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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마음마저 가난하지 않기를

[시민운동 2.0]

 

우리는 해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민주주의와 인권의 장례가 치러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권 운동의 영역은 너무나 광범위해서 다양하고 안타까운 사연들에 늘 둘러싸여 있지만 일개 민간단체에서 법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외면당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구제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리 만무하다. 돌려보낸 그들의 뒷모습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거리에서 쏟아내는 절망과 무표정한 폴리스라인 사이에서 나는 가끔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최소한의 행복을 요구했던 사람들은 끝내 밀려나 지금 이 순간에도 끝이 보이지 않은 싸움을 붙잡고 잠을 뒤척인다. ‘단결’ 이나 ‘투쟁’과는 먼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 역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무한 경쟁 속으로 질주하는 사회, 한쪽으로 치워진 이들이 몸을 누이는 농성장이나 고단한 몸을 끌고 나간 일터에서 겨우 붙잡고 있는 조그마한 공간이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투쟁에 나서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져 간다. 이따금씩 사석에서 오랜 친구나 낯선 사람들로부터 ‘충돌하는 인권’에 대해 응답하라는 요구를 받는 일은 흔한 일중에 하나다.

집회와 교통체증, 어렵사리 명함을 손에 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인권이 충돌하는 현장에서 차라리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자문하기 보다는 ‘운동권’이 혐오스러워서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자의 인권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운동이고, 함께 살아가야지 않겠냐는 착한 말들은 이기적이고 단호한 편가르기에 또 한 번 무기력해진다. 점점 더 살기 힘들어 진다고 말하면서부터 침묵과 타협을 포기해버린 쪽에 대한 혐오와 분노의 수위는 높아져만 가고 있다.  

최근 이랜드-뉴코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숨 가쁜 투쟁에서 ‘구사대’라고 불리는 매장 입점주들의 폭력성은 도를 넘어섰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나서고 있는 ‘이랜드기업 불매운동’에 대해 매장 내 사업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 집회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엄청난 숫자가 동원되어 이를 저지하는 행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 집회는 단순히 ‘영업방해반대’ 입장을 표현하는 성격을 넘어 도심 한복판에서 민주노총 집회 참가자를 검문해 린치를 가하고 심지어는 손도끼 등의 흉기를 휘두르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구사대 폭력이 문제가 된 것은 뉴코아만이 아니다. GM대우에서의 심각한 노조탄압,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투쟁에 직접폭력을 가한 정규직노조…. 백색테러라고 표현되고 있는 이 같은 구사대폭력 앞에서 노동권 쟁취의 역사는 빛이 바래고, 노조활동의 상징인 조끼를 나눠 입은 똑같은 노동자가 노동자를 폭행하는 광경마저 목격한 활동가들은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며칠 전 울산에서 농성을 하고 있던 노조 간부가 농성장에서 괴한에게 칼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도나도 운동을 하는 것이 두려워진다고 말하는 동안 문득 살기 힘들다고 내뱉는 소시민들의 한숨이 떠올랐다. 눈앞에 이익을 빼앗긴 자들이 내지르는 폭력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다가도 이내 그들의 속절없는 분노가 서글퍼진다.

너무나도 명백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실형과 집행유예 사이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가진 자들의 한편에서 더 이상 빼앗길 것 없는 사람들의 싸움은 처절하다 못해 끔찍하다. 끝내 뉴코아 노동자들의 패배를 보겠다고 천문학적인 차관을 해외에서 들여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 거리에서 나는, 미아가 됐다. 많이 가지지 못해 제 가슴을 할퀴어가며 싸웠던 참혹한 현장. 그곳에서는 나타나지도 않은 검은 손에 대한 분노를 어찌 할 수 없어 길을 잃고 말았다.    

살기 힘들다는 그대들에게 묻습니다.

살아가기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동안 진정 잘 살기 위해 그대들이 선택했던 것이 하릴없는 침묵과 타협이 아니었는지를 말입니다. 사는 게 만만치 않다는 말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물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마음마저 가난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성규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제20호 19면 2007년 9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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