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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유권자는 진화하고 있다

2007 유권자행동 대선칼럼 [4]

 

대통령 선거가 얼마 안 남았다. 무릇 선거 시기만 되면 모든 후보들이 국민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하긴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그동안 왕 대접을 받을 만큼 자신의 몫을 해왔다.

멀게는 1985년 2·12 총선을 통해 1980년대 초·중반에 형성된 정치 지형을 결정적으로 바꾸었으며 2000년 총선에서도 부패 반개혁 후보 들을 대거 탈락시켰다.(총선연대 낙선 대상자 가운데 68.6%가, 특히 수도권에서는 20명의 낙선 대상자 중 19명이 무더기로 떨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민주화에 대한 기여도는 다른 어떤 집단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국민과 대선후보 10시간 토론하기

한편 우리들은 자신들을 재신임하는 때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국민을 무시하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의 모습도 계속 보아 왔다. 여기에 유권자들의 고민이 있다. 단순히 자신의 권리를 국가와 대표자들에게 위임하고 그 위임행위에 대한 주기적인 심판에 참여하는 정도로만은 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없음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절차상의 하자만 없으면 되는 소위 절차중심적 결론으로 해결하기엔 현대 사회는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분출되는 여러 이해를 반영하지 못할 경우 현대 정치는 무력화될 수도 있다. ‘누구를 뽑는게 옳은가’에서 ‘왜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로 질문이 옮겨지고 있는 현실은 바로 정치과정에서 제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치 못하는 유권자들의 좌절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구촌 곳곳에선 이미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개념의 모호함과 실현 가능성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시민과 대표(위임자)의 참여와 대화, 토론, 의사소통을 강조하는 심의(審議)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한 때 회자되었던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기간 동안 유권자가 의제를 제기하고 그 의제가 아무런 거름장치 없이 토론되는 모습이 시도되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의 현안을 놓고 국민 패널과 대통령 후보간의 10시간 토론마당 같은 것은 어떨까. 후보가 현안에 대해 대답하기 곤란하면 적어도 무조건 유권자들의 호소를 듣기만 하는 시간이라도 만들면 어떨까? 남녀노소 누구나 원하는 사람 100명이 나와 우리 사회가 어떠한 사회였으면 좋겠는가를 이야기 하되 방송에서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이 모든 게 안된다면 적어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요구를 같이 공감하는 자리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직 선거 시기에 행해지는 유권자의 목소리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정치판을 흔들만큼 의미있는 도구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균열의 모습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대통합 신당의 모바일 투표는 참가율이 70%를 넘어서면서 많은 쟁점과 어려움이 있음에도 정치무관심을 대체할 직접 민주주의의 한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권자가 대안언론을 만드는 때

대선시민연대의 유권자 TV도 개국했다. 유력후보의 온갖 동정은 실시간으로 중계하면서도 국민의 어려움과 목소리는 외면하고 있는 주류 언론에 대항해 유권자 스스로가 새로운 대안언론을 창출하려는 것이다.

곳곳에서 대선을 주제로 한 토론사랑방이 열리고 있고 사회 각계에서 대선을 맞아 의제들을 내놓고 있다. 여성계도 60대 과제를 만들었다. 지난 10월 7일엔 전국의 여성한부모 500명이 모인 '전국 여성한부모 희망쑥쑥! 한마당'에서 대선시기에 요구할 '한부모 여성 5대 요구안이 채택되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번 쯤 반문해 보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유권자들의 역동성을 따라가고 있지 못한 건지 모른다. 유권자들의 요구와 이해가 분출될 공간을 열어주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정치무력증, 정치혐오증이 가져올 사회비용을 너무 낮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5년에 한번 국민들에게 머리 숙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나마 다행이 아니냐고 하기엔 유권자들은 점점 더 진화하고 있다. 위임받은 자의 오만과 무능이 역설적으로 유권자를 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권미혁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제23호 18면 2007년 10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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