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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민족&평화

구름과 산이 '사죄의 바다'에 머물렀다

하동서 지리산까지-'스톤워크 코리아' 르포

전쟁 상흔, 고해의 길에서 화해 찾는 한·일 시민들

전쟁피해자를 추모하는 뜻에서 비석을 얹은 수례를 끌며 아시아 각지를 도는 반전평화운동 ‘스톤워크’(본지 창간호 참조)가 일본과 한국 시민사회운동가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6월 25일까지 일정으로 한국을 돌고 있다. 아시아 평화와 연대를 한층 성숙시키고 있는 ‘스톤워크 코리아’의 힘든 여정을 김레베카 본지 객원기자가 찾아갔다. /편집자

 

○○○ 선생님,
합천에 다녀와서 곧장 ‘일지’를 보내드리지 못했네요. 학교 수업도 있고, 제가 사정상 주말밖에는 참가하지 못하는데, 주말 동안 합천에 가서 보니까 이번 ‘스톤워크’가 흔히 있는 문화·역사 탐방들하고 대체 뭐가 다른가, 달라야한다면 어디가 어떻게 달라야하는가 등을 한번쯤 생각해보게도 만들더라고요.

짧았던 준비기간 탓인지 몰라도 우리 쪽 협력단체들의 약간은 과도해 보이는 ‘홍보의욕’으로 인해 일본 쪽 참가자들의 원래의 ‘사죄’방식이 가끔 도태되어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데모 심바시나이데 구다사이!(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요) 어디까지나 건설적인 고민이니까요.

김레베카

하동-구례간 국도를 따라 전쟁피해자를 추모하는 ‘통곡의 비석’을 끌며 걷고 있는 ‘스톤워크 코리아’ 한일 관계자들의 모습


지난 주말 다시 합류, 추모비석을 실은 수레를 따라 하동에서 함양, 지리산 쪽으로 넘어와  실상사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하동에는 3월 말에 키타큐슈에도 같이 갔던 든든한 ‘하동팀’(전 ‘위안부’ 고 정소운 할머니 추모사업회를 이끌고 있기도 한 박상진 민주노동당 하동지역위원회 사무국장, 매암차박물관의 장효은씨, ‘스톤워크 코리아2007’의 히트상품이 된 그림엽서를 그려준 화가 오치근씨 부부 등)이 있어 별 걱정 안했었는데, 구례·남원 쪽으로 출발할 때는 비도 오는 데다 생각보다 참가자가 적어 고생 좀 해야 했습니다.

‘세상 둘 없을 길’에 서린 한

그러나 그 길이란!….  212km 섬진강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하동에서 구례까지의 구간을 따라 난 19번 국도는 유홍준 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지리산 노고단을 저 멀리 두고 왕시루봉, 형제봉에서 뻗어 내린 산자락 아랫도리를 끼고 섬진강을 따라가는 길은 이 세상에 둘이 있기 힘든 아름다운 길’이라고 극찬한 이래 유명해졌었지요. 벚나무, 참나무, 이팝나무가 줄지어 섰고, 배나무며 앵두나무가 지천에 널린 그 길을 따라 섬진강공원까지 갔습니다.

청학동에서 온 서당훈장님과 아이들, 판소리하는 김소현 선생과 그 제자들을 비롯해서 지역주민 여러분의 환대를 받고, 많아야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아가 부르는 ‘흥보가’ 중 놀부를 그린 대목을 비롯해서 흥겨운 우리가락 몇 곡도 덤으로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한국에서 맨 먼저 자신이 정신대 출신임을 고백한 정소운 할머니의 유골이 뿌려진 곳에 가 국화를 강물에 띄워 보내며 간단하게나마 추모식을 가졌습니다. 후쿠오카에서 7년 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갖고 싸우고 있다는 젊은 청년 오가타 다카오 씨는 나중에 “울었다”고 먼저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실상사까지 길이 멀어 일단 차로 이동했습니다. 일행이 차로 이동할 때 수레는 수송차량 뒤에다 어른 손가락만한 두께의 철끈으로 연결해서 따로 옮기게 됩니다.

김레베카

‘통곡의 비석’을 끌고 있는 일본인 참가자 이토 간지 씨.


원래 시속 20km 이상으로 달리면 안 되게끔 설계된 문제의 4톤짜리 나무수레를 여기서는 때로 그 네다섯 배 속력으로 옮기기도 하는데, 그래선지 여기저기 삐거덕거리는 데가 있고, 수레 옆구리에도 길게 쪼개져나간 상처가 나있기도 했습니다.  

