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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시민사회

정권말기 국가보안법 악용 급증

헌책방 사회과학서적 판매도 발목 ‘황당’

“구시대적 보안세력의 자기생존 몸부림”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를 진행해온 참여정부 후반기에 악용에 가까운 국가보안법 적용이 크게 늘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달 23일 서울 중곡동 ‘가자헌책방’ 점주 김 모 대표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판매 혐의를 적용,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이 이적물로 간주 한 책들은 ‘자본론’, ‘해방전후사의 인식’, ‘세계철학사’, ‘러시아 혁명사’, ‘볼셰비키 혁명사’ 등의 사회과학서적들로 모두 88권의 책들을 강제 수거했다. 지난 5일까지 조사를 받은 점주 김 모 씨는 “한총련 등의 조직과 연관 여부를 물었다”며 “정신적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수원 소재 헌책방 ‘남문서점’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연행 조사에 들어 간 바 있다. 수사를 담당한 수원경찰청 관계자는 “이전에 같은 혐의로 수사한 인터넷 서점의 구입처 명단을 보고 조사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일 ‘꽃파는 처녀’, ‘철학에세이’ 등을 판 혐의로 대표 김 모 씨가 연행됐다가 같은 달 15일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난 인터넷 서점 ‘미르북’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가자 헌책방’의 경우에도 구입자 명단을 요구하고 ‘태백산맥’ 등을 구입한 구매자 명단을 체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서점 주인들이 판매한 책들은 대부분 ‘교보문고’ 등 유명 대형서점에서 현재 온라인 등을 통해 판매하는 책들이다.

공안당국의 국가보안법 적용 사례는 올해 들어 크게 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학생운동배후조직’ 혐의로 충남대 89학번 이 모 씨를 구속했다. 보안경찰은 이 씨의 자취방 앞에 7개월여 동안 포장마차를 차리고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달 전북 임실의 A중학교 김 모 교사도 통일등반대회 참가를 문제 삼은 보안경찰에 의해 자택 및 학교 수색은 물론 자녀의 게임CD까지 압수당했다. 지난달에는 강원지역에서 농민시인으로 활동하던 정 모 씨가 자택 압수수색을 당했다. 정 씨는 평소 전농 등의 홈페이지에 글과 만화를 게재했다. ‘일심회’ 사건, 사진작가 이시우 씨 사건 등 잘 알려진 국가보안법 적용 구속 사례들도 올해 상반기에 집중 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현존하는 구체적 위험이 명백한’ 사안이라고 보기 힘든 국가보안법 적용에 대해 시민사회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배경엔 보안경찰 축소라는 시대적 흐름에 저항하는 움직임이란 지적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지난해 전국적으로 보안경찰이 30% 축소되는 등 소위 ‘사기가 꺾이고 왕따를 당하는’ 상황에서 정권 말기 국면을 타고 구시대적 보안세력들이 자기생존의 몸부림 차원에서 무리한 준동을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오 사무국장은 “자취방 앞에서 포장마차를 7개월이나 하며 큰 혐의도 잡지 못하는 수사를 벌이는 것은 그만큼 실적을 올릴만한 일이 없다는 반증이자 국민혈세를 낭비하는 일”이라며 “차라리 민생 경찰 업무로 역량을 돌리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선병렬 열린우리당 의원이 경찰청 산하 35개 보안수사대의 검거실적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 9월 현재까지 절반이 넘는 20개 수사대가 소위 보안 사범을 한명도 검거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한국진보연대(준)와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지난 7일 ‘국가보안법 악용 탄압 실태와 공안기구의 개편방안’이란 주제의 87년 6월 항쟁 기념 토론회를 개최했다. 단체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의 방향으로 표현의 자유 침해와 반인륜, 심지어 엽기적이고 황당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공안기관 해체 운동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보안수사대 등의 활동 감시 및 과거 행적 공개 요구 등을 벌여나갈 것을 제안했다.

한편 ‘헌책방’ 사건을 수사 지휘한 수원지검 공안부 담당검사는 “미르북 사건의 보완 수사 차원에서 몇 군데를 임의 수색한 것”이라며 “확대 수사는 할 생각이 없고, 경찰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그동안 이런 수사를 안 해 경쟁적으로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언급한 이 관계자는 “북한원전 부분은 그래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재환 전상희 기자

 

제7호 1면 2007년 6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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