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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시민사회

"새 의제 찾는 전환점"

[청년, 6월정신] 조희연 기고

한국 민주주의의 영원한 분수령인 87년 6월 민주항쟁 20주년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 날의 전국적인 봉기는 권위주의 정권의 붕괴를 이끌어 내고, 나아가 본격적인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시동을 건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제 20년, 시대는 우리에게 지난 과정의 민주화 성적표를 되묻고 있다. 비관적 평가가 대세를 이룬다. 민주주의는 답보상태라는 지적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핵심 열쇠말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뤘으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완결되지 않았다’로 모아진다. 일부에서는 퇴보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시민사회신문>은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테마기획 ‘청년, 6월 정신’을 2주에 걸쳐 진행한다. <시민사회신문>은 20돌을 맞는 한국 민주주의를 청년으로 상정한다. 청년의 패기로 다가올 20년은 민주화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시기라고 본다. 이성의 비관, 의지의 낙관이다. 이번호 기획은 한국 민주주의를 ‘전환적 위기’로 보며 미래를 향한 민주화 진로를 제시하는 원고와 사회 각계 20인 인사들에게 듣는 ‘지난 20년 민주화 평가와 향후 20년 민주화 과제’다.

/편집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원 출처: 경향신문사)

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학생과 시민들로 가득 메운 시청 앞 광장 모습.

 

"과거 돌아보며 미래향한 새 의제 찾는 전환점"

최루탄 자욱한 거리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외쳤던 87년 민주항쟁, 사회변화의 급진적 열기가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가슴을 불태웠던 87년 민주항쟁, 그때의 열정과 두근거림이 여전히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20주년을 맞는 시민사회운동은 지난 20년간의 변화와 20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을 시민사회운동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실천적 비전과 희망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87년 민주항쟁과 ‘전환적 위기’의 의미

주지하다시피 87년 민주항쟁은 60년대 이후의 군부 개발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 클라이맥스이며, 이후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대전환적 투쟁이었다. 87년 6월 민주항쟁에서 정점에 이른 대중적 투쟁을 통하여 군부독재정권이 퇴진하게 되며, 한국사회는 민주화의 도정에 오르게 된다. 87년 항쟁과 이후 20년간의 민주화과정을 돌이켜 볼 때 한국의 사회운동은-비록 아래로부터의 혁명적 민주화를 쟁취한 것은 아니었지만-군부독재의 유산을 척결하고, 다층적인 수준에서 민주개혁을 추동하고, 정치적·절차적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성취한 ‘모범적인’ 민주화의 사례로 찬사를 받는다.

새로운 저항적 권리주체의 등장

나는 27년간의 반독재투쟁과 그 정점으로서의 87년 민주항쟁의 경험을 통하여 ‘반공전사(反共戰士)’로 혹은 ‘근대화의 역군’으로 호명(呼名)되던 국민들이 새롭게 저항적 주체 혹은 근대적 권리주체로 변화되어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독재 하의 ‘백성’들이 독재에 저항하면서 시민적 권리와 자유,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근대적 권리를 자각하는 시민 나아가 비판적 정치의식을 갖는 공민(公民)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87년 민주항쟁 이후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의 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공의 위기'와 '도전적 위기'

87년 민주항쟁으로 군부정권이 퇴조한 이후 한국사회는 구 독재의 민주적 개혁을 쟁점으로 하는 ‘민주개혁의 시대’로 이행하게 된다. 민주개혁을 추동하는데 있어서 시민사회운동, 즉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에 이어서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개혁의 추동’이라는 점에서도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7년 민주항쟁 20주년을 맞는 지금, 나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일정한 ‘전환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전환적 위기는 ‘성공의 위기’와 ‘도전적 위기’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성공으로부터 조성되는 위기, 즉 ’성공의 위기‘ 두 가지 측면에서 연유하는데, 하나는 반독재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확보한 다양한 개혁의제들이 ‘고갈’됨으로써이다. 87년 민주항쟁에 참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하였던 의제들이 일정하게 해결되고 국보법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과 같이 합의의 ‘경계’에 존재하거나 합의의 외부에 존재하는 의제영역으로 이행하게 되었다. 또 다른 이유는 민주개혁세력에 의해서 ‘어렵게 진행된’ 개혁 자체도 민중들에 의해 ‘주어진(given)’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성취된’ 개혁에 만족하지 않고 한층 높은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민주개혁운동의 성공적 추동으로 인하여 민주개혁의 대상이 되는 국가와 시장(자본)의 합리성이 상대적으로 제고되었다는 점이다. 국가, 제도정치. 자본, 시장은 시민사회운동의 거센 도전 속에서 합리성과 민주성, 투명성의 제고를 ‘강제’당해왔다. 그만큼 사회운동의 선도성이 약화되게 된다.

