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다양한 사회운동과의 연대 모색 필요
“엔지오·신사회운동도 변화의 고비 맞고 있다”
내부분열·세계화 역풍 딛고 국제적 네트워크를
병목지점 맞은 세계사회포럼 변화 필요한 시점
민주노총 창립 20주년 기념 '87년 노동자 대투쟁 20주년 토론회'에 초청되어 3번째로 한국 땅을 밟은 피터 워터만(Peter Waterman)은 ‘사회운동적 노조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로 노동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사회학연구소의 비상근 선임연구원이기도 하다. 최근 열린 '사회운동포럼'과 성공회대 노동사회연구소 주최 토론회에도 참석한 그가 지난 4일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민주주의와사회운동연구소 소장)를 만나 국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새로운 흐름 등을 놓고 얘기를 나눴다. /편집자 |
-조희연(이하 조)=당신은 한국에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로 유명하다. 당신의 논의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층노조운동의 관료주의와 노동대중과의 괴리, 다양한 사회운동에 대한 개방적 연대의 필요성, 국제주의적 연대, 밑으로부터의 운동 등이었다. 먼저 당신의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피터 워터만 |
▲피터 워터만(이하 워터만)=내가 만들어낸 용어로선 아마 유일무이할 것이다. 이념적으로 사용했었는데 남아공 운동가들이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 와중에 받아들였고 그 후에는 킴 무디(Kim Moody)가 주로 전파하고 다녔다. 사실 양쪽 모두 난 불만족스러운데 그들은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를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노조, 노동계급, 민중과의 연대 정도로 이해해 썼던 것이다. 내 의도는 이와는 달리 노동계급, 노동운동, 신사회운동(80년대적 의미로) 사이의 친밀한(intimate) 관계를 지칭하려는 것이었다. 사실 맑스주의자나 개량주의자들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노조에 대한 이해(혁명적 전위라든가 이익집단 등)에 대한 비판이었다.
노동대중과의 괴리 극복 과제
-조=킴 무디는 노동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는데 당신은 노동과 기타 사회운동 간의 평등하고 열린 교류 같은 것에 더 관심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운동과 다양한 사회운동 간의 연대에 있어서 ‘노동중심성’의 문제가 바로 제기된다. 노동을 강조하지 않으면 개량주의로 비판당하기 십상이다.
▲워터만=한국에서는 노동에 대한 전통 맑스주의적 이해가 강하다고 들었다. 이것은 사실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사실은 아니다. 노동계급이 특히 더 해방적이거나 국제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경험적인 문제인 듯하다. 한국 노동자들은 특히 더 인종주의에 반대하는가, 제국주의에 더 반대하고 평화를 더 사랑하는가 등을 따져 봐야 한다. 노동운동의 역할은 시대, 장소에 따라 다르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운동의 전위가 되려할 것인지 나는 모른다.
-조=당신은 아예 ‘국제적인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를 위해서는 맑스주의 이상이 필요하다’(More than Marxism is Necessary for an 'International Social-Movement Unionism)라는 논문을 쓴 바도 있다. 맑스주의와의 연관 속에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가 어떤 재해석을 제공하는가.
▲워터만=다른 종류의 사회주의들(아나키스트, 개량주의, 57가지 다른 트로츠키주의, 여성주의, 생태주의, 반군사주의자)들 간의 이론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단순히 맑스주의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종교적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맑스의 입장은 모든 걸 비판하라 하는 것이었고 그 점에서 보면 맑스도 자기를 비판하라고 한 것이다.
-조=당신은 글에서 ‘1848년을 위한 국제주의에서 1998년의 국제주의로’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응하는 초국경적 연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인가.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를 일국적 차원에서도 생각할 수 있고 지구적 차원에서도 생각할 수 있다고 보는데.
