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대선의 해다. 그러나 불과 7개월 앞두고 있는 현 시점까지도 대선 정국은 안개 속이다. 경선 룰을 두고 시끄러운 한나라당이나, 사수와 통합신당의 갈림길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열린우리당이나, 속내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복잡한 정치상황을 보고 있자니, ‘무진기행’의 안개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답답해진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의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는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대권을 위해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안개 속을 헤쳐가지만, 바람 같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전까지는 눈 뜬 소경처럼 안개 속을 헤맬 수밖에 없다. 안개 속을 빠져나오기 위한 갖가진 방법이 동원되지만, 바람은 방향을 바꿀 생각이 없다. 초록은 동색인지라, 반성과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 곳으로 바람이 불 것 같지도 않고, 예전의 지지층을 뒤로 한 곳이나 과장된 지지도에 웃음 짓는 곳에도 바람의 눈길은 곱지만은 않다.
해석은 분분하지만 정치인들의 무리수가 빈번한 이유는 많은 문제를 정치적으로 한 번에 해결하려는 우리나라 사회적 풍토 때문인 것 같다. 냄비 근성이라고 비아냥을 듣는 한국인 특유의 열성은 지속적인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는 때론 걸림돌로 작용한다.
부안 문제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부지 조성을 위해 주민투표까지 실시한 정부는 무리수를 두어 경주를 중저준위폐기장 지역으로 결정했다. 대통령이 참여정부의 성공적인 정책으로 언급할 정도로, 정부는 민주절차에 의해 주민 합의를 이끌어낸 성공 사례라고 침이 마르게 칭찬해댔다.
그러나 부지조성 합의서의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경주는 시끄러워졌다. 한수원 본사 이전을 둘러싸고 경주 내 갈등이 첨예해졌고, 지원규모를 둘러싸고 산업자원부와의 갈등도 여전하다.
방사능 준위가 낮은 중저준위폐기장에 30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산자부 속내는 더욱 복잡하다. 성공적인 정책 추진이라고 공무원 포상 주기에 바빴던 산자부는 막상 일 추진 단계에 이르자, 천문학적인 경주시 요구와 주민투표 기간에 남발했던 공약들이 발목을 붙잡고 있다. 쉽고 편하게 일하기 위해, 로또를 안겨줄 것처럼 지역주민들을 현혹시켰던 산자부는 스스로 무덤을 판 격이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꾸준하고 일관된 노력 없이 꼼수를 통해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고만 한다면, 언젠가는 본질적인 문제가 곪아 터진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대통령이 될 것인가가 더 중요해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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