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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최종규ㅣ책이야기

어떤 책을 읽을까?

책으로 보는 눈 [15]

 

맑게 개인 듯 싶더니 오지게 쏟아붓는 장대비가 뒤죽박죽 되풀이되는 요즈음. 어제도 마찬가지로 지붕을 뚫을 듯 퍼붓다가 확 개더니, 다시 이슬비가 뿌리고 오늘은 아침부터 찌뿌둥했는데, 아홉 시를 넘기고 열 시가 되니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뭉게구름과 새털구름까지 보입니다. 오늘은 괜찮을까? 걱정스럽지만 오래도록 이불과 담요를 말리지 못했기에 하나씩 꺼내어 탁탁 턴 뒤 담장에 걸쳐서 말립니다.

저녁이 되어 하루일을 마치고 잠들 무렵이면 방 온도는 28도에서 더 떨어지지 않아 땀이 흐르거나 끈적끈적. 지금이 여름이라 그렇다지만, 무더운 여름도 바람이 시원한 여름도 아닙니다. 바람이 불면 창문을 깰 듯 휘몰아치는 돌개바람이고, 개고 흐리기가 되풀이되는, 어쩌면 벌써 인천 땅까지 아열대 날씨로 바뀌어 버린지도….

날씨를 보는 우리들은 참 이상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예부터 이어온 날씨가 아니라 도시 문명을 듬뿍듬뿍 쓰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바꾸고 만 날씨입니다. 계급사회가 수백 수천 해 이어오면서 일자리와 차림새와 돈과 신분에 따라 푸대접이 깊이 뿌리내리고 말아 뽑아내기 어렵게 되었듯이, 일제강점기 서른여섯 해를 거치며 우리 사회와 삶 구석구석 얄궂은 찌꺼기가 속속들이 배었듯이, 독재정권이 쉰 해 가까이 나라를 옥죄면서 우리 마음과 생각과 몸가짐이 병들거나 뒤틀려 버렸듯이, 지금 우리는 또다른 모습으로 우리 삶터와 삶을 흔들고 있습니다. 흔들면서 흔드는 줄 모르고, 흔들리는 땅덩이를 우리 살갗으로 안 느끼거나 못 느낍니다.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네, 저는 저한테 좋은 책을 읽습니다.” “그러면,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요?” “제 마음에 드는 책이 좋은 책이지요. 제가 읽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해 주는 책이요.” “자신을 돌아본다는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요?” “제 좋은 모습과 나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하면서, 제가 발딛고 살아가는 이 땅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살필 수 있게 해 주는 일입니다.”

새책방 나들이를 하노라면, 잔뜩 쌓아 놓은 베스트셀러와 ‘신간코너’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구나 싶고, 갈래에 따라 나눈 칸 책은 손길을 거의 못 타지 싶어요. ‘많이 읽히는 책’이냐 아니냐가 책을 고르는 잣대처럼 되었다고 느낍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할 때에도, 사람들이 흔히 찾는 책은 ‘좀 더 알려진 책’이거나 ‘새 책으로 사자니 돈이 아쉬운 책’이기 일쑤입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자기 손이나 옷에 책 먼지가 묻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책 더미를 하나하나 살피고 책시렁을 헤집는 사람이 드뭅니다.

생각해 보면, 자기 사는 동네에 헌책방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지 않으며(새책방도 마찬가지), 어쩌다가 알아보았다고 하더라도 ‘헌책방(또는 작은 동네책방)에 무슨 볼 만한 책이 있어?’ 하면서, 들어가 구경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책을 찾기에 그럴까요. 우리들은 어떤 책을 읽어야 좋기에 그럴까요. 지난주에 ‘슬픈 미나마타’(달팽이)를 사서 읽고 있습니다.


최종규 우리 말과 헌책방 지킴이 hbooklove@empal.com

 

제16호 11면 2007년 8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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