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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내 인생의 첫수업

여성노동자로의 '부활'

내 인생의 첫 수업[7]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누적되어 온 비민주적인 사회상황에서 1970년대로 넘어오면서 경제개발과 수출이 모든 가치의 중심이 되어있었던 시절이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는 말을 남기며 자신의 몸을 불태운 전태일 열사가 1970년대 한국 노동운동사의 포문을 열었다면, 그 마지막에는 유신정권의 몰락을 가져오게 된 YH 노동조합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공고에 맞서 기본적인 생존권을 위한 나이 어린 여성노동자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12시까지 농성하는 투쟁을 시작할 수 있었던 힘과 ‘최후의 한 사람까지 모두 죽음으로 맞서겠다’는 당찬 결의를 하며 신민당사에서의 철야농성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YH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면서 어린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나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다면, 나의 30여년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은 크리스챤 아카데미의 여성노동자 간부 교육이었다.

중간집단교육 큰 역할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당시 한국사회에 산재해 있던 갈등과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창설되었지만 '중간집단교육 (Education for Intermediary Groups)'이라는 주제로 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중간자적 중재자를 양성하는 데 그 실질적인 목표를 두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노동자, 농민, 여성, 학생, 종교 이렇게 다섯 계층으로 나누어 집중적인 중간집단 교육을 진행했다. 유신독재 정권이었던 암울한 시대에 크리스챤아카데미의 중간집단 교육은 이 사회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큰 역할을 했다. 노동자 간부교육은 그 어디에서도 할 수도 없었고 또 어디서도 받을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전태일 열사가 평소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하며 아쉬워했듯이 말이다.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4박 5일간의 노동자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는데 많은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었으며, 민주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동료들과 함께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크리스챤아카데미의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고, 노동자로서 평생 노동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자본주의사회에서 진정한 노동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었으며, 여성노동자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삶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게 해주었다.

평생 노동운동 결심
 
나 역시 여성노동자 의식을 갖게 된 것이 바로 그때였다. 가족 안에서마저 여성의 미덕을 침묵으로 강요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는 관념이 지배적인 풍조가 되었던 1970년대에 그 침묵은 남녀간 만이 아니라 모든 피지배자에게 강요된 미덕이었다는 것을 그 교육을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여성이고 노동자이니 나를 위한 운동을 하는 건데 항상 즐겁고 기쁘게 투쟁을 할 수 있도록 했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나의 삶을 바꾼 첫 수업은 지금의 최순영을 탄생시켰으며 '행복'이 늘 나의 곁에 있도록 해주었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제9호 16면 2007년 6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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