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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풀뿌리

엄마의 힘! 자치 어린이도서관 만들다

<시민사회신문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기획>풀뿌리시민운동 모범사례를 찾아서 [2]

 

"풀뿌리 운동의 확산과 발전을 위해선 모범사례 발굴이 우선이다." 최근 5~6년간 시민운동 전반에 걸쳐 풀뿌리 시민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이같은 인식 아래 5년전부터 지역의 우수한 풀뿌리시민운동 발굴 작업에 나서고 있다. <시민사회신문>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난 7월 전국 시민환경운동가대회에서 선정한 6개 풀뿌리 시민운동 모범사례의 현장 르포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대전마을어린이도서관협의회 해뜰마을도서관
어린이 친화적 공간 추진 주민 감동으로

“정말 재밌어요. 또 놀러올래요.” “이젠 자주 올 거야.” 해뜰마을어린이도서관 중앙에 있는 아름드리 나무에 한 가득 붙어있는 나뭇잎에 적혀있는 말들이다. 도서관을 다녀간 아이들이 하나 둘씩 붙이기 시작해 이젠 제법 무성해졌다. 아이들의 웃음이 담긴 나뭇잎은 플라스틱 나무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해뜰마을어린이도서관은 제5회 풀뿌리시민운동 사례공모에서 풀잎상을 수상한 대전마을어린이도서관협의회에 속해있다. 대전 서구 관저동의 정중앙에 있는 넓은 놀이터를 바라보는 건물의 2층에 도서관은 위치해 있다. 관저동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햇빛을 받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풀잎처럼 자라고 있다.

 

놀이터라는 공간을 활용해 지난 4월 개관식 때는 운동회도 함께 열었고 아이들을 ‘놀이터 지킴이’로 임명해 스스로 청소하면서 지역시설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해뜰마을어린이도서관의 입구


“미래와 어린이를 상징하는 해가 있는 뜰이라는 뜻에서 ‘해뜰’이라고 이름 지었다.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은 사서도 무섭고 책도 많질 않은데다가 멀어서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어린이도서관이라면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친근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을 보고 문제를 공감한 엄마들이 모여 아예 도서관을 만들자는 데 뜻을 같이 하게 됐다”며 조학원 도서관장은 말했다.

지난해 9월 추진위원회를 만들어서 올해 4월 개관식을 했으니 민간주도 도서관치곤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운으로만 되지 않는다. 초기 자본이 필요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테마기획사업 공모에 지원을 하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공간 확보가 필수요소였다. 동사무소와 동장을 찾아다니며 빈 공간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처음에 동장은 강하게 반대했다. 아이들은 자라서 떠날 테니 여기 주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일주일에 2번씩 동장을 찾아가서 설득했다.

“계속 만나고 부딪치다보면 생각이 바뀌고 사람이 바뀐다.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열심을 보이자 동장님이 경로당의 2층이 비어있다는 정보를 줬다.” 주택가와 가깝고 더욱이 놀이터를 끼고 있으니 어린이도서관으로는 금상첨화였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반대가 의외로 강경했다. “예전부터 이 자리를 쓰기 위해서 여러 단체에서 경로당에 물적, 심적으로 지원을 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어르신들이 아이들이 들어오면 시끄럽다며 싫어하셨다. 하지만 역시 포기할 수 없어서 엄마들이 조를 짜 경로당을 청소도 하고 어르신들 말벗도 되어 드렸다”고 조 도서관장은 말했다.

해가 있는 뜰 '해뜰'

그런 과정 속에서 또 주민들을 만나며 2천여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어린이도서관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주민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독서지도사 등을 불러 도서관에서 운영할 프로그램 등에 대해 강의도 했다.

“사실 어린이도서관이라고 해서 책이 있고 독서를 지도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자녀와 육아, 그리고 삶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엄마들을 그렇게 열정적이게 했다”는 조 도서관장은 ‘우리 동네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직접 만들면 된다”는 대답을 들려줬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걸 도서관을 만들면서 배우게 됐다고 한다.