김상택 기자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장을 말하기 전에 사회경제적 실질민주주의의 정체, 또는 퇴보를 이야기하며 6월 항쟁 20주년을 맞이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달 30일 서울 논현동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현재 78만6천원 수준인 최저임금이 최소한 노동자 평균 임금의 절반인 93만6천원 수준이 돼야 한다며 시위를 벌이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둘째, 전환적 위기는 한국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도전으로 조성된 상황에 의해 주어진다. 이 전환적 위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나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신계급사회’의 출현을 이야기한다. 민주화의 '성공‘적 진전으로 인하여 민주성과 투명성이 대단히 높아졌지만 반대로 대단히 계급적으로 양극화되고, 대중들의 삶의 고통이 증대된 현실이 출현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화가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흐름 속에서 그것에 규정되면서 또 그것에 의해 굴절되면서, 아울러 민주화세력이 이에 적극적으로 응전하지 못하는 속에서 전개되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위기적 상황은 반독재 민주화세력을 계승하는 민주정부가 이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사회정책을 구사하지 못함으로써 더욱 확대되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대안적 실천 방향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전환적 위기 상황 속에서 어떤 새로운 실천의 전망을 가져야 하는가. 6월 민주항쟁 20년을 맞아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면 바로 이 주제일 것이다. 전환적 위기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응전의 과제를 나는 3가지로 정식화해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즉 민주개혁의 급진적 확장, 민주개혁의 전환, 민주개혁의 견결한 지속이다.

첫째, 민주개혁의 급진적 확장은 민주개혁운동의 ‘성공의 위기’에 대응하는 과제이다. 단적으로 시민사회운동이 민주개혁과 사회진보를 새로운 의제영역들로 확장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제영역 확장 노력은 한편에서는 더욱 급진적인 민주개혁 의제들을 국민들과 사회구성원들이 동의하도록 변화시켜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민주개혁 확장의 과제로서 지역 수준 및 풀뿌리 보수주의의 개혁을 위한 새로운 관심과 노력을 들 수 있다. 사실 87년 체제 하에서의 민주개혁운동은 어떤 의미에서 중앙정치와 중앙 수준의 기업과 시장의 개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역, 지방, 풀뿌리의 새로운 재발견’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생활세계적 의제영역으로의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대가 필요하다. 어떤 점에서 87년 6월 민주항쟁은 정치혁명이었지만 문화혁명이지는 않았다.

자본주의·민주주의의 '전쟁'과 '공공성담론'

둘째, 민주개혁의 전환을 위한 노력이다. 87년 6월 민주항쟁에서 정점에 이른 투쟁을 통하여 반독재세력과 민중세력은 한국에 민주주의를 정립하였고, 반대로 개발독재 보수세력은 독재를 통하여 한국에 자본주의를 정립시켰다. 이후 양자간의 ‘전쟁(戰爭)’이 진행되었다.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확대하고 그를 통해서 자본주의에 대한 공적 규제를 확장하려고 투쟁해 왔다라면, 한국의 자본세력과 보수세력은-87년 투쟁을 통해서 정립된-민주주의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대신에 이를 자본주의의 ‘정치적 외피’로 형식화하거나 무력화하려고 투쟁해왔다. 전자가 많은 ‘전투’에서 이겼을 수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전쟁’에서는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여기서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민주주의의 급진적 잠재력을 확장하여 자본주의를 공적으로 규율(‘민주주의의 사회화’)하는 과제를 더욱 전면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여기서 시민사회운동의 인식프레임도 단순히 민주개혁에서 ‘(사회)공공성 담론’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공공성을 내포화하는 방향으로 민주주의담론을 급진적으로 확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지원과 '사회적 아시아'

