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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풀뿌리

푸르른 청춘, 길쌈바구니에 담고

[국도를 따라 4]- 길쌈꾼 순례 할머니의 꿈

 

내 어렸을 적 외할미는
안마루에 등잔불 지펴놓고 둘게삼을 삼으셨다.
동리 할매들이 일찌감치 저녁밥 해 드시고 삼 양푼이를 들고
해거름이면 모여드셨다.
더러 늦은 겨울 밤 할매들은 김장김치와 노오란 조밥을 양푼이 가득 담아
서걱서걱 살얼음 씹히는 짠지를 손으로 줄줄 째며 겨울밤을 나셨다.
크고 작은 동네 사건들이 행여 사랑방으로 번질까 사각사각
무릎팍 비비는 소리만 문풍지를 흔들었다.
평생 치마폭으로 여며 온 할매의 속살이 이맘때면
등잔불 아래 눈처럼 드러났다.
무릎을 세워 긴긴 동삼을 지나 온 할미의 무릎
눈부신 쪽빛이었다.
안마루를 쭉 둘러앉아 할매들의 둘게삼은 물 속처럼 투명한 속살 빛으로
자식을 기르고 집안을 일으켰다.
누르면 꼭 터질 것 같은
그러나 영 매글매끌한 할매의 속살
홍시를 따면서
늦가을 볕에 쨍하고 투명한 할미의 속살이
나뭇잎 없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남효선, '둘게삼' 전문>

둘게삼은 고된 삼삼기를 서로 나누는 탁월한 지혜

농촌가계를 떠받치는 힘은 여성들입니다. 어머니의 어머니,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집안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무슨 망발이이냐 하겠지만 사실입니다. 한국 근· 현대사에서 농촌가계의 팔할은 여성노동으로 버팀해왔습니다.

단위노동 강도로 비교하면 여성노동이 남성노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다 하겠지만, 노동량이나 노동의 종류, 노동의 규모 등 노동가치론적 시각에서 보면 여성노동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육아노동은 물론 가부장적 대가족제도에서의 가사노동 그리고 농업노동과 농촌가계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직물생산 등 생산유통노동은 거의 여성들의 몫이었습니다. 

남효선

'둘게삼'은 여성들이 삼삼기 노동을 공동부조로 나누며, 고된 노동을 즐거운 노동으로 전환시킨 탁월한 지혜의 산물입니다.

경상도 북부지방에는 ‘둘게삼’이라는 길쌈관행이 있습니다. 가을걷이 끝난 겨울 농촌마을은 또 다른 일감준비로 부산합니다. 집집마다 아낙들은 길쌈삼기로 긴 겨울밤을 지샙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안마루나 안방에 마주앉아 희미한 등잔불 아래에서 긴 겨울밤이 이슥하도록 삼을 삼는 모습은 그리 오래 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아낙들은 매일 반복되는 가사노동의 고단함에서 잠시도 벗어날 틈없이 길쌈바구니를 끼고 살았습니다. 갓 해산한 어미는 삼칠일도 지나기 전에 한쪽에는 아이 젖을 먹이며 한 손으로는 삼을 삼았습니다. 삼을 곱게 삼는 딸아이는 최고의 신부감이었습니다.

길쌈은 농촌가계를 버팀하는 중요한 생업이었습니다. 많은 식구들의 입성거리는 물론 가계에 필요한 생필품을 장만하는데 쓰이는 비용을 마련하는데는 길쌈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물론 소를 키우는 것도 가계의 상당부문을 차지하는 것이지만, 여성노동만으로 상당한 비용을 마련할 수 있는 일은 그리 흔치않습니다.

길쌈은 꽤 복잡한 공정과정을 거칩니다. 우선 직조물의 재료인 목화와 삼(대마), 모시를 가꾸어야 합니다. 경상도 울진지방은 농토가 적어 주로 강원도 정선 등지에서 삼을 구입해와 길쌈을 했습니다. 이를 ‘삼도부 간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몇몇이 모둠을 만들어 정선 땅으로 직접 가서 삼을 구입해왔습니다. 요즈음으로 치면 ‘밭뙈기’입니다. 삼도부는 대략 일주일 이상이 소요됩니다. 삼을 구입해 오면 삼굿을 치룹니다. 삼굿은 대마에서 벗겨 낸 삼껍질을 공동으로 쪄내는 일입니다. 이때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삼을 찌며, 음식을 나누고 한바탕 질펀하게 놀이판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삼 축제’인 셈이지요. 

남효선

도무지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길쌈노동의 고됨을 약간이라도 들어보기 위해 정착시킨 노동관행이 둘게삼입니다. 비슷한 년령층의 아낙들끼리 한 곳에 모여 ‘삼을 삼는’ 행위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함께 모여 삼을 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몫의 삼삼기를 마치면 뒤떨어진 사람의 삼삼기를 함께 거들어 주는, 이른바 두레노동입니다.

두레는 한국의 농촌사회를 버팀해 온 ‘공동부조의 작업공동체’의 구체물입니다. 농사일에서 길쌈에 이르기까지, 혹은 집안의 크고 작은 경조사 모두에는 두레관행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두레는 끝이 보이질 않는 노동의 고됨을 즐거운 노동으로 전환시키고, 특히 상호부조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탁월하게 높이는, 우리 조상들이 남긴 지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과거일이 돼버렸습니다. 경북 울진군 소곡리 섭실마을에서 찍었습니다.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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