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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풀뿌리

"지역은 넓고 할 일은 많다"

5회 맞는 풀뿌리 시민운동공모, 이전 수상 사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사람이 있었다. 책 내랴, 사업하랴, 세계 돌아다니랴 정신이 없었을 그는 결국 너무 많은 일을 해버린 탓에 넓디 넓은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느라 말년에 무척이나 바빴다.
다른 한편에선 우리 동네도 넓고 할 일은 더 많다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면적상으론 턱 없이 작지만 동네 구석구석까지 꼼꼼히 휩쓸고 다니는 발품을 따지자면 이들에겐 동네도 세계 못지않게 넓은 곳이다.
성남에 공공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서명을 받으러 다니고, 예산 낭비를 막으려고 분수대 건립저지운동을 펼치고…. 바쁘게 움직이며 작게나마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위해 애쓰는 시민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도록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각 지역별 연대회의와 지난 2003년부터 ‘풀뿌리 시민운동사례 공모사업’을 진행해왔다. 올해로 제5회째인 공모사업을 맞아 예년에 수상한 사업들 중 참고가 될만한 사례들을 되돌아봤다. /편집자

# 자발적 참여로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 사는 황영단 씨가 2001년 인터넷에 올린 품앗이 육아 제안을 계기로 동대문구에는 품앗이 육아 팀이 곳곳에 생겼다. 육아와 교육에 드는 품을 줄이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모여 동대문구품앗이공동체까지 구성했다.

지역 어린이도서관도 만들고 품앗이를 하며 적은 기록들로 책도 펴내고 아이들이 자람에 따라 초등학교 교과서 모임까지 만들어낸 동대문구품앗이공동체가 지난해 풀뿌리상을 받았다. 지역운동단체 주도가 아니라 지역에서 살아가는 주민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참여해 사업을 꾸려나갔다. 품앗이 육아에서 품앗이 교육으로 주민들의 필요가 변하면서 사업의 성격이 진화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동대문구 육아 품앗이 모임 구성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육아 품앗이는 교육 품앗이로 진화해가고 있다.


관악주민연대는 서울 관악구에서 16년 이상 지역운동을 펼친 단체다. 지난 해 풀꽃상을 받은 ‘살 맛 나는 임대아파트 공동체 만들기 사업’은 그간의 노하우를 활용해 지역주민들을 운동의 주체로 키워내는 프로그램을 마련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기존 아파트공동체 운동은 일반 분양아파트 중심이었는데 관악주민연대의 운동은 임대아파트를 중심으로 저소득층이 살만한 주거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을 목표로 한 점이 새로웠다. 주민들을 교육해 자원봉사자를 양성해내고 임차인대표회의를 만들어 주민들의 주인의식을 높였다. 주민자치역량 강화에도 중점을 두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관악주민연대가 운영하는 여성성장학교 3기 수료생 중심의 자원봉사모임 '라온제나' 회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 창의와 실험정신을 발휘해

2004년 2회 풀뿌리상은 광주시민단체협의회가 진행한 ‘주민소환조례제정운동’이 받았다. 공직자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주민소환제 도입은 별다른 반대없이 지지를 받고 있으나 정치인들은 스스로를 소환하는 제도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 지방자치제도 시행 후 2003년 7월 기준으로 광주전남지역 자치단체장 29명 중 10명이 각종 비리로 그 직을 상실했거나 사법처리 과정을 겪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의 몫이 됐다. 이에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광주시민 1만8천915명의 서명을 받아 시의회에 조례제정을 청구하고 의회의 만장일치 통과를 이끌어내 전국 최초로 주민소환조례를 제정했다. 필요하지만 현실적 한계로 어려움이 많은 제도운동을 시민운동이 지방자치단체나 정부를 상대로 이루어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서울 강북구에서 활동하는 열린사회북부시민회는 1997년부터 풍물패를 중심으로 공동체 문화축제를 진행하면서 동네의 놀이터를 이용했다. 축제기간 동안 놀이터가 지역주민들의 일상적인 문화 활동공간이 되고 이웃 간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으로써의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주민참여형 삶터 가꾸기-가고싶은 놀이터 만들기’ 사업을 진행했다. 지난 2003년 제1회 풀뿌리상을 수상했다. 동네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시간을 때우는 곳으로 여겨지던 놀이터에 환경적 가치와 공동체적 의미를 부여해 새로운 삶터로 가꾼 것이다. 자원봉사활동을 하던 주민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주민모임 ‘토박이’를 발족했고 마을신문 발행, 놀이터 사랑방을 만드는 등 신선한 지역운동을 전개했다.

