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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내 인생의 첫수업

걸쭉했던 '막걸리 연대'

내 인생의 첫 수업[1]

누구에게나 인생을 바꾼 수업이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선배의 말부터 봉사활동에서 만난 어느 농부의 이야기, 대중강연의 연설까지 그것이 꼭 수업이라는 고정된 형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 인생에 첫 수업’은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었던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고정란입니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고비에 직면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다. 1984년도 있었던 일이니까 꽤 오래전의 이야기이다.

그해 5월 25일 대구에서 1천여 명의 택시 운전기사들이 사납금 인하, 노조결성 방해 중지 등의 요구를 내걸고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택시기사들이 총파업은 일순간에 부산, 대전, 마산, 강릉 등지로 확산되었다.

당시 나는 택시 기사들의 총파업투쟁을 목격하면서 어떤 형태로든지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방법은 총파업투쟁을 지지하는 가두시위를 전개하는 것이었다. 군사정권 시절인지라 합법적인 가두시위는 엄두도 낼 수도 없었다. 고심 끝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아침 8시에 영등포에서 기습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6월 22일 오전 8시 나의 호각 소리와 함께 일시에 2백 명의 학생들이 스크럼을 짜고 대열을 형성했다. 신속하게 도로를 점령하고 유인물을 살포하면서 영등포 로터리 쪽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로타리에 도착했을 무렵 한 대의 시위진압용 가스차가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시위 학생들에 의해 일거에 제압되었다.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뒤 다시 대열을 수습하여 양평동 로터리 쪽으로 행진해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찰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간으로 보면 경찰의 진압작전에 전개되기에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단 한명의 연행자도 없이 가두시위를 마칠 수 있었다. 나와 후배들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곧바로 구로공단 전철역 근처에 있는 허름한 막걸리 집을 찾았다. 바로 그 자리에는 평생 잊지 못할 찌릿한 경험을 하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우연히도 택시기사들을 만났고 그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들 수 있었던 것이다.

택시 기사들은 학생들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가두시위를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속하게 퍼뜨렸다. 그러자 택시기사들은 다투어서 영등포로 몰려들었다. 그리고는 학생 시위대 후미를 수백 겹으로 에워쌌다.

경찰차가 난리를 쳤지만 이들은 요지부동으로 시위대를 엄호했다. 우리가 경찰의 공격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가두시위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택시기사들의 그 같은 엄호 덕분이었던 것이다.

택시 기사들은 이야기를 마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날 우리들의 술값과 식사비를 계산하고 막걸리 몇 통을 추가로 안겨다 주었다.

박세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

 

제1호 21면 2007년 4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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