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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시민정치

“박제화 된 민주주의, 어떻게 살릴까”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학술대토론회
빈곤·실업·비정규직 증가… 실질민주주의 후퇴
전환적 위기 극복 민주주의 심화과제 공론화

한국사회 민주화의 정초가 됐던 87년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는 올해, 관련 기념 행사의 백미는 국내 학계를 대표하는 두 단체인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상임공동의장 김세균), 학술단체협의회(상임대표 박경)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와 공동으로 지난 4일과 5일 양일간 개최한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학술대토론회’였다. ‘한국 민주주의운동의 의미·평가·전망’,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과 도전’이란 2개의 큰 주제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는 비판적 관점에서 민주항쟁 20주년, 그 이후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집약해 분석하는 자리였다. /편집자    

김상택 기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교협, 학단협은 지난 4일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움을 열었다.


“더 많은 민주주의의 좌절”
[민주항쟁 20년, 의미와 평가]

6월 민주항쟁은 그동안 ‘미완성’이란 꼬리표를 달아 왔다. 항쟁 직후의 6·29선언이 그랬고,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등장에 따른 급진적 민주주의 전개의 정체 상황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이광일 성공회대 교수는 이같은 관점에서 “6월 항쟁이 ‘더 많은 민주주의’로 나가지 못한 이유는 이를 가로막은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그들의 이해를 민중운동에 전달하는 기능을 했던 ‘70년대식 재야운동’ 때문”이라는 분석을 펼쳐보였다.

그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오랜 숙원이었던 정부와 의회구성이라는 열망은 실현됐으나 6·29선언으로 대표되는 축소된 6월 항쟁의 요구는 여전히 살아있다”며 “그들에게 더 많은 민주주의는 관심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신자유주의 세력으로 전향해 극단의 사회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6월 항쟁 이후 3번의 집권을 거친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기존 사회관계를 옹호하고 재생산시키는 보수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았다고 덧붙인 이 교수는 “6월 항쟁의 현재적 부활은 이들이 실질 민주주의 확보를 위한 극복의 대상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실천할 때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정상호 한양대 교수는 “소위 9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할 근본 이유는 그 체제가 민주주의가 결여된 불량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87년에 제기된 많은 요구들이 어느 정도 충족됐기 때문”이라며 “87년 체제는 양극화와 세계화 등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 교수는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게 범위를 확대하고,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과 사회적 평등을 강조하며, 광범위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역동적인 사회운동을 구현할 수 있는 시민권의 질적 향상을 지목했다.  

이어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전통적인 정치와 가치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시민권 개념과 시민집단이 가져올 또 하나의 6월 혁명인지 모른다”고 밝혔다. 

“냉정한 현실인식, 그리고 운동지평 확산”
[민주화·세계화 이후 시민사회운동]

“내외적인 도전이 사회운동의 소멸을 의미하진 않는다. 하지만 현재 시민운동은 양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재생산과 신뢰 부재 등의 질적 위기를 맞고 있다. ‘영향의 정치’가 한계에 봉착함을 의미한다.”

민주화·세계화 이후 한국의 시민·민중운동의 전개와 평가를 진단하는 자리에서 김정훈 성공회대 교수는 시민운동의 현재를 이렇게 평가했다. 87년 민주화 이후 형성됐던 역사적 형태로의 시민운동은 이제 한 주기를 마치고 있다고 지적한 그는 △행정적·정치적 제도화 △풀뿌리 지역 운동 주목 △정책대응능력의 제고 등을 시민운동의 새로운 발전 방향이라고 지목했다.

김 교수는 “새로운 시민운동이 강력히 존재해야만 시민적 정체성을 형성, 민주주의와 삶의 질의 동반성장이 가능하다”며 “시민사회의 토대가 침식되고 시민운동마저 위기에 처해 있는 현 시점에서 시민운동이 스스로 혁신을 이룰 수 있다면 시민운동은 여전히 민주화의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민중운동의 현재를 평가한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민중운동은 이제 ‘대동세상’과 같은 추상적 목표가 아니라 ‘복지국가’와 같은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위한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수 운동을 극복하기 위해 다수의 민중이 참여하는 방안 마련과 동시에 내부적으로 ‘사이비 정파’의 문제를 드러내놓고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그동안 어떤 사회운동보다 커다란 공익의 실현을 목표로 헌신하고 희생해 왔지만 이익집단과의 비교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익 추구를 보다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운동 대상의 확대도 주문했다. 신자유주의와 한미FTA도 중요하지만 예산을 탕진하는 토건국가의 문제점과 물·대기오염 등과 같은 경제적 생존권을 넘는 다양한 개혁의 과제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체제 창출로 정당정치 혁신”
[민주화를 위한 정치와 제도]

