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한 손에는 농구공을 든 사람들이 홍대 농구코트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못 온다고 하더니 왔네요. 너무 재밌어서 헤어나올 수가 없죠?”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자연스레 몸을 풀더니 곧 농구공을 튕기며 코트로 들어간다.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농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뭔가 다르다. 코트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며 농구를 하고 있는 이들은 ‘오빠’들이 아니라 ‘언니’들이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행정자치부와 협력사업으로 ‘자유롭고 신나는 만번의 뜀 만번의 슛, 자신만만’ 농구교실을 진행했다. 지난달 24일부터 주2~3회에 걸쳐 총 6회로 진행된 농구교실은 중경고등학교와 홍대에서 오전과 저녁팀으로 나뉘어 수업이 이뤄졌다. 참가자들이 주로 직장인 여성들이다보니 저녁팀 참가자가 25명으로 제일 많았다.
여성들은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의무적으로 체육 수업을 받긴 하지만 수업 외 시간에 운동장은 대부분 남학생들이 차지해 노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여성민우회는 “축구나 농구 등 격렬한 운동은 남자의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 전반의 인식 때문에 여성들은 배울 기회조차 없다”며 “여성들이 스스로 ‘몸’과 ‘건강’을 되돌아보고 ‘몸’에서 비롯된 사회적 한계를 벗어나는 긍정적 변화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참가자들 모두가 한 개씩 가지고 있는 농구공은 민우회가 50%, 본인이 50%씩 부담해 마련한 ‘마이볼’이다.
김상택 기자 |
한국여성민우회는 8일 서울 홍익대학교에서 체육활동은 남성에게 적합하다는 사회전반의 인식을 넘어 여성들도 자유롭고 신나게 체육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여성농구교실 '자신만만'을 개최했다. |
기획에서부터 수업까지 모두 참가한 여성민우회의 니나 활동가는 “참가자들의 반응은 솔직히 기대이상”이라며 “‘처음해보는 거라 잘 못할 텐데’라고 걱정하던 참가자들이 이젠 ‘쉬는 시간도 필요없다’면서 농구를 정말로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저녁팀을 가르치는 김장효영 씨(27)는 백양중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현직 교사다. 여성민우회 회원이기도 한 그는 “농구가 배우고 싶다는 열의로 모인 사람들이라서 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다르다”며 “입으론 ‘힘들다’고 하지만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거니까 잘 따라 온다”고 말했다.
저녁팀은 참가자들의 퇴근시간에 맞추다보니 7시 반쯤 시작해 9시 반이 조금 지나서야 끝이 났다. 홍대 농구코트엔 따로 조명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 학교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보이지도 않는 공을 찾아 헤매면서도 참가자들은 프로 선수 못지않은 열정으로 게임을 뛰고 있었다. 그나마 홍대 농구코트는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어서 쓸 수 있었다. 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체육관 시설 빌리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화여대 졸업반 학생인 이은아 씨(24)는 “아는 언니가 땀 좀 빼자고 해서 참가하게 됐다”며 “너무 재밌어서 계속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농구교실 참가자들은 인터넷 상에 벌써 동호회를 만들어 지속적인 모임과 활동을 펴나갈 예정이다.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일 때 한 여성이 늦게 도착했다. “성남에서 일 끝나고 오다보니 좀 늦었다”는 로카 씨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농구가 하고 싶어 혼자 연습해왔다. “농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게 놀랍고 같이 해서 더 즐겁다”면서 그는 부지런히 몸을 풀며 코트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제15호 7면 2007년 8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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