# 지속적인 지역사업을

제3회 풀꽃상을 받은 ‘즐거운 멤버 사업을 중심으로 한 도봉시민회 지역운동의 깊이와 향기’는 도봉시민회가 진행한 주부활동가 양성 사업이다. 20여명의 주부들은 6개월 동안 교육을 받고 6개월간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지역 활동가로서 역량을 다진다. 초등학생 체험학습과 생태학교, 어린이 도서관 등을 운영했는데, 모든 프로그램은 회원들의 제안과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 일상의 삶터 속에서 주민을 조직화해 주민중심의 지역운동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1999년부터 시작된 강원도 원주의 한지문화제는 시민단체의 끈기있는 노력과 자발적인 시민들의 참여, 관내 5개 대학의 철저한 파트너십으로 진행되는 시민축제다. 예산&기획&홍보&조직운영 등을 시민들이 주도해 정착시킨 축제로 그 의미를 인정받아 제2회 풀씨상을 받았다. 향토문화 자산인 한지를 통해 군사도시 이미지인 원주를 아름다운 한지문화 도시로 변모시키고 관 중심의 문화행사를 극복해 풀뿌리 문화민주주의와 문화공동체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지방사회를 근거해 3년간 철저한 지역조사를 거쳐 주민들 스스로 제안하고 뿌리찾기에 나서는 참여와 바람이 보태져 사라져가는 한지를 재발견, 지역의 특성을 살린 건강한 지역문화제의 표본이 됐다.

# 연대의 성과를 만들다

지난해 풀잎상을 받은 성남시립병원추진위원회의 ‘주민발의 조례제정을 통한 공공병원 설립운동’은 지난 2003년 여름 성남시 종합병원이 휴폐업을 하자 의료공백 사태가 발생하면서 지역주민들 스스로 문제를 느껴 시작됐다. 주민발의 조례제정운동은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아 높은 지지를 받지만 현실적으로 성공하기가 힘들다. 그 해결책을 성남주민들은 단체의 연대에서 찾았다. 지역의 문제를 알리고 이를 함께 하기 위해 지역 내 시민사회단체는 물론이고 관변단체, 정당, 시의원, 정치인, 종교계, 학계 등에 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공동사업을 제안, 조직해 추진했다. 지역의 네트워크를 통해 중요한 사안을 해결함으로써 지역시민단체들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보여줬다.

고양시에서도 지역시민단체와 의원들의 연대로 53억 추가예산을 막아내 지난해 풀꽃상을 받았다. 임창렬 전 경기도 지사가 추진한 노래하는 분수대 사업의 예산은 2001년 245억이었다. 이듬해 추가예산으로 53억원이 결정되면서 고양여성민우회가 앞장서 반대운동을 펼쳤다. 예산투입효과에 대한 검증도 없이 사업을 진행하려는 고양시에 두 차례에 걸쳐 공개질의서를 보내고 시장 면담도 신청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고양지역 27개 단체와 정당이 모여 ‘노래하는 분수대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꾸린 이유다. 고양시민 3천여명의 건립반대서명을 받아내고 1인 시위와 민원 제출 등을 꾸준히 추진하며 ‘고양예산감시 네트워크’라는 상시 시스템과 복지예산 확대 계기를 마련, 지역예산 배분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대안책을 제시했다.

제5회 풀뿌리시민운동사례공모는 다음달 23일까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접수를 받는다. 풀은 뿌리와 잎, 꽃과 씨가 모두 필요하다. 지역사회에서 제 각각의 사업을 진행하는 민초들은 누구나 지원가능하다.

전상희 기자

 

제4호 16면 2007년 5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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