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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최종규ㅣ책이야기

학교는 어디로 올라가나

 

책으로 보는 눈[2]

충주에서 인천으로 살림집을 옮겼습니다. 새로 살아갈 곳에는 예전 집임자가 보던 ㅈ일보가 들어옵니다. 석 달 넘게 비어 있던 집이고, 저는 아무 신문도 안 보기 때문에 날마다 두툼한 신문이 한 부씩 문가 계단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어제는 새 살림집에 덧문을 달고 샤시 하나 덧붙이는 일을 했습니다. 덧문을 다는 자리에 쌓인 신문이 걸거쳐서 이리 밀고 저리 치우며 일을 합니다. 자칫 이 신문이 버려지기라도 하면 신문사 지국에서는 돈 내라고 법석을 떨 테니, 종이쓰레기가 쌓여도 어쩔 길이 없습니다. 저녁나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다가, ㅈ일보 뭉치에서 비죽 보이는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ㅈ일보와 함께 스클 업그레이드”라는 꼭지.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교총이 함께 주최하고 열여섯 시ㆍ도 교육청이 뒷배를 한다네요. 출판사에서는 책을 1000권 단위로, 또는 1억이나 2억 원어치가 되는 책을 시골학교로 보내 준답니다.

가난해 책 한 권 갖추기 어렵다고 하는 초중고등학교에서 받는 책은 어떤 책일까 궁금합니다.


나라살림이 세계에서 몇 손가락에 들고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잘사는 나라’라고 하는 이 나라 대한민국인데, 아직까지도 공립교육 눈높이는 퍽 낮고, 정부 뒷배 또한 제대로 안 이루어지는가 봅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에 책을 들여놓는 일이라든지, 새 컴퓨터를 마련해 준다든지, 오래된 시설을 고친다든지 하는 일은, ‘인적자원’을 다스리는 정부 부처에서 할 일일 텐데요. 국방비에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일까요? 새로 짓는 건물은 엄청나게 많으며, 새로 올라서는 아파트도 끝이 없는데,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 도서관 장서와 시설은 뒷걸음을 치거나 제자리걸음을 할 뿐인지.

문득, 가난하고 따돌림받아 책 한 권 갖추기 어렵다고 하는 초중고등학교에서 받는 책은 어떤 책일까 궁금합니다. 몇 군데 출판사에서 보내는 책이라면, 그 출판사 분들이 생각하기에 ‘우리들이 만든 책은 좋은 책이다’ 하고 생각할 수 있으나, 꼭 그 초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 알맞고 반가울 책이 될까요. 한편, 초중고등학교 도서구입비가 얼마나 없기에 ‘도서관 시설은 만들었지만 정작 꽂을 책이 없다’는 소리가 나올까요. 널판 몇 장과 베니어판으로 책꽂이를 손수 짤 수 있고(책꽂이 짜기도 책읽기 못지않은 좋은 교육이 되니), 이런 책꽂이를 교실이나 골마루에 놓으면, 그곳이 바로 ‘책 읽는 자리’가 될 수 있어요. 수천만 원 들여 건물을 짓긴 해도, 수십만 원 써서 좋은 책 골고루 갖추는 마음은 아직 없나 봐요.

한편 새로운 컴퓨터나 책을 받게 된 초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 컴퓨터를 쓰고 책을 읽을 시간은 얼마나 주어질까요. 지금 이 나라 아이들은 입시교육에만 묻히고 끄달리면서, 교과서와 참고서와 문제집이 아닌 ‘진짜 책’ 볼 틈 하나 못 누리고 있지 않나요.



최종규 우리 말과 헌책방 지킴이 hbooklove@empal.com

 

제3호 15면 2007년 5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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