다음으로 민주개혁의 전환은 한국의 사회운동이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초국경적인 지구촌의 의제들을 자기 문제로 끌어안고 싸우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기존의 민주개혁담론이 근거하고 있는 일국적 프레임을 글로벌 프레임 혹은 초국경적 프레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노력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아시아를 지원하는 많은 노력들의 확대로 나타날 수 있다.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는 아시아-외국인노동자나 코시안 문제 등-가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사는 상태를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민주주의의 지원(democracy aid)와 사회적 아시아(Social Asia)'를 형성하기 위한 선도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즉 아시아의 많은 신생민주국가들에 대하여 민주주의와 인권발전을 위한 기술적·경제적·정치적 지원을 행하는 일이다. 아시아 인권레짐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한국의 노동문제만이 아니라 범아시아적 차원의 노동규범과 사회규약을 위한 초국경적인 주체자가 되는 노력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나아가 민주개혁의 전환은 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아시아’가 아니라 민중이 주도하는 ‘사회적 아시아’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으로도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 ‘어떤 성격의 아시아’를 구성할 것인가하는 자본과 노동자계급, 자본과 시민사회, 자본과 민중의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여전히 남은 민주개혁의 영역들

셋째, 이러한 민주개혁과 사회진보의 확장과 전환의 과제 외에 지난 20년 동안 수행해왔던 민주개혁 그 자체를 견결히 추동해야 하는 과제도 여전히 우리 앞에 남겨져 있다. 한국민주주의에는 여전히 민주개혁의 흐름이 거쳐 가지 못한 여러 가지 영역들이 남아 있다. 공론장을 왜곡하는 ‘반개혁적인’ 미디어에 대한 민주개혁도 그 하나이다. 과거의 친독재적 수구적 언론들은 여전히 반개혁지일 뿐만 아니라 일체의 공적 규제를 관치나 반시장적 행위로 규정하여 무력화하는 ‘신자유주의적 계급지’로 상당부분 변모해 있다.

또한 여전히 국방외교 영역은 시민사회의 감시의 외곽에 존재한다. 극우적이고 보수적인 구 집단들이 독점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영역들도 있다. 새로운 민주적 재향군인회라고 할 수 있는 평화향군회가 어렵게 고투해야 할 정도로 민주화되지 않은 영역도 존재한다. 관료문제는 사실 제기되지도 못한 상태이다. 2005년 10·29 부동산 정책의 ‘원안’이 2006년 8·31부동산정책과 거의 유사했었다고 하는 점은 관료적 절차를 거치면서 개혁이 어떻게 굴절되는가하는 것, 혹은 국민적 공분과 시민사회의 강력한 추동력이 있어야 관료집단의 굴절을 뚫고 제한된 개혁정책 마저도 수행된다고 하는 점을 시사한다. 삼성이 기업경영을 넘어 국가‘경영’을 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민중들의 경제적 요구는 정책적 차원에 반영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반면, 삼성을 포함한 대자본의 요구는 고위관료들의-이른바 보수적·친미적·신자유주의적 관료들을 통하여-자발적인 행위를 통하여 더욱 비(非)가시적이면서 더욱 체계적으로 관철될 가능성이 커갈 것이다.

나아가 교계에서 반독재세력의 헤게모니와 선도성이 고갈되면서 보수적 대형교회가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오히려 민주개혁의 큰 흐름과 달리 확대해가고 영역도 존재한다. 대형교회들이나 보수교단들이 오히려 일정한 민주성-특별히 정치적 민주성-을 수용하면서 기존의 기득권적 교회질서가 유지되는 경우들도 있다. 이러한 예시는, 민주개혁운동이 확산되어가야 하는 영역들이 여전히 광범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과거 돌아보면 미래를 향해 떠나는

지난 20년을 돌아볼 때, 아시아 민주화 비교연구를 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도 수 백명의 정치학살이 이루어지는 아시아민주주의를 생각할 때, ‘참 먼 길을 왔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엄존하는 많은 반민중적 현실을 생각할 때 ‘여전히 갈 길이 멀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운동가들의 심정이 이와 같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시민사회운동의 시지프스적 운명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시민사회운동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서 많은 과제를 실현하게 되고 권력과 자본에 대해서 개혁을 강제하게 되면 권력과 자본은 변화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새롭게 서게 된다는 점이다. 시민사회운동이 자신의 의제를 성공적으로 실현하면 할수록 시민사회운동은 또 새로운 의제를 찾아서 떠나야 하는 것이다. 87년 민주항쟁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점이었듯이, 이제 87년 20주년은 어떤 의미에서 과거를 돌아보면서 다시 미래를 향해서 떠나야 하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제6호 4면 2007년 6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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