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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반딧불 공동체를 꿈꾸며

풀뿌리 칼럼[4]

 

어느 평론가가 그랬던가. “문화는 경제의 피를 먹고 자란다”라고. 이 말은 경제 상황의 호전 여부에 따라 문화의 성숙도가 결정된다는 경제 결정론적인 견해를 품은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 우리 경제는 지난 98년 유례없는 외환위기 상황을 맞아 급기야 국제통화기금의 구제 금융을 받는 등 6·25전쟁 이후 최대의 민족사적 위기에 몰린 바 있었다.

 

당시 한국사회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기업이 부도나고, 실업자가 길거리로 내몰렸다. 아시아의 용을 자부했던 우리 경제가 하루아침에 ‘위험 사회’(risk society)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웃 일본 역시 사상 최대의 금융 위기와 엔화 약세 국면에 몰려 있어 우리 경제의 회복기는 더욱 요원하기만 한 국면이었다.

이와 같은 경제 여건에 따라 우리 문화 또한 시름시름 죽어갔다. 그러나 문화의 활력이 경제 상황 논리에 전적으로 지배받은 것만은 아니었다. 가령 문학의 경우, 저 박정희의 악령이 지배했던 70년대에 문학사에 남을 만한 뛰어난 작품이 숱하게 씌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련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리는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자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5천년의 유구한 문화 민족 운운하며 문화를 어떤 틀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사는 사람 속의 문화와 살림의 문화를 다시 한번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전 지구적 자본의 물결에 떠밀려 앞만 보고 달려왔다. 남이야 어찌 됐든 자기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극에 달하였다. 문화 향유 역시 경제 논리에 밀려 가진 자와 빈자(貧者) 사이에 놓인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대중문화)의 간극은 아득하기만 하다. 엄밀히 말해서 문화는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것이고, 또 누구나 문화적 삶을 누려야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오로지 경제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기 짝이 없을 것인가. 문화는 경제의 피를 먹고 자라는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탓에 어려운 시절일수록 ‘나와 너’, ‘나와 사회’와의 관계에서 작은 존재들 사이의 협력과 연대는 더욱 소중한 것이다.

외환위기가 요동치던 90년대 말, 충남 천안시에서 ‘반딧불 공원’을 조성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천안시가 반딧불의 집단 서식지인 광덕면 광덕, 지장, 보산원리 일대 풍세천 주변에 4만2천350평을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받아 생태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 기사를 보며 늦은 감이 없지는 않으나 매우 기발한 발상이라고 생각하였다.  

언제부턴가 인공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자연-문화 공간은 자본의 잠식에 떠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바로 그 공간의 극히 작은 공간에 인위적인 문화 공간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문화는 닫혀 있는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인공적인 행위로 규정되고 말았다. ‘문화는 경제의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극단적인 경제 논리도 알고 보면 이런 행위를 합리화하는 선언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복원되어야 할 것이 한두 가지랴. 도시화와 산업화는 농경문화에 기초한 전통 문화를 모조리 박물관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우리 문화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살림의 문화’였다. 물론 경제 발전이 가져다주는 편리와 문명의 혜택을 모조리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재래의 공동체 문화가 해체된 자리에 문화산업의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점차 살림과 공생의 문화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특권층을 위한 문화 일변도로 흐른다는 것은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문화의 타락이고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를 역행하는 처사인 셈이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후손에게 물려줄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서라도 자연-생태계와 문화적 유산을 우리가 소중하게 가꾸고 보존해야 할 것이다. 환경공원을 조성하고 천연기념물을 지정하는 것도 좋지만, 문제는 자연-생태 공간을 그대로 살려 삶이 함께하는 문화를 만들고 가꾸는 것이 더 소중한 일 일터이다. 여름밤 작은 풀벌레가 반짝반짝 발하는 반딧불 공동체의 모습을 보았는가. 어쩌면 그 모습은 우리 모두가 느껴야 할, 작은 희망을 향한 겸손과 연대의 빛이 아닐까.


양문규 시인, 건양대 강사

 

제20호 18면 2007년 9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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