▲워터만=민주노총이 한국 상황을 비판하는 걸 들었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헤이그에 앉아 듣는 네덜란드 사회 얘기가 전혀 다른 역사, 문화, 사회인 한국 얘기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국 노동계급은 아시아를 넘어 전 지구적 노동계급이다. 한국 노동자는 내부에 복합적인 전 세계적 계급분화의 일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 자기는 중국, 일본, 필리핀인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든가 이들과 평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거부하는 것은, 특히 남성노동자가 자기만이 진짜 노동자고 집에 있는 자기 아내나 길에서 음식 팔고 있는 행상인은 진짜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틀린 것이다. 내 친구인 앙드레 고르스도 말한 적이 있다, 노조가 갈 두 방향 중 하나가 노동에 대한 새 이해, 그게 아니면 자본주의 국가에로의 통합이라고.
지구적 차원에서 생각하라
-조=당신은 의사소통적, 문화적 국제주의를 이야기한 바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논의들은 대체로 신사회운동적 논의인데 급진적 신사회운동의 통찰을 수용하는 것인가.
▲워터만=소통적 국제주의는 1980년대에 내가 발견한 것이다. 그 당시 나는 ‘국제노동연구’(International Labor Research) 뉴스레터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나누고 있었다. 85년께 우리는 ‘새 노동 국제주의를 위해서는 새 소통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후 소통을 이론화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노조, 노동계급, 민중과의 연대 넘어 신사회운동 등 변화하는 흐름과의 친밀한(intimate) 관계를 지칭한다. 사실 맑스주의자나 개량주의자들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혁명적 전위 또는 이익집단 등에 대한 비판이다”
유명한 표현 중 하나로 ‘인터넷은 증기기관이라기보다는 알파벳의 발명과 맞먹는다’는 언급이 있다. 성직자 바깥 계급은 모두 글 모르는 무지렁이였던 서구 몇 천년간의 역사를 상기해보라. 마찬가지로 인터넷이나 사이버스페이스를 생각하면 국제주의는 소통적, 문화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국제 노동조직간 네트워크는 있어도 국제 노동문화 네트워크는 없다.
-조=국제사회노조주의 틀 안에서 일국 국가성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실제 노동자들이 국적, 국가성에 의해 파편화되기 때문이다.
▲워터만=서구의 가장 발전된 선진국에서도 가장 분명한 사회갈등 문제는 다 이민자와 관련된 문제들이다. 단지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전 계급을 통틀어 말이다. 우린 관용 그 너머로 가야한다. 관용은 우월자가 비우월자에게, 안전한 자가 불안한 자에게 베푸는 태도 같은 것이므로 그 이상으로 가야하고 연대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 관계를 안 맺을 때 오는 대가는 더 혹심하다. 미국에서 백인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가 자신들 권리와 동등해지는 데 반대하고 있고 노조는 대게 그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조=특히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노동자계급을 인종적, 민족적으로 분절화시켜놓은 상태에서 자본은 이 균열을 자본축적에 이용하고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이 위계 속에서 손쉬운 수혜자로 머물러 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이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에서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는가.
▲워터만=이들을 연대관계 속에서 맞을 것인가 아니면 경쟁관계 속에서 맞을 것인가라는 확실한 선택이 가로놓여 있다. 미국, 덴마크, 영국 등의 이민 공동체에서도 자기들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기 속으로 파고들어 과격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를 도덕적일 뿐 아니라 기술적인 문제로서 접근해야 한다. 자본과 노동의 자유 이동이란 이념적이고 수사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조=단도직입적으로 A. 네그리(Antonio Negri)와 M. 하트(Michael Hart)의 저서 ‘제국’(Empire)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어떤 의미에서 대중의 인종적, 민족적 분리 등에서 기인하는 지구화 시대 저항주체의 다중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인상도 받는데.
