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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풀뿌리

“배추가 금추라고? 농민한테는 아무 소용없는 일이래”

국도를 따라 7- 정선 낙동리에서

 

"농협 안믿은지 오래됐어..."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가 ‘금추’라고 합니다. 김장철을 앞두고 주부들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시중에서 배추 한 포기에 7천원을 홋가한다니 그야말로 ‘배추가 아니라 금추’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배추를 비롯 채소류의 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데는 올 가을 장마가 원인이라고 합니다. 기상대는 올 장마가 100일 이상 계속됐다고 발표했습니다. 특히 가을장마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제 지구온난화 문제는 심각성을 넘어 인류의 일상을 마구 흐트러뜨려 놓는, 재앙으로 자리잡은지 오래입니다.

 

남효선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가 금추라지만 배추농삿꾼한테는 하등 상관되는 일이 아닙니다.


남효선

품값도 안나오는 배추농사이지만 그나마도 인력을 구할 수 없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칠십 이상의 할머니들이 유일한 노동력이다.

뒤늦은 가을볕이 따갑습니다. 산 빛깔이 제 모습을 찾는 정선 땅 곳곳에서는 애써 가꾼 배추출하 작업이 한창입니다.

김장배추 전에 요긴하게 쓰이는 ‘얼가리 배추’가 산허리를 태워 만든 화전 비탈밭에 가득합니다. 비탈밭을 가득 채운 배추 밭머리 곁 산 기슭에는 토종벌꿀통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모두 고랭지농법으로 가꾸었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배추밭은 2천평은 족히 되어 보였습니다.

여기서도 예외없이 젊은이는 찾아볼 수 없고 모두 노인들만이 부산하게 배추를 차에 싣고 있습니다. 트럭에 배추를 싣는 손놀림이 힘에 부친 듯 느릿느릿합니다. 경사가 70도쯤 돼 보이는 배추밭에는 50대 아낙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배추를 칼로 도려내어 그물망에 넣습니다. 아낙이 배추를 도려내어 그물망에 채워 두면 네모난 트랙터가 비탈밭을 올라 모아둔 배추를 실어 나릅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비가 내렸습니다. 금세 산중은 빗소리로 가득 찹니다. 농부들의 손길이 재빨라졌습니다.

남효선

2천평 배추농사지어 유통업자에게 1천1백만원에 넘겼다는 김은화씨. 김씨는 이 중 인건비, 농약값, 임대료 등 7백여만원을 제하고 4백여만원을 손에 쥔다고 한다.부부가 4개월 농사 지은 대가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방송에서는 배추가 금추라고 떠들썩하는데, 우리 농삿꾼하고는 아무 상관없어. 2천평에 배추씨 20만 종을 뿌리는데... 농사가 잘되는 해에는 보통 배추 4만포기를 거둬들이지. 올해는 비가 자주 와서 한 3만포기나 나올지 모르겠네. 배추농사는 보통 1년에 한번 짓는데, 얼가리 배추는 6월 초에 밭갈일 끝내고 7월 초순에 파종해서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수확하지. 배추농사에 꼬박 4개월이 걸려. 보통 2천여평 배추농사 짓는데 일꾼이 15~18명가량이 들어. 처음 파종하는데 보통 8명이 들고, 김매는데 여섯명이 들어가지. 또 비료뿌리는데 일꾼 사야되고, 농약치는데 4명가량이 들어가. 농약은 보통 열 번 쯤 치는데,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열 세 번 쳤어. 농약 안뿌리고는 농사 못지어. 친환경농산물만 판다는 회사들 말은 하나도 믿을게 못돼. 모두 거짓말이래”

정선 땅에서 십년 째 배추농사를 짓는다는 김은화(58, 정선군 남면 우중리)씨의 얘기입니다.

김씨는 부부가 해마다 5천여평의 배추농사를 짓는데, 늘 인건비만 겨우 건지는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김씨는 또 사람구하기가 어려워 고랭지 배추농사도 몇 해 안가서 사라질지 모른다고 걱정합니다.

“얼가리 배추 농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줄잡아 7백만 원 가량 들어가. 인건비와 농약값이 태반이지. 거기에 밭 빌리는 임대료 내야지, 비료값들지. 남자 일꾼은 숫제 구할 수 없고 모두 칠십 이상 나이든 할머니들뿐이래. 할머니 한 사람 당 노임이 4만5천원인데, 이제는 할머니들 구하기도 어려워.”

 

남효선


2천평 배추농사를 모두 1천1백만원에 매매했다고 합니다. 올 해는 비가 많아 병충해도 심해 3만포기 가량 수확했다고 합니다. 인건비에다 농약값, 임대료 따위를 제하면 4백여만원이 남는 셈입니다. 두 부부가 4개월 간 배추포기를 들여다보며 들인 공력과 노동에 비하면 4백만원은 턱없이 부족한 대가입니다.

최근 배추 한 포기에 7천원을 홋가하는데, 밭뙈기로 출하하면 손해를 보지 않느냐는 질문에 “배추장사는 생물장사래. 올처럼 언제 일기가 변할지 모르는데, 임자가 나서면 빨리 팔아야지. 배추값도 운이래. 방송 믿고 밭에다가 배추 세워놓고 기다리다가 비라도 오면 그나마도 못건지는 게 배추농사래” 라며 김씨는 허허 웃어넘깁니다.  

농협이나 정부의 지원은 있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두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농협 안믿는지 오래됐다”며 배추포기를 집어 듭니다. 강원도 정선군 남면 낙동리에서 찍었습니다.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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