 

해뜰마을어린이도서관의 내부모습


현재 도서관에는 동화읽는 엄마들의 모임인 ‘뿌리’ 회원들이 자원활동가로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 나와 청소와 함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재정은 회비와 후원금 등으로 운영된다. 지역후원조직을 확대해 안정적인 구조를 꾀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세우고 있다. 도서관은 공공영역이긴 하지만 시나 구에서 재정지원을 받게 되면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양하고 있다. 마을주민들의 돈으로 운영돼야 진정한 마을도서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조 도서관장은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 아이를 둔 엄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란 고민을 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다면 아이들도 변하지 않을까란 기대감에 내가 먼저 시작했다. 하지만 중간에 많이 흔들리게 마련이다. 계속해서 교육과 소통을 통해 정신무장을 해야 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들은 고립되기 쉽다. 하지만 어린이도서관에서 봉사활동과 도서관 일을 하며 사회적 엄마로 거듭난다. 자주 만나서 서로에게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냐는 질문을 던지며 서로를 들여다보고 상호침투하면서 영향력을 주고받다 보니 엄마들도, 아이들도, 도서관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 "책 볼 권리 있다"

송촌동, 법2동 어린이도서관만들기 엄마모임 회원들이 책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다음에 찾은 곳은 대덕구 송촌동과 법2동에서 또 다른 마을어린이도서관을 준비 중인 엄마들의 모임이었다.

 

아직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여러 곳을 방문하며 알아보는 중이다. 그와 동시에 지속적으로 어린이책전시회를 하며 주민들에게 어린이도서관의 필요성에 대해 홍보하고 있다.

 

이날도 송촌동 선비마을 아파트단지에 장이 서는 날이어서 그 한켠에 천막을 치고 책을 전시하느라 모두 분주해보였다.

“주민 1천명의 서명을 목표로 하고 있는다. 현재 300명 정도 받았다. 오늘 전시회를 하면 200명 정도 더 받을 수 있을 테고 곧 목표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정 어려우면 직접 엄마들이 아파트를 돌면서 가가호호 방문해 받으면 된다”고 최선화 씨는 말했다.

 

처음 협의회에서 진행한 도서관학교를 다니며 송촌동과 법2동도 만들어보자고 뭉친 3명의 엄마 중 한 명인 최 씨는 현재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첫째 아이를 데리고 나와 놀게 하면서 무거운 몸을 열심히 움직이며 책 전시에 여념이 없다.

“마을문고가 동마다 있지만 조사 해보니 어린이들의 감수성을 섬세하게 키워줄 만한 책이 없었다. 마을문고의 운영위인 부녀회에선 도전으로 받아들여서 반대를 하시지만 좋은 책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권리가 우리 아이들에겐 있다. 어렵지 않다,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엄마들이 뭉쳤다. 책 전시회를 통해 앞으로 생길 어린이도서관에는 이런 책들이 비치될 예정이니 주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3시와 5시에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책을 읽어주는 모임도 한다.”

지난 7월말부터 준비를 시작해 내년 4월 개관을 목표로 한다. 후원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이 아니라 마을사람 힘으로, 마을 돈을 만들어서 마을 전체가 도서관을 운영하는 형태가 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기 때문에 좋은 아이템을 위해 고민하고 대화한다.

최 씨는 “첫 모임이 힘들다. 좋은 생각이지만 나는 빠질테니 그냥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주민들이 많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주민들 중 가장 호응이 좋은 것은 30대이다. 주민모임은 현재까지 3번 진행했는데 어린이도서관을 통해 부모들의 친목도모도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을 나타냈다.

아이를 업고 나온 김현정 씨는 책 전시회를 둘러보며 “어린이도서관이 우리 동네에 꼭 생겼으면 좋겠다. 나 같은 초보엄마들에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또래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칠 것 같다. 몰랐는데 나도 참여하고 싶고 배우고 싶다. 교육이 가장 필요한 것은 엄마다. 공부할 게 너무 많다”며 반가워했다.

둘째가 세상에 나올 때쯤 어린이 도서관이 생겨 최 씨가 두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을 찾을 수 있게 되기를 기다려본다.

 

전상희 기자

 

제22호 13면 2007년 10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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