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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문화

"경험과 인맥을 조직하라"

'이음' 활동가 집담회 [2] _ 중견활동가 역할은 무엇일까

 

“공자는 40살이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무혹(無惑)의 나이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유혹이 없어서 걱정이다.”

지난 1993년부터 지역운동을 해온 신윤관 푸른경기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은 일이나 조직, 사람에게서 유혹을 느끼지 못한다며 중견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털어놨다.

시민운동을 한 지 어느덧 15년, 강산이 한 번 변할 때 쯤 중책을 맡게 됐고 강산은 한 번 더 변하고 있다. 이들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해왔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까.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은 지난 8일 ‘조직의 중책을 두루 거친 중견 활동가들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란 주제로 두 번째 활동가 집담회를 열었다.

박인규 희망을만드는사람들 정책위원장, 김기연 미래를여는아이들 사무국장,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신윤관 사무처장 등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활동가들이 참가해 중견 활동가들만의 무게 있는 고민을 나눴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호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은 “현장에서 정신없이 뛰다보니 어느새 40대가 되었는데 거처를 옮기려고 하면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었다. 후배들을 위해 내가 움직여줘야 할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바로 중견 활동가들의 고민이라 생각하고 마련한 자리이니 경험을 바탕으로 편하게 이야기하자”며 집담회를 시작했다.

김상택 기자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은 지난 8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터놓고 얘기합시다'라는 주제로 두번째 활동가 집담회를 갖고 '중견 활동가들의 고민 엿듣기'를 진행했다.


‘낀 세대’ 중견활동가

“1993년부터 시민운동을 시작했는데 10년쯤 되니까 일이 재미없어졌다. 무작정 1년을 쉬면서 다른 일을 좀 알아볼까 했더니 운동판이란 틀 밖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다시 복귀하고서는 역시 일상에 쫓기고 있다. 주변에서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냐고 말하는데 나도 동의한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해야겠다고 고민하고 있는데 선택을 할 때 경제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결정하기가 더 힘들다. 또 후배들에게도 대안적 삶의 모습을 보여줘서 꿈과 희망을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송재봉 사무처장이 말문을 열었다.

박인규 정책위원장은 2000년까지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총선 이후 시민운동으로 방향을 바꾼 경우다. “4년 정도 하고 나니 현재 내 입장에서 바라보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을 정리할 필요를 느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83년에 대학에서 ‘짤렸기’ 때문에 다시 복학해서 작년에 마치고 올해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내 경우엔 거처를 옮기는 것에 대한 고민보다는 내 역할을 다한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좀 더 내공을 쌓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가란 문제가 더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천안에서 지역아동복지운동을 하고 있는 김기연 사무국장은 “지역마다 다른 것 같다. 천안에는 정말 사람이 없어서 내 일을 물려주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며 말을 꺼냈다. “일 하면서 두 번 출산했는데 두 번째는 쌍둥이였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일을 병행한다는 게 솔직히 어렵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아동복지인데 정작 우리 아이들의 복지문제는 심각한 지경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고 개인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나 스스로 돌봄 없다”

10년 이상 시민운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겪는 경제적인 문제는 없을까. “떼돈 벌려고 하는 일도 아니고 입에 풀칠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처음에 뛰어들었다”는 박인규 정책위원장은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현실적인 문제들을 만나게 돼서 아내와 함께 장사를 했다”고 말했다.

신윤관 사무처장은 ‘일정정도의 빈곤은 또 다른 나의 에너지’라고 말했다. “활동가들 중 절대적 빈곤에 놓인 사람은 없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망이 떨어져서 느끼는 상대적 빈곤일 뿐이다. 내 경우에도 당장 힘든 일이 닥칠 때 도와줄 수 있는 관계망이 있다. 그래서 이런 경제적 문제 보다는 우리 가정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만족 대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신윤관 사무처장은 일상과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나를 충전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라’고 조언했다. “활동가들은 많은 사업을 벌이면서 정작 자신을 위한 사업을 개발하지 않는다. 일 말고 나의 열정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사업을 계획해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다보면 충전이 된다”고 덧붙였다.

