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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차라리 투표를 거부하자

[시민광장]

 

2030세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 경쟁의 결과 상위 10%를 제외한 대다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 어렵다.

30대 초반이 결혼할 때 구하는 주택의 전세비용이 평균 8천500만원이라고 한다. 전세가격은 2년 사이 물가보다 3배 더 올랐다. 아파트 분양가는 자율화 이후 2005년까지 215% 올랐지만, 가구 소득은 42% 상승했다. 월급을 모아서 내 집을 마련하려면 평생을 걸어도 될까 말까하는 상황이다.

맞벌이는 필수이지만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다는 부모가 88%에 이른다. 보육비도 부담스럽다. 중산층은 월 평균 89만원의 사교육비를 부담하고 있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사교육비 격차가 8.6배이고, 이들 자녀의 수능 평균 점수도 부모 소득차이에 비례해 벌어져 있다.

그런데 이런 생활조건을 감당해야 할 2030세대는 절반이상이 비정규직이다. 90%이상이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에 종사한다. 대기업 대졸 초임은 224만원이고, 중소기업은 176만원, 같은 연령대의 비정규직 평균임금은 124만원이다. 청년층의 실질 실업율은 20%대에 육박한다.

그러나 더 큰 일은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입사원 모집공고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청년층의 장기실업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격차는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첫 직장을 비정규직으로 시작한 사람 중 이후 정규직이 된 사람은 7%에 불과하다.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이 될 확률이 90%이상이란 말이다.

매월 저축가능액을 모두 모아 집을 마련하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매년 길어지고 있다. 지불능력을 너무 많이 초과해버린 집값은 집값 안정이 답이 될 수 없다. 맞벌이 부부는 늘어나는데 비해 보육을 위한 사회적지원은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다. 사교육비는 12%씩 폭증하는데 소득은 5%정도 밖에 늘지 않는다. 사교육비에 2030세대의 미래는 이미 저당 잡혀 있다. 이대로 가면 대다수 2030세대의 자녀는 부모의 소득수준에 의해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는 현실을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모 유력대선 후보는 지금보다 더 강력한 사교육 열풍을 몰고 올 교육공약을 발표했다. 눈앞이 캄캄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2030세대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으며 당선되었다. 정치개혁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특권층이 아닌 평범한 직장인들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이란 기대를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2030세대 직장인들의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노무현 정부에게 2030세대의 사회경제적 문제는 2등 과제였던 것이다. 2030세대를 위해 선거 시기에 필요한 시적 표현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현실인식과 정책대안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아이 낳으십시오. 나라에서 키우겠습니다’이다. ‘저출산 대책’이니 요란했지만 2030세대의 입장에서는 아이 낳고 키우기 더 어려운 사회가 되고 말았다.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실망감과 불신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20대는 30%대의 투표율, 30대는 40%대의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을 바탕으로 무관심의 경지에 도달했다. 지난 시기 그들이 지지했던 정치세력은 그들을 배신했고 상처가 깊다. 그러나 2030세대에게 비전과 희망을 제시할 새로운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2030세대의 절망은 끝이 나지 않을 것 않다. 다만 배신한 정치세력을 심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소극적 대안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선거를 포기하는 것은 2030세대의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한 선택은 상황을 2030세대에게 점점 더 불리하게 만들뿐이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2030세대는 정책의 대상에서 배제되고, 이로 인해 2030세대는 정치를 더 불신하고, 정치는 다시 2030을 배제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판을 바꾸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오로지 세대 내부의 경쟁을 통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게 된다. 이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2030세대이고, 즐거운 사람은 이미 기득권을 확보하고 현재의 판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2030세대에게 제안한다. 맥없이 투표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요구사항을 밝히고 ‘투표 거부’를 선언하자. 포기는 무관심과 냉소의 결과이지만 거부는 2030세대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정치세력에 대한 강력한 의사표현이다.

각 정치세력과 대통령 후보에게 2030세대의 요구사항을 밝히고 진실한 대답을 요구하자. 각각의 정치세력이 2030세대의 절망 앞에 반성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게 만들자. 그것을 보고 투표를 거부할 것인지,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결정하자.


천준호 KYC(한국청년연합회) 공동대표

 

제23호 19면 2007년 10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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