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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최종규ㅣ책이야기

아시아 경기대회 단상

책으로 보는 눈 [1]

2014년 아시아 경기 대회를 인천에서 하기로 했답니다. 이리하여 인천시가 거두어들이는 ‘돈 이익’이 십 몇 조라는 기사가 뜹니다. 인천사람들은 너나없이 반기고, 강원도 평창사람들은 너나없이 싫어한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인천에는 세계대회를 치를 만한 운동장이 몇 군데 없기 때문에, 2014년까지 수많은 경기장을 새로 지어야 합니다.

경기장 하나를 지을 때마다 수천 억 원이 들 텐데, 수천 억을 들여 수조 원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돈 남는 장사’라고 생각할 테지요. 더구나 이런 공사감을 자꾸자꾸 만들어야 ‘사람들 일자리’도 늘어날 테고, ‘실업률이 떨어진다’고 내세우겠지요. 여러 나라 운동선수가 머물 선수촌(아파트)을 짓는다며 인천 건설업계는 눈이 반짝반짝 빛날 테고, 선수촌 아파트가 지어지기 무섭게 부동산업자들 손발은 부지런히 움직일 겝니다. 나라밖 사람들(기자와 선수)이 많이 몰려올 테니, 나라밖 사람이 보기에 껄끄러운 ‘가난한 사람 동네’는 죄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는 전두환 때 ‘올림픽 밀어붙이기’가 또 벌어질 판입니다. 살림집과 옛길과 골목길도, 개항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은 문화 터전과 조용한 삶터도 사라지고 자동차만 씽씽 달리는 넓은 길로 바뀌겠지요.

쉴새없이 벌어지는 운동경기에 마음을 쏟고, 끊임없이 ‘돈되는 일’에 몸을 옮기는 우리들로 바뀌어 갑니다. 아니, 벌써 바뀌어 버렸는지 모릅니다. 텔레비전 리모콘을 돌리는 손이 있고, 끊임없이 걸고 받는 손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손이 있으며,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 인터넷을 누비느라 자판을 두들기는 손이 있지만, 이 손으로 책 한 권 들어서 펼칠 짬이란 얼마쯤 있을까요. 세탁기 단추를 누르는 손은 있어도, 양말이나 속옷이나 수건이나 걸레조차 빨래할 손이 없는 우리들이 되어 버린 지는 한참 된 일입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보다는, 두어 정류장 거리도 버스나 전철을 타는 우리들입니다. 웬만하면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뿌리내린 지는 한참 되었지 싶습니다.

연속극 줄거리와 연예인 뒷이야기는 줄줄 읊을 줄 알아도, 제 식구가 어찌 지내는지 모르는 우리들이 되었습니다. 새 손전화 기계와 새로 나온 자동차와 운동경기 새소식은 훤히 꿰지만, 자기가 사는 마을 둘레에 어떤 일이 생기고 제 이웃이 어찌 사는가 모르는 우리들이 되었습니다. 자가용을 모는 이들은 책을 손에 쥘 틈이 없습니다. 숨막히는 버스와 전철에서는 책을 펼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손빨래가 아닌 기계빨래를 하면서 얻은 넉넉한 시간으로, 냄비밥이나 솥밥이 아닌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면서 얻은 널널한 시간으로,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요. 지금 이대로라면, 앞으로는 더욱더 손에 책을 쥘 일은 줄어들다가 사라져 버리겠구나 싶습니다.


최종규 우리말과 헌책방 지킴이

 

제2호 15면 2007년 5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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