▲워터만=비판할 수 있을 만큼 아직 충분히 깊게 읽지 못했다. ‘제국’보다는 ‘다중’(Multitude) 을 읽었는데 노동자, 농민 관련 부분은 훌륭했다. 다중이란 개념이 문제인데 노동계급, 빈민, 민중 등 개념도 어떤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되면 실은 다 문제적이다. 하지만 맑스주의에 대한 전복적이고 자극적인 영향 주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포르투갈 태생 보나벤투라 드 소사산토스(Boaventura de Sousa Santos)의 저작들에 더 공감이 간다. 현실적이면서도 매우 독창적이다. 제국이니 다중과 같은 화려한 용어 개발은 없어도 말이다. 사회해방의 새 물결에 대한 매우 자극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 그는 세계사회포럼(WSF)에 대해서도 많이 썼다. 네그리 작품은 철학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사회학적이라고도 할까. 보나벤투라와에게도 마찬가지 점이 있다. WSF에 대한 생각도 나와 많이 달라서 그가 쓴 걸 보고 나중에 ‘우리가 똑같은 WSF에 갔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본적인 생각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WSF도 돈과 권력의 복합이 지배하므로 거기에 대한 정치경제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의 정치경제학
조희연 |
-조=네그리는 지구화시대의 구체적인 투쟁과제로서 ‘지구적 시민권’, ‘보편적인 사회적 임금’, ‘지식정보공유권’(재전유권) 등을 의제로서 제기하는데 이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워터만=지구시민권의 뜻을 정확히는 모르겠다. 보편사회임금은 대단한 폭발력 갖고 있을 듯하다. 남아공에는 ‘기초수입보장제’(basic income grant)제가 있는데 실직자에게도 적용되는 일종의 사회임금이다. 지식권, 정보권은 다들 얘기하는 문제인 것 같고.
-조=당신은 ‘국제적 노동헌장’(international labor charter)에 대해 이야기해왔는데.
▲워터만=그런 비슷한 헌장 두 가지에 자극받은 것이다. 하나는 미국 ‘유니언 헌장’으로 사회 파트너십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그냥 그러저러한 문서이다. 일종의 약속이지 캠페인과는 별 관련이 없다. 다른 하나는 ‘인류를 위한 여성의 전 지구적 헌장’(Global Women's Charter for Humanity)으로 2000년 설립된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이 내놓은 것이다. 국제 노동운동은 19세기 말에 하루 8시간 노동을 위한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몇몇 나라에서는 성공했는데 곧이어 1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중단되었다. 어쨌거나 그 당시에는 전 지구적 노동 문화나 노동자 정체성 구축 같은 것에 있었다. 앞으로 이것이 어떤 형태로 이어져 갈지 예의 주목하고 있다. 단지 문서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 노동헌장 운동으로서 나는 이것을 제시하고 있다. 민주노총한테도 국가적 차원에서 한번 전개해보라고 건의한 바 있다.
“한국 노동계급은 아시아를 넘어 전 지구적 노동계급이며 전 세계적 계급분화의 일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자기는 중국, 일본, 필리핀인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든가 특히 남성노동자가 자기 아내나 행상인은 진짜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틀린 것이다”
-조=누가 이 운동의 전담자가 될 수 있을까. 당신은 가령 ILO(국제노동기구)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판적인데.
▲워터만=전체가 열린 대화 과정이 되어야할 것이고 노조와는 독립적인 조직이 맡아 이끌어야할 것이다. 따라서 크고 무거운 조직체에 좌지우지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터넷상에서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데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노조, 노동운동가들은 이런 과정 자체를 유토피아적인 것이라 생각할 텐데 유토피아적이지 않으면 세상을 변혁할 수 없다는 걸 상기해야 한다.
-조=더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노조라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유일한 조직 형태인가 하는 물음도 제기할 수 있는데.
▲워터만=노조 바깥의 노동자들과 투쟁 경험이 있는 노동자가 특히 이런 의문을 제기하기 쉽다. 사실상 그런 운동이 많다. 2006년 미국의 메이데이 날 이주노동자들이 행진했는데 멕시코인들이 많이 나왔다. 노동역사상 가장 큰 행진 중 하나였지만 미국의 양대 노조가 주도한 게 아니었다.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신 농민 조직들, 특히 비아캄파시나(Via Campesina)같은 국제적인 조직들 이었다. 이들은 다 노조가 아니다. 국제적 이민자 네트워크, 필리핀 마오주의자 그룹들, 그밖에도 많은 조직들도 마찬가지다. 노조는 아니면서 운동을 담당하고 있는 조직체들로서 조직이라기보다는 네트워크이다.