중견 활동가로서 짊어져야 하는 후배들과 조직, 지역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도 그들의 어깨를 누른다. 김기연 사무국장은 “봉사활동 오는 대학생들의 경우 예전에는 졸업 후에 찾아오는 사람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들에게 우리의 활동이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하고 올 만큼 매력적이지 않게 보이기 때문”이라며 “좋은 역량을 갖춘 사람들을 활동가로 키우기 위해선 그들의 선택에서 방해가 되는 불안요소들을 조직차원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신윤관 사무처장은 “내가 끝까지 잘 사는 모습을 보이면 후배들에게 본이 될 거라 믿고 삶에서, 가정에서, 조직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선 “시민운동이 그렇게 매력 없는 직업이 아니다. 폭발적인 인기가 없을 뿐이지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사람이 찾아오곤 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의 경우 워낙 업무가 많기 때문에 지역 활동가들은 단체 걱정하느라 지역 걱정할 시간이 없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를 위해 선배들이 나서야 한다는 데에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후배들에게 직접적으로 돈이나 일자리를 갖다 주는 것보다는 그들의 불안요소를 없애주는 게 중요하다. 네가 이 일에 헌신하면 그 외의 문제들은 우리가 지역적으로 어떻게 해서든 돕겠다는 믿음을 줘야한다”고 박인규 정책위원장은 말했다. 또한 지역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많아져서 지역의 비전을 제시하고 방향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상택 기자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이 개최한 '터놓고 얘기합시다'의 두번째 활동가 집담회 '중견 활동가들의 고민 엿듣기'에서 김기연 미래를여는아이들 사무국장(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후배 운동가들에 대한 조언

송재봉 사무처장도 같은 지적을 했다.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지적해내고 거기서 적절한 역할을 할 때 조직과 사람이 모두 성장할 수 있다”며 “각 단체의 중견 활동가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계를 넘은 협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논의가 이어지면서 신윤관 사무처장은 “단체, 지역, 한국을 넘어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란 논의를 할 때”라고 말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생기고 있는 ‘두뇌집단’에 대한 강한 비판도 뒤따랐다. “그나마 있던 지역의 인적자원을 데리고 가면 지역운동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아예 두뇌집단을 지역에 먼저 세우고 거기서 긍정적인 선례를 만들어 수도권으로 나갔어야 한다.”

후배의 입장으로 집담회에 참석한 진경아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 사무국장은 “선배들이 자기 모순에 빠져있다”며 “스스로 일을 많이 만들고 책임감을 부여하면서 스스로 힘들어 한다”고 지적했다. 박인규 정책위원장도 이 의견에 동의했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사명감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경계해야 한다. 나이를 먹으니까 좋은 점은 여유가 생긴다는 것인데,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의 비전과 5년, 10년 나가서 100년의 미래까지 내다보고 계획하는 일을 우리 중견 활동가들이 해야 하는데 업무에 치여 그러기가 힘들다. 나뿐 아니라 지역의 활동가들은 초읽기 식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하니 다들 지쳐있다”는 김기연 사무국장의 고민을 듣고 신윤관 사무처장이 바로 말을 받았다. “다들 쉬고 싶다고 말을 하면서 휴식과 놀이를 기획하지 않는다. 다른 일은 그렇게 잘하면서. 몇몇 사람들과 놀고 여행하는 모임을 만들어서 여기저기 다니고 있다. 활동가들의 경우 쉬고 싶어하는 소망을 기획할 여유가 없다. 이런 것을 기획해주는 것도 중견 활동가의 몫이다.”

집담회가 마무리 되어 가면서 역시 오랜 세월동안 이들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준 긍정적인 생각들이 모여졌다. 박인규 정책위원장은 “우리가 죽을 때쯤이면 평균 수명이 90세 정도일 텐데 우리는 아직 40대다.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일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에너지를 충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더욱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주일에 세 번 ‘3E’를 실천하기로 다짐했다. 3E란 Exercise(운동), English(영어공부), Equality(나와 단체와 지역의 형평성을 위한 고민)이다”며 스스로 하고 있는 실천을 나눴다.

운동의 경험은 축적된다

송재봉 사무처장도 “얘기를 듣고 보니 너무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듯하다. 난 아직 일이 재밌고 현장에 있고 싶다. 단지 우리가 해온 일,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시간과 업무가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운동이 지역 사회 내에서 단순히 비판적 견제 세력으로만 머무르는 것을 뛰어넘어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나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내가 커야 후배도 큰다”고 말했다.

“우리가 작심하면 못할 일이 없다”며 신윤관 사무처장도 “우리운동의 희망은 향후 중견 활동가들이 어떤 몫을 해내느냐에 달렸다. 오늘 답을 찾진 못했지만 다른 분들의 얘기를 힘입어 지역에서 더 역동적으로 활동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호 소장은 “중견 활동가들의 경험과 인맥 등은 어떤 정보보다 소중하다. 이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조직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시민운동과 지역운동에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집담회를 마무리했다.

 

전상희 기자

 

제23호 10면 2007년 10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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