민중들의 반정부 투쟁도 확산되고 있다.


“아로요는 유죄”

비록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게 만천하에 드러나기는 하겠지만 진실은 분명하다. 몇 주 전에 장소를 차례로 옮겨가며 국제적으로 아로요 정부의 정치적, 비사법적 살해에 관한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있었다.

지난 3월 25일 국제법상 세계의 중심지인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있었던 민족상설재판소(PPT, Permanent People’s Tribunal)의 판정과 필리핀의 독단적인 비사법적 살해를 다룬 UN 특별조사관의 중간보고서가 그것이다. 이 보고서는 3월 27일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 인권 위원회에 전달됐다.

민족 상설 재판소는 조지 부시 및 미국 정부에 대한 고발과 함께 아로요 대통령과 필리핀 정부를 피고로 세 가지 고소를 접수했다. 시민권과 정치권의 총체적이며 조직적인 위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위반, 국가적 자결권과 필리핀 국민의 자유에 대한 위반이다. 재판소는 현재 필리핀 정부군(AFP, Armed Forces of the Philippines)의 대 게릴라 활동 프로그램과 오플란 반따이 라야를 비사법적 살해와 강제적 실종, 고문, 대량 학살, 그 밖의 대규모 시민권, 정치권 위반의 근본 원인이라 판단했다. PPT는 “군 당국이 필리핀 인권 위반 시나리오의 최고 중대한 중심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찾았다”며 “보고된 살인과 고문 및 강제 실종은 필리핀 정부의 책임이 밝혀졌고 테러리즘에 대한 필수적인 방책이었다는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오는 14일 총선에서도 아로요 정권에 의한 대규모 부정선거가 예상된다.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총선으로 아로요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아로요 세력이 입법부를 구성하게 되면 아로요의 탄핵 뿐 아니라 정권을 유지하는 동안 저질렀던 범죄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법적 처벌이 가능해진다.

선거 감시 그룹인 콘트라 다야(Kontra Daya)는 대규모 부정선거의 조건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 선관위인 COMELEC은 2004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자행된 부정선거 사례를 조사하는 데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아로요 행정부가 계속적으로 부정선거를 자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콘트라 다야는 2004년 대선 당시 상대 후보보다 아로요 대통령이 유리하다는 식으로 선거결과가 날조되어 필리핀 지방 곳곳에 광범위하게 보내졌고 개표 중 선거조작은 물론 선거 후에도 개표결과 보고서가 위조되었음을 밝혀낸 바 있다.

그리고 부정선거 의혹에 깊이 관여했다고 알려진 아로요 행정부의 새 국방 장관은 선거기간 동안 무장 군부세력이 ‘보안적 평화와 질서’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곧 아로요 측 후보들을 위해 군부대가 동원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선거에 환상은 없다

진보세력은 아직 거대하게 무력화된 대규모 활동을 체계적으로 조직화해 정부를 강제하고 아로요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시민을 모을 방책을 세울 능력이 없다. 현실적으로 정치적 세력의 반 아로요 연합 측 상황은 극도로 약화된 아로요 정권에도 불구하고 수동적 반대자 정도에 그치고 있다.

선거를 통해 완벽하게 정치적 위기가 되고 진정한 개혁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없다. 하지만 필리핀 사회의 압제적이며 착취적 상황을 철저히 조사하는 노력을 늦춰서는 안 된다. 5월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미국을 등에 업고 아직도 권력독점욕을 포기하지 못하는 아로요 정권과 정치적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총선을 일주일 앞둔 지금의 시점에서 이런 움직임을 포기하지 않는 한 몇 번의 승리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민중세력이 다시 한 번 힘을 발휘할 것이다.

지난해 9월 국내에서도 정치적 살해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가 개최됐다. 필리핀 이주노동자연대와 한국의 인권사회단체들이 주한 필리핀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모습.


반아로요 세력은 아로요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의석수를 얻어 결국 정권을 차지하길 원하고 있다. 이들은 국민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진정한 개혁을 향한 민주적 운동에의 참여를 호소하는 보다 광범위한 포럼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아로요 행정부가 의석수를 차지해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한 반대세력에 대한 정치적, 비사법적 살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필리핀의 진정한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국제사회가 연대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글=마크 파들란 (국내 필리핀 이주노동자 단체 카사만코 교육부장)
번역·정리=전상희 기자

 

제2호 11면 2007년 5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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