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기본권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갖고서 자유롭고 평등하다고들 말한다. 그 ‘인간’이라는 범주는 특정한 성을 지칭하지 않은 보편적 인간이다. 그러나 가부장제 그늘에서 여성이 기본적인 권리에서 배제되어 왔다는 것을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성들, 성폭력과 강간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 직장에서 각종 불이익과 차별을 감수하고 있는 여성들, 낭만적인 기대로 연예를 시작하지만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허전한 감정을 맛보는 무수한 여성들이 한국여성의 자화상이다. 40대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중 4명만이 오르가즘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다.
과연 여성들은 살아가며 자신의 관심과 욕구, 관심사에 의거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나 될까.
그 선택의 내용도 사회에 의해 강요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연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배울 자유는 있는지, 결혼하지 않을 자유는 있는지, 결혼하지 않고 성적인 쾌락을 즐길 권리가 있는지, 결혼하여 아이를 낳지 않을 자유가 있는지.
여성은 자신의 욕구와 관심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기적인 여성’, ‘문제가 있을 것 같은 여성’이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남성 중심적인 사회가 제시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것이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믿고 있다.
누구의 어머니나 아내가 아닌 바로 ‘나’로 살아가고 여성 현실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립하고 저항하고자 함이 아니다. 여성으로 살자는 것은 남성을 미워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이든 증오든 이제까지 남성에게 쏟았던 기운을 여성 자신에게 돌릴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가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똑똑한 여자, 자기 뜻대로 산 여자는 ‘시대를 너무 앞서 갔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말이 있다. 치열하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한 여성은 불행해야 하는 것일까.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나 ‘현모양처 신사임당’의 경우를 보자. 나이팅게일과 신사임당은 재능과 열정으로 뭉친 ‘권력 지향적’인 여성이었다. 당시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협상했을 뿐이다.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에 직접 참가하고 싶었지만 사회의 성역할 고정관념 때문에 뜻을 이룰 수 없자 대신 간호 장교가 되었다. 신사임당은 자신의 학식과 예술성이 여성이라는 장벽에 막혀 빛을 보지 못하는 현실에 매우 분개했고, 그 분풀이로 임종 직전 남편에게 “내가 죽은 후 재혼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들 모두 ‘천사’와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있다.
대개 ‘위대한 여성들’에 대한 기존의 해석은 여성의 삶을 전유하고 싶은 남성의 시선이자 욕망일 뿐 ‘역사적 실제’가 아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현실을 바로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왜 계산업무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힘들게 서서 해야만 하는 것일까. 왜 주차장 안내 여성요원은 종일 하이힐을 신고 짧은 스커트를 입어야만 하는가. 왜 승객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승무원들은 호리호리한 몸매와 예쁜 외모를 강요받아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여성을 인간으로 바라보고 여성 스스로도 존중받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의 권리와 여성에 대한 존중이 문화, 제도로 정착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하는 시도다. 사랑하고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관계를 더욱 평등하고 더욱 더 자유롭게 만들어가는 것, 함께 공존하고 화합하기 위한 노력 그것이 바로 여성주의가 담고 있는 마음이다.
제22호 11면 2007년 10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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