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고되도 마음은 편해”
밤새워 마음을 졸였던 태풍이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와 남쪽 땅은 나리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소중한 목숨도 20명 이상이나 앗아 갔습니다. 애써 가꾼 곡식도 마구 망가졌습니다. 추석명절을 앞두고 목숨을 앗긴 가족들과 작물을 밟힌 사람들은 태풍이 밀려간 뒤 감쪽같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제주도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지만, 가족과 농토를 앗긴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히 쓰다듬어 주기는 만무합니다.
태풍이 지나가자 거짓말처럼 쨍한 가을볕이 종일 들판을 속속들이 헤집고 가을바람은 들판을 쏘다니며, 용케 태풍을 견디고 누런빛으로 고개를 숙이는 벼의 속살을 어루만집니다.
일찌감치 아침을 끝낸 김옥이(74, 울진군 북면 하당리) 할아버지 부부는 밀짚모자를 푹 눌러 쓰고 양팔에는 토시를 끼고 갈바람에 설겅이는 집 앞들로 나섰습니다.
남효선 |
농약없이 농사지으미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훨씬 편하다는 김옥이 할아버지. 농약 안친 쌀을 군이 전부 수매해서 우리 손자들이 먹을 학교 급식으로 넣는다니 마음도 한결 놓인다고 말한다. |
올해로 이태 째 농약 한번 치지 않고 애써 가꾼 벼는 누런빛으로 영글며 가을볕을 한아름씩 받아먹고 있습니다. 누렇게 익어 설겅이는 논배미를 보자 할아버지는 다시금 땅과 곡식을 앗긴 남쪽 사람들의 상심한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영 편하질 않습니다.농심은 모두 한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날 때부터 익혀 온 농사일이지만 노부부는 요즘 새롭게 일 할 맛이 난답니다.
60년대 말까지 자고 일어나면 논매랴, 서숙밭 매랴, 피사리하랴 몸서리나던 농사일이 요즘은 즐겁기까지 합니다.
지아비를 따라 나선 할머니의 속내도 썩 나빠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기사 16살에 시집온 이후로 하루도 쉴 틈 없이 고추밭이야, 서숙밭이야 매고 허리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한 채 논으로 나가 적어도 네 벌까지 논매기에 나섰던 할머니인지라 피 뽑고 논매는 일이 이제는 영 싫어질 법도 한 데, 논배미에 나란히 서서 한 포기 한포기 피를 뽑는 할미의 손놀림이 얼핏 가벼워보이기도 합니다.
70년대 초에 요소니 복합비료니 처음 나와서 ‘이게 웬 떡이냐’ 할 만큼 농사일이 곱절이나 수월해져 그 때부터 마당 한 켠을 지키고 있던 거름자리부터 후딱 치웠던 터였습니다. 특히 그 지긋지긋한 ‘똥장군’을 지지 않은 것만 해도 해방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0년, 논배미에 피나 잡초가 무성해도 예전처럼 땡볕에 얼굴이 시커멓게 타도록 일일이 피를 뽑지 않아도 제초제나 농약 두 세 번치면 감쪽같이 피나 잡초가 없어졌습니다.
그 지긋지긋한 거름이나 똥장군을 퍼내지 않아도 요소니 복합이니 화학비료 몇 번 치면 신기할 만큼 모가 쑥쑥 자랐습니다. 더구나 새마을운동이 들불처럼 온 나라에 번질 무렵에 나온 ‘통일벼’는 두 번 다시 생각조차 싫은 보리고개로부터 해방시켜주었습니다. 평생 배불리 먹어볼 요량도 안 났던 ‘입쌀’도 아쉬움 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몇 해 전인가, 미국쌀이 우리나라에 파도처럼 밀려들어 오고 정부에서는 해 마다 수매량을 줄이더니 작년부터는 아예 수매를 받지도 않는다는 얘기가 소문처럼 나돌았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텔레비전에,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자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늦게 본 막내아들이 대학을 마치려면 아직도 이태나 남았는데, 나락수매를 안한다고 하니 일이고 뭐고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70살이 후딱 넘어도 밥 때면 한 그릇씩 거뜬하게 해 치우던 밥맛도 영 나질 않는 게 도무지 살맛조차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도무지 일할 맛이 안나 근 보름이상을 방구들을 베고 꿈쩍도 않다가 마침 흥부장날에 장터로 나가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군청에서 외국산 쌀과 겨루기 위해 무농약으로 키우는 친환경농법을 장려한다는 얘기였습니다. 더구나 군에서 친환경농업을 신청하는 농민에게 농약 대신에 ‘오리’와 각종 천연재료로 만든 ‘퇴비 비료’를 무상으로 공급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지은 나락은 품질검사를 거쳐 군이 전량 수매까지 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귀가 번쩍 뜨일 얘기였습니다.
그 길로 김옥이 할아버지는 내쳐 면사무소에 들러 친환경농업 경작지 신청을 단숨에 마쳤습니다.
내친 김에 후딱 결정한 일이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내심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초제나 농약을 뿌리지 않고 오리를 논바닥에 넣으면 정말로 피도 없어지고 소출도 예전처럼 나올지가 제일 먼저 생긴 걱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남효선 |
첫 해에 군으로부터 오리를 받아 논바닥에 풀어 놓을 때까지도 마음 한 구석에는 걱정이 소죽가마솥에서 김 피어오르듯 뭉실거렸습니다.
오리를 논에 넣은 지 한 달여가 지나자 오리가 자란만큼 모도 장하게 자라났습니다. 군에서 공급받은 유기농 퇴비비료도 듬뿍 넣었습니다. 춘분 무렵 단비를 듬뿍 먹은 ‘참풀'(산에서 자라는 떡갈나무 잎)도 매일 한 짐씩 베어 마당 한 켠에 다시 만든 ‘거름자리’에 넣었습니다. 거름이 거의 삭을 무렵 화학비료 대신 때깔 좋게 삭은 거름을 뿌렸습니다.
벼가 고개를 숙일 무렵 할미와 함께 피를 뽑는 일도 새로운 재미였습니다. 애써 가꾼 벼를 베어 따스운 가을 볕에 내다 말리는 일은 예전처럼 몸에 익은 일이라 그닥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첫 해 농사를 마치자 소출은 화학비료 쓸 때보다 조금은 작은 듯 했지만 밥맛은 옛날처럼 꿀맛이었습니다. 우선 햅쌀로 밥을 지으니 그야말로 기름이 자르르한 게 윤기가 흐르는 것이 보기에도 침이 흐를 지경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분좋은 건 정부수매가 1등급으로 전량 모두 농협에서 수매를 한 점이었습니다. 이렇게 수매한 쌀은 모두 우리 손자들이 다니는 학교에 급식으로 공급한다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습니다.흥부 장터 못 미쳐 있는 농협창고 앞 마당에서 수매를 마치고 참으로 오랜만에 이웃 마을 친구와 함께 기분 좋게 술도 한 잔 걸쳤습니다.
‘나리’인지 뭔지 태풍이 훌쩍 지나가고 가을 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날, 할미는 재촉 안 해도 아침설거지를 후딱 마치고 벌써 짚 앞들로 나설 채비를 합니다. 올 해는 유난히도 비가 많이 와 지난 해보다 피라는 놈이 훨씬 많았기 때문입니다.
할미와 나란히 서서 폭신한 논배미를 밟으며 한포기 한포기 피를 뽑는 일이, 몹쓸 미국 쌀 이기는 일이라는 생각에 피 뽑는 손마디에 힘이 불끈불끈 솟았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가을 볕은 한없이 따사로왔습니다. 울진 북면 하당리에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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