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칼럼에서 나는 이명박 부동산 논란이 ‘흠집 없는 부르주아를 찾는 헛수고’라 주장했었다. 어쨌거나 올해 말까지 이런 흐름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을 듯한데, 대통령 뽑는 선거가 성직자 서품(敍品)처럼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들이 그만큼 썩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될만한 사람은 그 지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부패하기 마련이다. 부패가 유능함으로 인정받고, 부패해야 출세하는 구조, 그리고 부패를 차단하고 검증하는 사회적 장치 없이 방관하고 있다가 ‘대통령’이라는 하나의 직책에 이르러서야 뜬금없이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부패 문제 외에는 이렇다할 정치꺼리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87년 이래 20여 년은 보수 양당 세력이 서로를 닮아가는 혼성모방의 시기였다. 김대중과 전두환은 국가관에서든 개별 정책에서든 꽤 큰 차이가 있었지만 지금 여야 정치 지도자들의 정책은 신자유주의 아래의 초록동색이고 약간의 이미지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남은 것은 누가 덜 썩었나 하는 최저 정치다.
부패나 비리로 재미 보는 집단의 집착도 요즘 분위기에 한 몫한다. 지난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의 개인사로 승기를 잡은 여권은 이번에도 ‘자신이 돼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상대방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파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쓰고 있다. ‘비판적 지지’라는 해괴한 정치관으로부터 발생한 이들은 수동성이라는 태생적 한계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할 모양이다.
여권 성향의 언론도 마찬가지다. 지리멸렬한 여권의 예비후보들이 아무런 상품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언론이 이명박 부동산에 매몰된 것은 정치권에서 던져주는 정보 이외에는 기사꺼리를 발굴하거나 여론을 형성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고, 이명박의 부동산이 여자 연예인이 누구를 사귄다는 것 같은 선정성의 ‘정론지’ 판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명박 부동산이 뉴스 첫머리를 차지하다 보니 쫓겨난 이랜드 노동자들의 하소연은 단신으로 처리되고 오늘은 또 이명박, 박근혜가 무엇 두고 싸웠는가 하는 문제가 한미FTA 후속 조치나 남북정상회담 의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압도하고 있다. 퇴근길의 술자리는 “역시 이명박은 썩었다”는 공감 아래 “그래서 안 된다”는 입장과 “그래도 돼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뉘고 있다.
연이은 폭로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의 지지율에 별 변화가 없는 현상은 우리 국민이 정치 지도자의 부패를 용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민 욕구가 도덕성 아닌 다른 것으로 향하고 있고 이명박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재벌 회사 사장 출신의 이명박이 ‘먹고 사는 문제’, 즉 ‘민생’을 해결해 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이명박 신드롬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이번 대선의 화두는 이러저러한 경제사회정책이 되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그런 경제사회정책의 토대가 될 체제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정치인과 언론과 식자(識者)들의 역할이다. 따라서 요즘의 이명박 도덕성 검증이라는 것은 국민 욕구에서도 한참 뒤쳐지는 정치 후퇴일 뿐이다.
‘도덕’이 누구의 도덕인가를 봐야 한다. 부르주아 도덕의 관점에서 깨끗하거나 썩었다는 것은 그들 안에서는 나름 중요한 변별점이겠지만 이 사태를 지켜보는 대개의 유권자들, 노동자들의 이해득실과는 별 무관한 놀음이다. 지금 시대 한국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최고의 도덕률은 분배적 경제사회정책이고, 따라서 도덕 기준 역시 계급정책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아래의 ‘동아일보’ 칼럼은 아마도 이명박을 감싸기 위해 쓰여진 것이겠지만, 한국 지배 집단 내부의 고민을 잘 보여주고 있고, 몇 단어만 바꿔 읽으면 이번 대선을 지켜보는 관점으로서 우리에게도 충분히 유용하다.
“문제는 이런 단순논리에 따르는 왜곡과 과장이다. 예컨대 기업인 출신이므로 경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얘기는 올바른 인과(因果) 추론이 아니다. 대통령 자질로서의 능력은 기업인의 그것과 다르다. 이윤 추구라는 한 가지 목적을 향해 미시적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 다양한 가치의 조화를 추구해야 하는 거시적 국정 운영은 차원이 다르다. 학자, 관료, 언론인, 시민운동가 등 다른 경력들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나라의 곳간지기는 몸가짐도 중요하지만 국부를 일으킬 실력이 있어야 한다. 도덕성 논란에 묻혀 능력 검증을 소홀히 할 수 없다. 같은 부패라도 시대적 현상인지, 개인의 성향인지 구분해야 한다. 같은 능력이라도 미래의 정책 수요에 부합하는지 따져야 한다.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 검증에 균형과 초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취업을 걱정하는 우리 큰아이, 입시에 주눅 든 우리 둘째, 노후가 슬슬 걱정되는 우리 부부는 얼뜨기 같은 선거 구호나 몇 % 성장, 몇십만 개 일자리 같은 뜬구름 공약에 별 관심이 없다. 아마 많은 다른 집도 마찬가지일 거다. 정책 대결이 거의 실종된 선거지만 역설적으로 민생의 정곡을 찌르는 정책의 힘이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선거이기도 하다.”(전주성 객원논설위원 ‘도덕성과 능력 중에서 고르라면’, 2007. 8. 15)
제16호 14면 2007년 8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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