-조=근대노동자계급의 조직적 단결 형식으로서의 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근대적 사고 틀 안에서는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 옹호를 위해 조직체가 반드시 필요했는데 하나가 노조였고 다른 하나가 노동자 당이었다.
▲워터만=근대적 의미에서의 정당은 사실 노동운동이 발명해낸 것이다. 독일 사회민주당이 대표적이다. 10년, 20년 내에 이는 다시 사민주의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말이다. 노동운동이 근대적·정치적 당을 만들었다는 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가끔 노조는 국가 산업 자본가들의 조합이라고 부르는데 국가 산업 자본가들의 노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노조는 그것이 반대하는 것의 일부가 이미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노조를 비판해온 사람도 많다.
-조=WSF에 대해서 묻고 싶다. 개인적으로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WSF에 참석한 바 있다. 1999년 시애틀 투쟁에서 부상한 반세계화투쟁은 WSF이라고 하는 글로벌 진보 공론장을 통해서 급성장하였다. 하지만 현재 일정한 병목지점에 도달했다는 논의들이 많다. 현 단계 WSF의 문제점과 변화방향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가.
▲워터만=첫번째 WSF에 갔었는데 많이 자극 받았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 방향을 완전히 상실해버리는 경험을 했다. WSF이란 건 새롭고도 이상한 공간이다. 내 아내는 라틴 아메리카 여성운동가이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그런 공간이 물 속 고기처럼 매우 자연스럽다. 이는 역사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여성운동이 축적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유엔이 조직한 큰 엔지오 포럼에 관여한 적이 있어서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번 1월 나이로비 것도 그다지 평이 좋지 않다. 또 하나 내가 비판하는 점은 WSF의 정치경제학으로서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와 관련된 것이다. 덴마크의 큰 펀딩 조직, 그리고 포드 재단 같은 곳이다. 나이로비 대회는 단지 회계만이 아니라 빈민을 배제하는 등 전체 진행 방식도 문제가 되고 있다. 참석자들의 80%이상이 대학 이상 교육 받은 사람들이다. 미국사회포럼은 다행히 보통 사람이 많이 참석했다고 한다. 인도에서도 그랬다고 하지만 영어로 말하는 사람들은 텐트 안에 있고 바깥에서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힌디어를 쓰는 이들이었다. 여전히 이런 격차가 벌어진다.
포럼이 포럼 자체 모델 안에 갇혀있다는 비판도 있다. 나는 포럼이 나중에 뭔가 더 나은 형태가 생길 때까지는 하여간 계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더 지역적 수준으로 내려가고 현재는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의 사이버 공간에서나 생태학적으로 더 나은 그런 형태 말이다.
자이센과 함께 WSF에 대한 책을 썼던 사람으로서 몇 가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고자 한다. ‘WSF: 제국에 대항하여’라는 같은 제목으로 내년에 두 권이 또 나올 계획이다. 계속되면 제목은 ‘제국에 대항하여: 전 지구적 정의 운동’이 될 것이다. WSF은 그저 하나의 경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비쳐져야 한다. 포럼이 사파티스타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파티스타들은 포럼에 오지 않는다. 미국의 이민운동가들도 오지 않는다. 지구상 많은 운동이 WSF에 동참하지 않는다. 또 포럼 내에서 다뤄지는 문제들이 불균등한 편중 현상을 보인다는 것도 문제이다. 무역에 대해서는 많이 얘기하는데 노동에 대해서는 적게 얘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조=그래도 사미르 아민(Amin)이나 WSF 국제위원회 우따르 신부 등이 주도하는 바마코 선언은 나름대로 대안적 체제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려는 긍정적 노력으로 보인다. 한국에도 번역된 조지 몽비오(George Monbiot)의 책 ‘도둑맞은 세계화’에 보면 다보스 포럼 진영의 사람들이 WSF 진영의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겠다. 이제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해 달라’고 도전하고 있는데.
