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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오피니언

핵심관건은 정전체제 종식

남과 북 자주적 결집 필요한 시기, 역사적 의미 시민사회 주시해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무엇보다도 한반도 전체의 주체적인 역할과 정전체제 종식에 대한 의지를 명확하게 표명했다. 8개 항목의 내용 가운데 바로 이 2개의 초점이 이번 회담의 성과로서 가장 의미 있게 평가해야 할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라는 새로운 남북 민족경제의 결합 고리를 만들어가자는 제안이 합의된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 제안 역시 민족문제의 자주적 해결과 정전체제의 해소라는 큰 틀이 기초가 되지 않고서는 합의되기도 어렵고, 제대로 실현되기도 어렵다.

미국의 한반도 패권논리

그런데 방금 거론한 이 두 가지만 잘 정리해서 밀고 나가면 모두 미국의 대한반도 패권전략의 해체와 그에 따른 새로운 국제관계의 성립을 내다보는 내용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이 주시해봐야 한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만드는 일은, 우선 민족의 장기적 이해를 지켜내기 위해 강대국의 힘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며 특히 미국의 군사적 지배체제를 유지시키고 있는 정전체제를 마무리 짓는 것에서 출발한다.

1953년 이후 여전히 종결되지 못한 한국전쟁의 법적, 군사적, 국제적 조건과 장치들을 풀어내지 않고서는 한반도 평화의 항구적 안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언제든지 전쟁할 준비를 하는 체제가 가동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를 비롯한 기타 남북간의 협력과 합의는 만일의 사태 앞에서 순식간에 깨어질 수 있다.

미국은 이러한 정전체제를 근거로 삼아 군사력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한반도의 현실을 자신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서 여차하면 적대적 긴장상태로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남과 북의 대화와 접촉, 그리고 결속은 미국의 정책과 전략에 의해 봉쇄되거나 차단될 수 있는 가능성이 일상화되어 있는 셈이다.

2000년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은 이러한 국면을 돌파하는데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하지만 이후 미국의 부시정권 등장은 한반도의 평화체제 이행이라는 문제가 민족의 자주적 공간을 극대화시키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했다. 당장에 개성공단 문제도 미국은 FTA 협상을 통해 봉쇄정책을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남과 북이 서로 굳게 뭉쳐 자주적 태세를 갖추고 이를 중심으로 미국을 비롯한 관련당사자 국가들을 정전체제로 이끌어 내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평화체제 이행이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비핵화의 조건

한편 미국과 국내 일부세력은 비핵화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고 이를 전제로 하지 않은 정전체제 논의는 의심스럽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비핵화 문제는 남북 정상회담이 아니라 이미 6자 회담에서 다루고 있는 현안이며 여기에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폐기가 연동되어 있다는 점을 무시하거나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여 진다.  

북한의 핵 정책에서 주시해야 할 바는, 북한의 안보가 위협받지 않도록 미국이 적대 압박정책을 철회하게 되면 자연히 핵무장 체제는 존재 이유가 없게 될 것이라고 거듭 확증하고 있는 대목이다. 어떤 조건이 되어도 핵 강국이 되겠다는 국가적 의지가 있다면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폐기와 더불어 진행되어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은 그와 동시에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폐기를 요구하는 선언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을 뜻해야 정당해진다.  

아마도 남쪽 정부로서는 비핵화를 거론하면서 그와 동일하게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폐기를 강력히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북한의 비핵화 문제 논란은 우리 사회에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본질에 대한 비판이 동일하게 제기될 때 진정성을 갖출 수 있으며 그로써 북한의 비핵화만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핵심적 관건이라는 식의 논리가 얼마나 일방적인가를 분명하게 의식하는 과정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전제는 북한의 핵무장 체제가 정당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핵 선제공격 전략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무장 체제는 정당방위의 성격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만일의 경우 그 정당 방위적 조처는 가해자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엄청난 재앙이 된다는 점에서 당연히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 진전은 미국의 정책 변화를 행동 대 행동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직시해야 할 것이다.

우려도 있다

이번 정상회담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대화에서, 북한에 대한 개방, 개혁 용어 사용이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자각한 점을 토로했다.  매우 중요한 발언이다.  북한을 마치 남과 미국이 변화시켜 체제 전환을 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인식했던 것의 성찰적 반성의 의미가 이에 담겨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남쪽 정부가 FTA 체제 실현을 고수하면서 이것이 한반도 전체에 중대한 변화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한, 남과 북 사이의 경제교류와 평화체제 구축은 자칫 미국의 자본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말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무겁게 각성해야 할 바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패권체제에 편입되어버리는 평화체제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평화체제는 미국이 동북아시아를 지배하고 패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구조를 지속적으로 허물어가면서 우리민족의 행동반경을 넓혀나갈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항구적 평화체제 성립에 관건이라는 점이다. 그런 역량이 남과 북 사이에 자주적으로 결집되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동북아시아의 현실을 나름대로 주도할 수 있는 위상을 확보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은 남과 북이 군사적 적대관계를 풀고 상호 정치적 존중과 경제적 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민족국가로 통일되어가기 위한 매우 가치 있는 합의를 이루어냈다. 노무현 정부의 국내 정치적 실패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과 자체는 큰 박수를 받아야 할 일이다.  

이제 실천의 문제가 남아 있다. 끊임없이 이 합의를 흔들려는 세력의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이를 막아내면서 민족의 자주와 평화, 그리고 국제적 주도권을 성취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하지만 이번 합의의 역사적 의미를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 시민사회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 것인지 그 답은 자명해질 것이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본지 편집인

 

제22호 5면 2007년 10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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