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사회신문이 출범했다. 진통을 겪고 탄생했기에 잘 성장해 가기를 기대하는 마음 또한 간절하다.
어떻게 하면 시민사회신문이 건강하게 잘 성장해 갈 수 있을까?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니, 2013년에 르몽드를 따라잡고, 2017년에는 더 타임즈를, 그리고 2027년에는 뉴욕타임즈를 따라잡는다는 식의 거창한 목표가 게시되어 있었다.
경영진의 남다른 각오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신문이 자신의 역할을 올바로 깨닫고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시민사회신문은 자신의 역할을 ‘정부와 시장을 감시·비판하고 때로는 응원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만 중요한 내용이 한 가지 빠졌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시민사회를 모니터하는 역할이다. 감시&비판의 대상에는 정부와 시장뿐 아니라 시민사회도 포함되어야 한다.
보수 언론들이 왜 그렇게 엉망이 되었을까? 그것은 갈수록 더 큰 사회적 권력을 가지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감시와 비판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법칙을 피해 갈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어찌 보면 한국의 시민단체는 언론 못지 않은 사회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거의 전무하다.
나는 얼마 전에 신문 칼럼을 통해, 한 유력 시민단체가 잘못된 정책 대안을 가지고 국민들을 오도한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 단체와 무관한 사람으로부터 ‘시민단체가 다른 시민단체를 비판하는 것은 금기인데 왜 그러느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주도권 경쟁을 하자는 것이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해당 단체로부터는 어떤 해명이나 반론도 듣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단체가 정책적 오류를 시정한 것도 아니다. 감시와 비판의 전문가인 시민단체가 감시와 비판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시민단체 상호간의 비판은 잦거나 지나칠 경우 소모적인 갈등과 논쟁으로 귀결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시민사회신문같은 언론 매체가 상시적으로 시민사회를 감시&비판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면 시민사회신문은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추어 감시&비판해야 할까?
첫째, 시민운동이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에 빠지지 않는지 감시해야 한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시민운동도 여론의 지지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다. 그래서 운동 전략을 짤 때 어떻게 하면 즉각 언론의 관심을 끌고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낼까 고민하는 경향이 있다. 시민단체가 대중영합주의적 정책 대안에 집착하면 그 폐해가 크다. 올바른 정책 대안이 뒤로 밀리기 쉽고, 정치인들의 대중영합주의와 시민단체의 대중영합주의가 결합하여 상승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시민사회신문은 여러 정책 대안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적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단체가 대중영합주의적 경향을 띨 때는 가차없이 비판하는 용기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사회도 살고, 시민사회신문도 산다.
둘째, 시민운동이 ‘단기주의’에 빠지지 않는지 감시하고 장기적 안목에서 운동을 전개하도록 유도하고 격려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안목은 매우 단기적이다. 언론의 안목은 정치인들보다 더 단기적이다. 그래서 정치인들과 언론을 자주 상대하다 보면 시민운동가들의 안목도 단기적이 되기 쉽다. 그때 그때 이슈가 되는 문제들에 집중하게 되고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장기 과제에는 등한하게 된다. 장기 과제를 다루면 언론이 보도해 주지 않기 때문에 사명감을 가지고 몇 번 해보다가는 낙심해서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시민사회신문은 의도적으로 ‘장기주의’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가 지나치게 단기주의로 흐를 때는 엄중하게 경고해야 한다. 일반 언론이 보도해 주지 않는 장기 개혁 과제를 다루도록 시민사회를 유도하고 그런 장기적 안목의 운동을 펼칠 때 적극적으로 보도해야 한다.
셋째, 시민사회신문은 시민사회가 제대로 된 정책적 역량을 갖추고 발언하는지 감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역량을 갖추도록 적극 요구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한국의 시민사회는 충분한 조사 연구를 통해 우수한 정책 대안을 개발하고 미래를 위해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는 손을 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운동의 인프라 구축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 일을 시민사회가 자발적으로 할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이를 적극 권유하는 것 또한 시민사회신문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