▲워터만=WSF의 2001년 슬로건이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 이건 이후 대단한 전 지구적, 정치적 확장을 낳았다. 대안이 적용 가능한 분야를 파악하는 건 가능하다. WSF 덕분에 좌파라는 것의 의미가 변화했다. 이 밖에도 여러 신선한 시도들이 있다. WSF에는 또 WSF만의 문화가 있다. 그 안에서는 모든 이가 다른 모든 이에게 말 거는 것이 가능하고 모든 논쟁이 열려있다. 이는 기존 좌파 문화와는 많이 다른 것이다.
-조=사회운동적 노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조가 변화해야 할 점도 있지만 이른바 엔지오, 신사회운동이 변화해야 할 점도 많다. 더구나 최근에는 엔지오가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당신은 사회운동의 ‘엔지오화’(ngoization)에 대해 비판적인 것으로 아는데.
▲워터만=나도 엔지오 프로그램 가르치고 있지만 엔지오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내가 ‘시민사회 미션’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글이 한편 있는데 중앙아메리카 엔지오에 대한 비판이다. 엔지오 중에서도 유달리 크고 오만한 단체들이 있다. 시빅쿠스(CIVICUS·세계시민단체연합)도 상당히 큰 조직이지만 이들은 사회운동과 자신들과의 관계를 더 냉철히 보고 자신들이 곧 시민사회라는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네덜란드에도 노벰이라는 큰 엔지오 펀딩단체가 있는데 나는 네덜란드 사회포럼을 때로 ‘노벰사회포럼’이라 부른다. 재원이 주로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큰 역할을 해온 단체들이 있다. 여성 단체들도 상당히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세계여성행진 등이 그렇다.
정치 비판에도 적극 개입해야 한다. 사실 나는 정치보다는 권력들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다. 정치는 권력을 전문화함으로써 그것을 민중에게서 뺏어가기 때문이다.
-조=외부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서 조언하고 싶은 사항이 있는가. 당신은 언젠가 ‘한국의 민주노총은 자유민주주의에 걸맞는 사회개혁주의적 모델을 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대단히 어려운 조건에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의 전형이 되기도 했지 않은가.
▲워터만=한국에 89년 처음 왔는데 노동운동가들이 전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고 있었다, 그건 단지 1905년의 문건이었는데 말이다. 그 다음에는 98년에 왔는데 민주노총이 ‘국가’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국가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 역할을 하면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자 역할을 하겠다고. 한국은 매우 강도 높은 노동운동이 존재한다. 마치 서구에서의 100년간의 노동운동이 단 몇 십년간에 빨리 벌어져야하는 것처럼. 이는 굉장히 독특한 경우다. 우린 서로 다른 이념 갖고 있을지 모르나 어쨌거나 같은 운동에 속해있다고 느낀다.
◇피터 워터만(Peter Waterman)은 누구?=네덜란드에서 주로 활동해온 국제적 노동운동 활동가이자 연구자. 지난 수십 년 간 세계의 노동운동을 분석하고 이론적, 실천적 활동을 했다. 사회운동적 노조주의, 국제적 정의 연대운동과의 결합 등 노동운동이 신사회운동과 페미니즘 등과 적극적으로 만나서 정의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1960년대에 ‘세계노동조합총연맹’(World Federation of Trade Unions)에서 활동했으며 80년대에는 ‘국제노동연구회보’(Newsletter of International Labour Studies)의 편집인과 발행인을 역임했다. ‘세계사회포럼: 제국에 대항하여’(World Social Forum: Challenging Empires, Black Rose Books, 2007)를 발간했다. 후속 연구작은 ‘노동자 국제주의에서 지구적 연대로: 지구화, 시민사회, 연대’(From Labour International to Global Solidarity: Globalisation, Civil Society, Solidarity)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
사진=김상택 기자
제19호 3면 2007년 9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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