6월 항쟁의 열매 중 하나인 87년 헌법의 개정 논란이 지난해부터 뜨거웠다. 진보와 보수, 심지어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까지 논의는 무성하다. 서경석 인하대 교수는 “태생적 한계로 볼 때 87년 헌법은 6월 항쟁 이후 위로부터 진행돼 온 보수적 민주화의 상징으로 민주성과의 이질적 결합은 이후 보수와 진보로부터 공격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이어 “87년 헌법체제가 국가-재벌 동원체제의 이중국가적 경향을 상당히 불식시킨 의의가 적지 않지만, 최근 제기되는 사회국가적 내용 보강이나 권력의 민주적 제도화, 사법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 규율 등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민주적·사회국가적 헌법강화 시도는 중요한 의미”라고 밝혔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당체제의 변화와 대안적 정당체제의 가능성에 대해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20년간의 한국 정치는 사회에 뿌리 내리지 못한 정당 민주주의 부재가 빚어낸 부정적 결과를 잘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라며 “결국 정당정치 혁신 없이 민주주의의 진전은 있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는 20세기형 낡은 정파 구도에 포획된 채 허우적거리는 가운데 사회에 뿌리내리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평가한 조현연 교수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과 파괴를 의미하는 신자유주의가 ‘민주’정부에 의해 수용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상상력을 십분 발휘, 작동가능한 대안적 정당체제의 발견과 창출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정병기 서울대 교수는 “향후 한국의 대안·진보 정당은 노동자-자본가 계급 모순을 해소하는 생산자 민주주의를 추구하면서도 아직 사회안전망이 확립되지 못한 특수한 상황을 반영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에도 높은 전술적 가치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등가치 추구없이 인권도 없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와 인권]

“민주화 이후 가장 긍정적인 부분으로 인권분야를 지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세력이 출현하고 굳건한 연대를 수립하지 않는 한 한국의 인권은 권력과 시장에 대항하는 힘을 잃을 것이다.”

이재승 전남대 교수는 민주화 이후 인권문제의 전개양상을 진단하며 “97년 이후 IMF 구제금융체제하에서 양극화는 심해지고 인권현실 역시 더욱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또 “한미FTA 이후 국가의 분배적이고 조정적인 역할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으면 양극화의 극단적 전개 속에 한국의 인권실태 역시 극단적으로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인권이 사회 약자에 대한 시혜적 차원에서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라 참여와 공동체의 연관 속에서 획득, 강화되는 것이라면 87년 이후 민주화는 공공적 영역의 과제를 민주적으로 심화시키지 못했다”며 “그전에 다양한 각도에서 형성돼 온 사회적 타협점마저 민영화와 개방 경쟁으로 해체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고 지적했다.

또 “이제 중하류층, 심지어 중산층까지 민주화의 참여자나 수혜자로 분류하기 어려운 처지”라며 “신자유주의가 민주화를 여지없이 강타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절차적 민주주의나 정치적 권리, 자유권은 신장됐으나 폭넓은 인권신장을 가져올 사회경제적 민주주
의는 진전하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분배조정자로서 국가의 역할이 크게 기대됐음에도 활성화되지 못하거나 초보적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는 “최근 민주주의와 인권의 위기를 이야기 하는 것은 소득 분배가 악화되고 구조적 실업이 증가하는 등 자본의 공통이해가 손쉽게 형성되는 바탕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지목했다.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 지향을
[민주화 주체와 민주주의의 길]

6월 민주항쟁은 시민항쟁이자 노동자 투쟁의 장이기도 했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민주화 20주년을 지난 지금, ‘박제된 민주화’의 현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노동분야”라고 지목했다.

노중기 교수는 2007년 현재 노동의 위기는 전체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발언을 인용하며 “노동자 대중의 절반을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문제는 전 사회 양극화 심화의 핵심적 요인이자, 쉽게 해소되기 힘든 장기 구조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사회 내부의 주체역량은 매우 취약하다”며 “민주노조운동이 전방위적인 위기 징후를 나타내는 현실은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산별노조운동과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는 내부혼란과 대립, 갈등 속에서도 성과”라며 “그렇지만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는 이제 그 출발점에 서있을 뿐이라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별노조는 관료주의에 매몰되거나 협소한 경제적 이익 방어의 계기가 될 수 있고, 민주노동당은 폐쇄적 계급정당에 머무르지 않으면서도 신자유주의 자본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노중기 교수는 “한국 노동사회와 전체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미래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의 성패에 따라 그 방향이 크게 규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병두 대구대 교수는 신자유주의 가속화의 현실 속에서 “앞으로 중요한 점은 국가와 시장이 서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이러한 결합이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서민들의 복지와 삶의 질 개선을 기준으로 한 국가, 시장 정책 및 공간환경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 앞서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로의 전환을 국가 발전의 우선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환 기자

 

제7호 4면 2007년 6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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