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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최종규ㅣ책이야기

바퀴벌레 사는 집

책으로 보는 눈 [3]

제가 인천으로 옮겨와 사는 집에는 사람만 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민달팽이를 만났습니다. 앗! 네가 이 집 임자였더냐? 다음으로 바퀴벌레를 만났습니다. 헉! 네가 먼저 이 집에 살고 있었느냐?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떤 목숨들을 만날지 모르겠군요. 어제는 창문을 열어 놓고 일하고 있었는데, 참새 한 마리가 호드득 날아들어와서 한참 놀다가 나갔습니다. 호드득 날아들었어도 먹잇감이 없고 맨 책밖인 터라, 심심해서 나갔지 싶어요.

저녁에 일 마치고 4층 살림집으로 올라가면(제 일터인 도서관은 3층에 있습니다), 저를 맞이하는 것은 바로 바퀴벌레.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도 아니고 대여섯 마리, 때로는 열 마리 남짓을 신문을 돌돌 말아 탁탁 때려서 잡습니다. 처음에는 애꿎은 목숨을 죽이는구나 싶어 미안했는데, 어느덧 아무 생각 없이 탁탁 때려잡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자전거 타는 후배 하나가 놀러와서 재웠습니다. 바퀴벌레 나오는 집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 주더군요. 그러고 보면, 요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바퀴벌레 구경할 일이란 없구나 싶습니다. 또, 바퀴벌레가 나온다 해도 온통 약이고 뭐고 하느라 살아남을 수 없겠지요. 문득, 개미나 거미나 바퀴벌레나 민달팽이 들이 살 수 없는 집에서는 사람도 살 수 없지 않겠느냐 싶어요. 살아남는 힘이 대단하다는 바퀴벌레요, 어디에든 집을 짓고 사는 개미와 거미인데, 아파트에서 이네들이 사는 일이란 거의 없잖아요. 아니, 못 살고 맙니다. 시멘트로 바른 높직한 아파트는, 어쩌면 사람들만 살 수 있는, 아니 그 사람도 알고 보면 “사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죽어가는” 곳인지 모르겠습니다.

날마다 우리가 먹는 밥이 우리 몸을 살찌우는 살뜰한 영양소가 되기보다는, 그저 입맛에만 달짝지근하거나 매콤하게 맞추기만 하는 ‘배 채울거리’가 되면서, 어디에서 어떻게 누가 길러낸 먹을거리인지 모르게 되었고, 날마다 읽는 수많은 글(신문과 방송과 책과 인터넷)은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겪은 일을 써대는 글인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사람다운 우리 사람으로 살아가는지, 아니면, 죽지 못해 살아가는지, 또는 젊음을 마음껏 뽐내며 살아간다기보다 짜증스럽고 고달픈 일더미에 치인 채 그저 돈만 버는 ‘사람 아닌 기계’가 되어 톱니바퀴처럼 째각째각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비오는 저녁, 창가에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바람이 창문을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얼추 마흔 해는 넉넉히 된 듯한 낡은 건물에 깃들어 사는데, 뭐 저는 이런 집이 아늑하고 포근합니다. 오늘 밤도 달콤하게 잠들 테지요.



최종규 우리 말과 헌책방 지킴이

 

제4호 13면 2007년 5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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