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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최종규ㅣ책이야기

식민지 이야기는 일본사람이 쓴다

책으로 보는 눈 [13]

 

그제, ‘한국근대사 개설’(한울, 1986)이라는 조그마한 책 하나를 샀습니다. 77쪽짜리 책입니다. 글쓴이는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 이분 책은 1985년에 ‘한국사입문’(백산서당)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 나옵니다. 일본에서는 ‘朝鮮史’(講談社)라는 이름으로 1977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글쓴이 가지무라 히데키 님은 ‘朝鮮史’를 써낼 때까지 ‘한국 땅을 밟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과 북녘에서 펴낸 거의 모든 역사책을 꼼꼼히 읽었고,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에서 나온 ‘한국사를 연구한 책이나 논문’을 빠짐없이 살폈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朝鮮史’를 보면, 가지무라 히데키 님이 얼마나 많은 책과 자료를 살펴보았는가가 뒤에 붙었고(그 작은 책에), ‘그때(1977년까지) 남녘이나 북녘에서 나왔던 거의 모든 역사책’이 일본말로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학자는 한국을 와 보지 않고도 한국 사람들 안방 구석구석을 훤히 돌아볼 수 있는 셈입니다.

그제, ‘한국근대사 개설’을 살 때 함께 보인 책은 ‘식민지’. 이 책 또한 일본사람이 쓴 글을 단출하게 추려내어 엮은 작은 책. 문득 생각이 나서, 인터넷 새 책방을 들어가 ‘식민지’로 찾아보기를 해 봅니다. ‘식민지’라는 말이 들어간 책이 그럭저럭 보이기는 합니다만, 정작 일제강점기 역사를 다룬 책은 적네요. 게다가 중고등학생 눈높이에 읽을 만한 식민지 이야기책은, 또 대학생이나 여느 사람들 눈높이에 읽을 만한 식민지 이야기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전문 학자가 읽을 만한 책 또한 드물구나 싶어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일제강점기 역사를 헤아릴 수 있도록 도와줄 만한 읽을거리나 볼거리나 알거리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텔레비전에서 어쩌다가 한두 번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풀그림?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풀그림은 무엇을 바탕으로 엮어내지요? 초중고등학교 역사 교사는 무엇을 바탕으로 아이들한테 역사를 가르칠까요. 아이들한테 역사를 가르치는 수업 시간 가운데 얼마쯤을 ‘일제강점기 역사는 이렇다’ 하고 보여주고 들려주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인터넷 새 책방에서 ‘식민지’로 찾아보기를 했을 때 그나마 일제강점기 역사를 다룬 책 몇 가지는 거의 ‘일본사람이 지은 책’이었습니다. 남녘사람이 쓴 책은 얼마 없습니다. 남녘에서 백제 역사를 다루는 학자 숫자가 열이 안 된다고 하고, 고구려 역사를 다루는 학자 또한 열이 안 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백제나 고구려 역사를 다루면, 더욱이 가야 역사를 다루면 이런 전문지식이 쓰일 만한 곳이 없다고 하겠지만, 백제와 고구려와 가야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없는데다가 교과서에서도 ‘전쟁 이야기’만 풀어놓지 그때 사람들 삶과 문화와 발자취는 톺아보지 않습니다. 백제와 고구려와 가야 역사는 거칠고 팍팍한 세상에서 먹고사는 지식으로서는 쓸모가 없는가요.

일제강점기 역사는 어떻습니까. 일제강점기 역사 가운데 성노예와 강제징용, 우키시마호, 관동 큰지진, 우토로, 만주와 사할린 이야기는 어떤가요.


최종규 우리 말과 헌책방 지킴이 hbooklove@empal.com

 

제14호 13면 2007년 8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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