남원 지리산 자락에는 일행을 따뜻이 맞아준 지리산생명연대 분들을 비롯해 2005년부터 지리산권시민사회단체협의회를 꾸려 지리산 지역의 ‘희망씨앗찾기’ 프로젝트<주1> 를 키워가고 있는 유관단체들, 남원시에 광범위한 대안교육·의학·문화예술 네트워크를 설계중인 한생명 등 지역시민운동 관계자와 실상사, 그리고 ‘저 산만 보면 피가 끓는’ 지리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척에 ‘산청·함양사건’<주2> 추모공원’이 있었습니다. 2001년 착공 이후 총 2만2천 평이 넘는 거창한 규모로, 하지만 통과 마무리단계에 있던 특별법이 2003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함께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마땅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내실은 전혀 없게 지어진 이 공원 안내소에는 안내원이 단 한사람 뿐이었습니다.

잊혀진 살상 되살릴 평화의 얼

지난 1951년 그 사건 발발 당시 15세였다는 올해 72세의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출신 생존자 강석봉 씨가 그였습니다. 공원 맨 꼭대기에 자리 잡은 위패 봉안각에는 386명의 위패가 모셔져있었고, 오른편 합동묘역 맨 끝에는 유해 발굴 당시 남·여 구분만 한 채 가마니 째 옮겨야했던 뼈들을 합장한 큰 봉분이 두 채 있었습니다.

지리산권 어느 곳에서 민간인 학살이 없었겠습니까마는 이 산청·함양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 거창에서 거창YMCA, 함께하는거창 등의 도움과 안내로 남상면 보도연맹학살유적지, 위천 3·1운동유적지, 월성 의병유적지를 둘러봤던 일본 참가자들은 ‘결국 일본의 식민화로 인해’ 이 땅에서 이토록 많은 양민학살이 벌어지고 만 것에 대해 흥분을 어쩌지 못한 채 목소리 돋워 서로 열심히 토론을 해대는 것이었습니다.

김레베카

한국에서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임을 밝힌 고 정소운 할머니의 유골이 뿌려진 곳에서 국화를 강물에 띄워 보내고 있는 한국측실행위원회 공동대표 강제숙씨(평화시민연대).


신문을 보니 일본 헌법개정 절차를 담은 국민투표법이 지난 14일 참의원을 통과했더군요.  개헌까지 가려면 정해진 절차와 시간 등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또 여론조사 하면 9조 유지 의견이 80%에 이른다고는 해도, 우려할만한 움직임인 것만은 사실이겠지요. 일본서 온 이 사람들, 출발식 때나 기타 발언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재 자기네 나라가 '전쟁이라는 위험한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긴 하지만 일본시민 대다수는 정반대로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에게 진정으로 사죄하고 평화를 약속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강조하곤 합니다.

변함없이 이어지는 그 발언, 결국 그러한 발언을 한국 시민들의 가슴 속에 ‘심어주기 위해’ 오늘도 무거운 수레를 끌고 낯선 길 가고 있는 이 사람들의 지극히 단순하고 시민적인 의욕 속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그 ‘반복’(=일상화) 속에서 저는 ‘사죄’가 어떻게 한발 한발 다가오는 파국을 막아낼 힘이 될 수 있겠는가를 깨닫고 흠칫 놀라곤 합니다. 한 달 반 동안의 장정을 마치고 나면 어쩌면 이들이 말해온 그 말들이 마치 내 속에서, 내 입을 통해 나온 말 같아 보이기도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한일 화해와 상생의 노래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다 읽고 와 툭하면 빨치산 관련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한오백년’을 조용필 뺨치게 불러 제끼는 기무라 히데토 씨는 남원시 지역주민들과의 교류회 중에 “내 안에 반은 일본인, 반은 한국인이 사는 것 같다. 꼭 이중인격자가 된 것 같다”고 고백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일본 전통 창법을 수년간 배운 적이 있다는 요시다 무츠코 씨는 에도(江戶)시대 후기 라이산요(賴山陽)가 지은 ‘아막사(天草) 바다에 머물다’에 맞춘 곡조로 일행 모두를 감동시키기도 했고요.
가사 첫대목 그대로 “구름인지 산인지, 오(吳)나라인지 월(越)나라인지 모를” 혼융의 한 끄트머리에서 사죄를 주고받고 있는 두 '민족'은 연기처럼 미약해 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밑에서 바다가, 저마다 피와 살과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출렁대는 걸 들었습니다.      

<주1>풀뿌리자치연구소와 아름다운재단의 도움으로 지리산권역 5개시군(남원·함양·산청·하동·구례)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와 공무원, 주민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적 학습프로그램. 세계화에 맞서는 뿔뿌리운동과 지자체 장기발전계획, 주민조직화, 주민주도의 지역발전 방안찾기 등을 두고 강의와 워크샵 등이 작년에 실시됐다. 이는 환경, 농민, 시민, 생협, 노조운동들이 주민들과 만나 소통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주2>1951년 육군 11사단9연대3대대에 의해 ‘견벽청야(堅壁淸野)’라는 작전명에 따라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이 전개되면서 이해 2월 7일 단 하루 동안 산청군 금서면 가현, 방곡리, 함양군 휴천면 점촌리, 유림면 서주리 등에서 양민 705명이 집단학살당한 사건.

 

김레베카 객원기자

 

제5호 11면 2007년 5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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