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 천주교주교회의에서는 가톨릭학생회가 점점 운동성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가톨릭학생회 전국협의회를 해체하기로 결정하고 가톨릭학생회전국협의회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하였다. 학생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한동안 선배들의 지원을 받아 활동을 계속하였다.
가톨릭학생운동사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시간들을 함께 보내면서 오래도록 내 안에 한구석을 차지하는 기억 하나를 펼치려고 한다. 어이없는 주교회의의 결정이 있었을 때, 나는 가톨릭학생회 전국협의회 부회장의 임기를 마치고 선배 대열에 들어서 있었을 때였다. 어려운 상황을 버티는 후배들을 위하여 선배들을 찾아 지원을 청하고 십시일반으로 모아진 후원금을 후배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잠시 하던 중 지금까지도 떠올리면 가슴 저 아래가 두 번 뜨끔하게 쑤시듯 아픈 참 다른 두 모습들에 대한 기억이 있다.
사회 초년병으로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선배들은 후배들을 위한 후원금을 건네면서,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들을 몹시도 부끄러워하며 심지어는 미안해하며 후원금을 건네주었다. ‘왜 이 선배는 이리도 미안해해야만 하나….’ 선배들에게서 후원금을 받고 돌아서는 길에 가슴 저 아래가 한번 뜨끔하고 쑤셨더랬다.
십시일반으로 모아진 후원금을 전해줄 때, 건네받는 후배들은 어찌나 당당하던지, 몇 몇 후배들은 심지어는 당당함이 지나쳐 살짝 오만하기까지 했었고, 그 후배들과 헤어져 돌아서는 길에 또 한 번 가슴 저 아래가 뜨끔하고 쑤셨다. 그 때는 그러했었다. 십시일반의 정성을 모았지만 교구의 지원 없이 전국 조직이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웠기에 그렇게 건네주고 받고 했던 것도 몇 번 되지 않았을 것이나 지금까지도 그 때의 쑤시던 아픔이 제법 생생하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위한 모금을 전개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임을 수시로 확인하게 된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는 웬만큼은 쉽게 지갑을 열 수 있으나, ‘여성’이라는 주제는 왜 그리 많은 생각을 복잡하게 떠올리게 만드는지…. 그래서 늘 지원해야 할 만큼의 모금이 되지 않아, 갈증이 가득하기만하다. 특히 공모사업에서 선정된 사업들을 발표할 때마다 다 하지 못한 숙제들을 등짐으로 짊어지고 여전히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다가 안타깝게도 선정되지 못한 단체들 중, 간혹 몇몇은 선정되지 못한 이유를 알기 위하여 재단으로 연락을 할 때가 있다.
재단 이사회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하던 중, 한 이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언제나 주는 손은 교만하지 말아야하고, 받는 손은 비굴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면 단어를 달리하여 여러 경우 얘기될 수 있는 말씀이었으나, ‘당당하게 받는 손, 겸손하게 주는 손’을 마음속에 새기도록 해준 말씀이었다. 그 이사님의 말씀은 이후 재단이 주는 손이 될 때, 혹은 받는 손이 될 때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주고받는 손들의 자세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한다. 물론 따뜻하고 겸손한 사랑의 손들이 많이 있으나, 여전히 주는 손이 너무도 교만하여 받는 손이 비굴해지는 때에는 80년대 초에 가슴 저 아래를 뜨끔하게 쑤시던 아픔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때로는 거꾸로 받는 손이 너무도 비굴하여 오히려 겸손할 수 있었을 손이 슬그머니 교만해질 때도 있다. 나눔이라는 것은 단순히 지금 내가 많이 가지고 있어서 베푸는 것이라기보다는 지금 나의 환경은 다행히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혹은 나의 친지나 지인이 도움을 필요로 할 수도 있을 것이기에 지금 누리는 여유를 나누는 것이라 생각하면, 내미는 손이 좀 더 겸손해질 수 있을 것인데….
80년대 초의 단상은 그 시절, 쉽게 내놓을 수 없었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은 이야기였다. 지금 재단에서 주는 손들과 받는 손들을 수시로 잡고, 건네고, 나누고 있는지라 교만한 손과 비굴한 손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내놓을 수 없으나, 언젠가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주는 손은 교만하지 않도록, 받는 손은 비굴하지 않도록 정말 건강한 나눔의 문화가 뿌리내리도록 주고받는 손들을 끊임없이 성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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