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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풀뿌리

"아이들 대신 허수아비와 새들만 가득"

[국도를 따라 2]-아치마 마을에서

 

한반도 남서해 지방에는 연일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고 영남내륙과 동해안은 폭염이 내리쏟던 8월 여름 날, 참여정부는 오는 28일부터 사흘 간 평양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사실이 발표되자 이른바 조중동으로 지칭되는 이 땅의 보수 언론은 앞 다투어 2차 정상회담의 의의를 애써 폄하하며 연일 ‘뒷거래설’과 ‘대선용 정치 공작설’를 쏟아냈습니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자신들의 잣대를 들이대고 2차 남북정상회담의 최종심급은 뒷전으로 떼밀어 놓은 채 아전인수 식 평가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다가 올 대선을 앞두고 정권 고지를 향해 온갖 무성한 말을 앞세우며 국민의 눈과 귀를 유인하고 있는 대선주자들은 7년 만에 다시 재개되는 남북정상회담을 흡사 ‘뒤 보고 밑 안 닦은 표정’으로 눈홀김질만 하고 있습니다.

눈코 뜰 새 없는 농촌 들녘 생각은 애시당초 없는 듯합니다.

국지성 폭우가 한반도를 휩쓸다가 이내 숨쉬기도 어려울만큼 뜨거운 폭염이 반도를 삶아도 들녘은 요즈음 푸른 볏잎들의 설렁임으로 가득합니다.

평생을 농사노동으로 버텨 온 이 땅의 농부들의 마음을 닮은 볏잎은, 김수영 시인의 ‘바람보다 먼자 눕는 풀’처럼 폭우와 폭염에 용케도 견디며 햇이삭을 맺었습니다.

남효선

생태환경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농약사용이 줄어들자 오래 전에 사라졌던 새들이 부적 늘어났습니다. 새들이 늘어나자 허수아비도 함께 늘어났습니다.


‘올벼’가 새 이삭을 피워 올리자 농부의 손길은 더욱 부산해집니다.

생태환경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확산되면서 농약과 비료가 점차 사라지는 대신 오래 전에 주위에서 사라졌던 새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예전처럼 새들이 많아지면서 새벽녘은 서걱거리는 바람소리와 함께 새들의 지저귐으로 한바탕 오케스트라를 이룹니다. 그러나 새들이 무작정 반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이 놈들이 말갛게 피워올리는 햇이삭을 그냥 둘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서둘러 광에 넣어 두었던 허수아비를 햇벼가 익는 논머리에 세웠습니다.

마침 14일은 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린다는 말복이었습니다. 새벽 일찍 미리 장만해 둔 백설기를 곱게 비닐보자기에 싸들고 논머리에서 용제(龍祭)를 올렸습니다. 용제는 해마다 말복 무렵에 논에다 떡을 묻고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풍속이자 천신의례입니다. 예부터 용(龍)은 ‘물의 신’으로 여겨왔습니다. 논농사에는 무엇보다 물이 제일 소중한 것이어서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식구들이 먹을 양식을 아껴 해마다 떡을 지어 용제를 지낸 것입니다.

용제를 지내는 아침이면 동네 아이들은 삼삼오오 동네 어귀 느티나무 그늘에 모여 숨죽이며 용제가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어른들이 용제를 지내고 뒷짐을 쥔 채 마을어귀로 들어서면 아이들 걸음은 이미 논머리로 달립니다.
 

남효선

용제를 지낸 논머리에는 펄럭거리는 깃발을 매단 긴 장대가 꽂혀있습니다. 아이들은 장대 밑을 뒤져 비닐에 싸인 떡을 꺼내 단숨에 먹어치웁니다.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의 애기입니다.

요즘에야 용제를 지낸 논머리에서 떡을 꺼내 먹는 아이들을 찾아보기란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어렵고 귀한 일일 터입니다.

이미 아이들은 농촌에 없습니다. 햇벼가 익는 들녘에 허수아비만 뎅그렇게 서 있습니다. 경북 울진군 죽변 명도리 아치마 마을에서 찍었습니다.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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