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핵발전소 1호기의 수명완료로 인해 수명연장 문제가 본격적으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몇 년전 핵폐기장 선정을 둘러싸고 부안과 경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갈등을 겪었기에 이 문제 역시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으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수명연장을 둘러싸고 한수원측과 환경단체의 주장이 엇갈리고 지역주민들의 반대여론 또한 높아가고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수명완료’의 의미= 다음달 18일 30년의 설계수명을 다하는 고리 1호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핵발전소이다. 71년 착공된 고리1호기는 78년 상업 가동에 들어가기까지 핵산업과 관련 학문이 전무한 상태에서 핵기술을 육성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만을 갖고 시작한 발전소이다.
정부는 미국에서 도입한 PWR(가압형경수로) 방식의 고리 1호기를 짓고, 이어서 월성에는 캐나다에서 도입한 CANDU(중수로)방식의 발전소를 건설함으로써 본격적인 핵발전 시대를 열었다. 이렇게 지어진 핵발전소가 ‘폐로의 운명’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고리1호기는 올 6월에 끝나고, 월성 1호기도 2012년이면 수명이 완료된다.
수명완료의 의미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최동권 정비기획처 고리1TM 부장은 “설계 수명은 운전의 최소한의 기간일 뿐이며, 안전성을 평가하여 만족할 경우 운전을 계속하는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도 정기점검을 받아서 합격 판정을 받으면 계속 운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다른 발전소와 달리 핵발전소는 더욱 안전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수명이 끝난 발전소를 부분적인 교체를 통해 ‘수명연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반응이다.
◇‘안전성’과 ‘경제성’ 사이 = 한수원은 ‘계속 운전’을 주장하는 이유로 선진국들 역시 계속운전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한수원은 고리1호기를 2천800억원을 들여 보수하면 계속 운전할 수 있는 반면 폐로시키는 데는 최대 15년간 3천500억원이 들고 100kw 원전을 새로 지으려면 2조5천억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영국, 캐나다 등의 선진국들이 계속 원전을 추진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유럽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이 풍력, 태양광 등 기존 패러다임과 다른 발전을 연구 개발하는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정부는 공급위주·거대발전 위주의 전력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이헌석 청년환경센터 대표는 “선진국들이 발전소 수명연장을 하려는 이유는 신규발전소 부지를 선정하기 어렵기 때문이”이라며 “기존 발전소 기기 중 일부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설계수명을 늘리려고 하지만 일본의 미하마3호기처럼 발전소 노후화로 인한 안전성 문제는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라고 논박했다.
특히 고리원전의 경우 125차례 정도의 잦은 사고와 고장이 있었던 점을 미뤄보면 ‘안전성’이 무엇보다 큰 문제이다. 이에 대해 한수원 최동권 부장은 “70년대 당시 정비 기술이나 발전소 운영능력에 비해 현재는 기술능력이 뛰어나게 발전해 있다. 대부분의 사고는 초창기에 많았고, 최근 10년간은 운영실적이 뛰어나다”고 밝혔다.
◇공론화는 어디로= 정부는 고리1호기를 비롯한 폐로에 처하게 될 원전의 수명연장을 위한 내부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수명연장 논의는 급조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핵발전소 수명연장에 대한 법과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수명연장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2년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수명연장 의사를 밝힌 정부는 2005년 수명연장 절차를 규정한 원자력법을 개정, 고리1호기에 대해 예외조항을 넣은 것이 발단이 됐다.
정부는 환경단체의 수명연장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는 주장을 묵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헌석 대표는 “정부와 한수원은 계속 ‘발전소 수명연장 문제를 결정하고 나서 관련 자료를 공개하겠다, ‘수명연장 결정에 지역주민이나 환경단체가 영향을 미치면 안된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며 정부의 원전정책을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